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순간 마주한 이순신, 그를 따라 걸으니 나를 만나더라
힘든 순간 마주한 이순신, 그를 따라 걸으니 나를 만나더라
  • 김정석
  • 승인 2014.08.30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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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이 방송작가
유신정권 막바지에 초등학교 다녀
이순신은 주입된 역사, 박제된 영웅
TV드라마 보고 선입견 무너져
난중일기 원본 처음 본 순간
뒷덜미 쭈뼛해지고 온몸에 소름
이순신 관련 지역 600여㎞ 여행
지자체, 앞다퉈 이순신 관광상품화
MBC작가인터뷰06
‘물소리가 들린다. 우우우 하고 우는 것 같더니 이내 쿠르릉 소리를 낸다. 그 사이로 스륵스륵 물결 부딪히는 소리도 들린다. 울음 우는 바다 울돌목에서는 물이 그렇게 흐른다. 좁은 해협으로 쏟아질 듯 모여든 물이 앞다투어 서해로, 다시 남해로 달리면서 그렇게 요란한 소리를 내지른다.’(297p)

전라남도 진도의 진도대교에서 세차게 물을 빨아들이고 있는 울돌목, 즉 명량(鳴梁)을 바라봤던 그 순간을 그녀는 이렇게 옮겨 적었다. 이순신 장군이 거친 물살을 바라보며 극한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던 바로 그곳에서 그녀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을 깨닫고 떠올렸다.

울돌목을 비롯해 그녀가 겨를이 날 때마다 자신의 일터를 떠나 정읍과 여수, 사천과 통영, 진주와 거제도, 그리고 한양에서 합천 초계까지 이어지는 600여㎞의 기나긴 길을 굳이 찾았던 이유는 오로지 ‘이순신’ 때문이었다.
대구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진이(45) 작가는 그렇게 이순신의 숨이 스며든 전국 곳곳을 찾아 디뎠다. 그리고 그 기록을 ‘이순신을 찾아 떠난 여행’이라는 제목의 책에다 고스란히 새겼다.

영화 ‘명량’이 무려 1천6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유례없는 업적을 달성하면서, 이순신 장군의 살아온 길은 물론이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순신을 키워드로 한 모든 것’들의 명단에는 그녀의 책 또한 이름이 올라가 있다. 어떤 기회로든 이 작가의 책을 펼쳐보게 된 이들은, 그녀의 책 안에서도 역시 이순신에 대한 모든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학창시절 수학여행 때만 해도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를 보면서 그저 시큰둥했던 그녀가, 불현듯 이순신의 매력에 빠지고 전국을 여행하며 이순신의 발자취를 찾아나선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이 작가의 책을 짚어가며 묻고 들었다.



‘난중일기와 장검은 나를 이순신의 세계로 이끌었다. 장검에 새겨진 검명에 떨었고 난중일기에 써내려간 글자 하나하나에 감동했다. 무인의 기개와 선비의 학식, 엄격하면서도 속정 깊은 인간적 면모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자 이순신이 구릿빛 동상 속의 박제된 영웅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앞에서 고뇌하는 인간으로 점차 다가왔다.’(37p)

이 작가가 처음으로 이순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TV에서 방영한 한 드라마 때문이었다. 예고편을 보고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청하기 시작했던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첫 회를 보고 이 작가는 빠르게 이순신에게 빠져들었다.

“저는 유신정권 막바지에 국민학교를 다닌 탓에 수시로 반공을 주제로 글짓기를 하고 표어를 지었어요. 이순신도 그런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주제였죠. 저에게 이순신은 국기에 대한 맹세나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는 것처럼 주입된 역사였고 기억 속에 박제된 영웅이었죠.”

하지만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이순신에 대한 그녀의 선입견을 조금씩 무너뜨렸다. 그 역시 인간이기에 불완전했고, 그 불완전함을 고뇌와 의지로 극복해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 작가의 머릿속에서는 전혀 새로운 모습의 이순신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그녀는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읽기 시작했고, 책을 통해 이 작가의 머릿속 이순신은 좀 더 ‘인간’에 바짝 다가섰다.

결국 그녀가 손에 쥔 ‘난중일기’는 이 작가를 이순신의 세계로 인도했던 것은 물론, 이순신과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준 유일한 매개체가 됐다.

이 작가는 난중일기 원본을 처음 보았을 때를 “뒷덜미가 쭈뼛해지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던 일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기억했다.



