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들도 하는데 …
쥐들도 하는데 …
  • 승인 2014.08.2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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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논설위원
‘쥐들의 외통(外通)’이라는 현상이 있다. 장기를 둘 때, 상대방의 ‘장군’에 궁(宮)이 꼼짝할 수 없게 되듯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쥐들이 한자리에 붙박인 채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기이한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18세기 독일에서 80회 이상 발견되었고, 금세기 초 이래 프랑스에서도 9차례 발견되었다. 그 중 하나는 스트라스부르 동물학 박물관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열에서 서른 둘까지 다양한 숫자로 서로의 꼬리를 매듭처럼 풀어지지 않게 엮은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먹이를 구하지도 못하는 궁지에 빠진 쥐들이 발견되었다. 이 기이한 현상의 원인은 아직까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어떤 비좁은 구석에 처박히게 된 새끼 쥐들이 우연히 서로의 꼬리를 얽히게 되었는데, 새끼 쥐들의 꼬리에는 아교처럼 끈끈한 액이 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밖에 다른 가설은 어미 쥐들이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여 새끼들을 굶어 죽게 하려고 꼬리를 엮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에 이루어진 관찰 결과, 외통에 걸려 꼼짝할 수 없게 된 쥐들에게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이 먹이를 공급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불구가 되어버린 쥐들을 살리는 것이 쥐 사회에 무슨 이익이 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쥐들의 외통을 둘러싸고 하나의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동물들이 더불어 살기 시작한 것은 지구상에 터전을 잡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최초의 거주자였던 곤충들은 지구상에 생존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듯 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작고 연약해서 모든 포식자의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먹이감이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메뚜기 같은 곤충들은 알을 아주 많이 낳아서 그 중 꼭 살아남는 자가 생기게 하는 번식전략을 택했다.

말벌이나 꿀벌 같은 곤충들은 독을 선택했고,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독침을 발전시켰고 그들 스스로를 무서운 존재로 만들어 갔다. 바퀴벌레 같은 곤충들은 포식자들이 먹기에 부적합한 형태로 발전했다. 특수한 분비샘에서 나오는 물질이 고약한 맛을 내기 때문에 어떤 포식자도 덤비지 않았다.

사마귀나 밤나방처럼 위장전술을 채택한 곤충도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풀이나 나무껍질처럼 만듦으로써 포식자를 피했다. 그러나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초기의 정글에서 살아남는 비결을 찾지 못한 곤충들은 더 이상 생존을 유지할 수 없었다.

지구상에 출현한 지 1억 5천만년 가까이 된 흰개미들도 위기상황에 직면했다. 나무를 쏠아 먹고 사는 이 종은 포식자가 너무 많은 데 저항할 수단은 거의 없었다. 많은 흰개미들이 죽어갔고 살아남은 개미들은 궁지에 몰렸다.

궁지에 몰린 흰개미들은 마침내 독창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둘이서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셋 이상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흰개미들은 더불어 사는 지혜를 터득했던 것이다. 그들은 단합의 힘을 발견했고, 모듬살이의 생존방식을 개척했다.

그때부터 흰개미들은 작은 세포들이 모인 것처럼 살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족단위로, 알을 낳은 어미 흰개미 주위에 모두 모여 살았다. 그러다가 가족이 촌락이 되고 촌락이 도시가 되었다. 더불어 사는 지혜를 터득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모래와 흙반죽으로 이루어진 흰개미의 도시들이 지구 곳곳에 솟아 올랐다. 이들 흰개미들은 인간의 문명이 지구 곳곳에 등장하기 전에 이미 모듬살이의 정교한 생존방식을 통해 지구를 지배한 영리한 곤충이었다.

더 힘 세고 더 빠르고 더 날카로운 무기를 가진 포식자들 틈에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직립보행과 도구의 이용과 불의 발명이라는 미시적인 요인이 있긴 하지만, 더불어 살아 가고자 한 인간의 거시적인 모듬살이의 지혜가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적어도 이들 곤충들보다는 더 발전된 동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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