대한민국 가슴에 기대어 통곡하며
대한민국 가슴에 기대어 통곡하며
  • 승인 2014.04.2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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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대진초등학교장
박경선 대구대진초등학교장
4월 16일,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 그들 중 많은 학생들이 아직도 진도 바다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한, 우리 국민들은 지금 모두, 밥을 먹어도 마음의 허기를 메울 수 없고 잠을 자도 잠결에 눈물이 흐르지요?

잠 깨면 새날이 밝아 하늘바람꽃, 팥꽃, 병아리나무꽃이 저리 예쁘게 피어남을 봅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아름다움을 허물어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며 죽어간 개나리, 진달래의 꽃잎이 녹아내리듯이 침몰하는 배 속의 목숨을 구하며 죽어간 승무원 박지영, 단원고 남윤철 선생님을 위시한 여러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어른이라는 사실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살아 있음 자체에 대해서도 왜 이리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한 조각 의지하고 싶은 건, 같은 교직에 있기에 순직한 선생님들 이야기가 다소 위로가 됩니다. 자기가 구출되는 순간 학생들이 100명밖에 안보여 다시 학생들 구하러 내려갔다가 변을 당한 남윤철 선생님을 위시해서 혼자만 살겠다고 뛰쳐나오지 않고 인솔 책임을 지고 배속에서 끝까지 학생들을 지도하며 학생들과 함께 죽어간 선생님들이 있기에 부끄러움을 다소 가려주긴 합니다만 그래도 부끄럽고 면목이 없습니다.

적어도 나는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대한민국의 품에서 은혜를 누리며 살았고 한 평생 어린 제자들을 키워왔으며 지금도 책임 있는 자리에 있기에 만약을 생각해봅니다.

만약, 불의의 재난 앞이라면 선봉에 서서 내 목숨 바쳐 죽어가는 생명들을 구하며 한 번뿐인 죽음을 의롭게 맞아야한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이미 살만큼 살았고 장기 기증까지 허언해놓은 상태라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1950년 6,25사변 때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대통령이 제일 먼저 서울을 빠져나갔다는 역사적 사실이 생각나면 머리를 흔들어봅니다.

단원고 교감이 학교 여행 인솔 총책임자로 함께 동승했지만 비행기나 배에서만은 인솔책임 교감이라도 명령을 내릴 수 없고 사법권까지 가지고 배 속의 모든 일을 총책임지는 권한으로 사명을 다해야 하는 분이 선장인데, 그런 선장이 가장 먼저 탈출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또 부정하고 싶어도 그 치욕적인 사실이 정면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죄 없는 자는 돌을 들어 저 여인을 쳐라”했지만 나 역시, 내 목숨이 달려있는 그런 극한 상황에서라면 나도 내가 아니요. 내가 이승만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겠고 내가 세월호 선장이 될지도 모르겠기에…

어쨌든, 책임은 인간이라는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나 연약한 영혼으로 사는 우리 어른들 탓입니다.

안전수칙을 제대로 세워두지 못하고 안전에 대하여 꼼꼼하게 점검하고 행동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의 무사안일과 하루하루의 성과에만 급급하게 매달려 살던 우리 어른들 탓에 세월호를 탔던 수학여행단 아이들 중 많은 아이들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아직도 배 속 어느 곳에 안전하게 살아 있기를, 바다 속에서 산소를 공급해주는 신기한 물풀을 만나 안전하게 살아남아 무사 귀환하기를 우리 국민 모두는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있습니다. 구출되어 부모의 품으로, 선생님의 품으로 돌아온 아이들을 보면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하지만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어디에 묻어야 할까요?

이 아이들이 묻힐 곳은 부모의 가슴이거나 선생님의 가슴이거나 우리 온 국민의 가슴속일 겁니다. 아, 봄날이라 해도 날씨가 이리 쌀쌀한데 바다 속 온도는 얼마나 차울까요?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아! 그러나 너는 내 아들이다. 내 딸이다./너 혼자 먼 길 떠날지라도 두려움에 떨거나 놀라지 않도록, 아! 그 풍성한 복을 참 많이 받고 참 많이 받고/오, 우리 하느님, 석가님, 천지신명님! 늘 보호하소서 늘 보호하소서」

입센의 소설『페르 퀸트』가 연극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 주인공 솔베이그가 백발이 되어 돌아온 애인 페르귄트를 무릎에 눕혀두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부르던 그 노래가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노래가 될 줄이야.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살아있는 어른들의 삶이 이리 아프고 허무한데 오늘도 꽃은 피지요? 맞습니다. 우리, 이제라도 허리를 곧추 세워 일어서 봅시다. 우리와 비슷한 사고가 났을 때 아이와 여자들을 먼저 태워 보내 구출하고 배와 운명을 같이 했던 영국의 멋진 선장 이야기 앞에 기죽거나 부끄러워 고개 떨구지 말고 허리를 세워 서서 앞을 바로 바라봅시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하고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나라는 내 나라, 내 조국뿐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시설들을 안전하게 점검하고 안전수칙을 제대로 세워 안전에 대비한 훈련을 철저히 하며 누구라도 불행하거나, 사고 때문에는 아름답게라도 죽지 않도록 깨어나고 분발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이 또 다시 망각의 늪에 빠지지 않고 건강한 대한민국, 자랑스런 대한민국, 빛나는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게 되는 자성의 크나큰 디딤돌이 되기를 염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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