‘백의종군과 연안 답사길이야말로 이순신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극한 순간을 스스로의 의지로 극복하려는 한 인간이 걸어간 길, 그 길을 따라 나서면 나 역시 나에게 주어진 시련과 슬픔을 거뜬히 넘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261p)

나쁜 일은 한꺼번에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이진이 작가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원래부터 여행을 좋아했는데, ‘불멸의 이순신’을 보면서 이순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괜찮겠다 싶었다”라고 쉽게 말했지만, 사실 이 작가가 여행을 결심했던 때의 상황이 썩 녹록지만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당신이 꿈속에 등장해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었고, 가깝게 지내던 이들이 연이어 세상을 등지는 일도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필 그때 좋아했던 이와의 관계를 정리해야만 했고 같은 일을 하던 후배가 몇 가지 오해로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몸까지 아픈 상황에서 이 작가는 우연히 이순신과 마주했다. 삶에서 가장 힘겨운 순간에 운명처럼 그를 만났다.

이 작가는 “그래서 혼자 한산도에 갔다. 당시에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의 바다가 거기 있었기 때문에 무작정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산도에서의 체험은 이후 나를 끊임없이 남쪽 바다로 이끌었으며 이것이 결국 ‘나만의 이순신 유적 답사’로 이어지게 됐다”고 자신의 책 서문에 썼다.



‘쉽지는 않지만 가끔씩 나에게 냉정해지려고 한다. 원칙과 소신을 갖고 살아가려고 애써도 남루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삶, 거기서 한 발짝 더 물러선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우스워질까? 그래서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쉽고 빠른 길로 달려가고 싶을 때마다 이순신을 생각한다.’(67p)

이 작가의 책에 담겨있는 것처럼, 그녀는 이순신을 따라 참 많은 곳을 다녔다. 대구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남해를 찾아가는 것은 수월했다. 처음에는 재미삼아 유명한 곳부터 한곳 한곳 찾아갔는데, 나중에는 쉽게 찾아가기 힘든 깊은 곳까지 들어가게 됐다.

이순신이 처음 바다와 연을 맺게 된 전남 고흥 발포, 이순신의 삶에서 가장 평온했던 시기를 보냈던 전북 정읍, 전라좌수영의 도시 여수, 당항포해전의 격전지인 경남 고성, 이순신의 도시 통영, 명량해전의 격전지 해남과 진도, 이순신의 마지막 바다 노량까지.

그 중에서도 한양(서울)에서 합천 초계까지 이어지는 백의종군로와 연안답사길은 그녀로 하여금 이순신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한 길이었다.

“제가 이순신을 따라 걸은 길을 다른 이들이 따라 걷는다면, 얻게 되는 것들이 참 많으리라고 확신합니다. ‘힐링’이나 ‘멘토’ 따위의 말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순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분명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거예요. 이순신의 입장에 서서 과연 무슨 고민을 했을지, 어떻게 싸웠을지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인생의 멘토로 내 인생에 들어오게 되는 거죠.”



‘2년 전에 왔을 때보다 진남관이 훨씬 깔끔해지고 여기저기 손본 곳도 많아 보인다고 하자 어르신들은 여수시가 계획하고 있는 전라좌수영지 복원사업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인 즉, 진남관에서 고소대까지 구름다리를 놓아서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것인데 나는 그만 충격을 받고 말았다.’(103p)

MBC작가33
이순신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면서 이 작가는 종종 이순신의 유적지가 지나치게 화려하고 웅장하게 성역화됐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이순신과 자신의 이미지를 결부시키 위해 이순신 성웅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박정희 정권의 영향이 컸다.

일례로 충남 아산에 위치한 현충사는 이 작가에게 너무 크고 지나치게 웅장한 곳이었다. 위대한 이를 기리기 위한 건물을 짓는 방식이 당시에는 그랬다고 쳐도 지나치게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은 이순신의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반면 경남 남해군에 지어진 충렬사는 이 작가가 전국에 산재해 있는 이순신 사당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는다. 이순신이 전사한 후 그의 시신을 처음 모셨던 곳인 남해 충렬사에 대해 이 작가는 “그의 성정을 닮은 듯 소박하면서도 단아하다. 크기로 사람을 압도하는 현충사나 한산도 충무사와 달리 아담하면서도 기품이 있다”고 평가했다.

또 이 작가는 최근 영화 ‘명량’이 열풍을 일으키면서 이순신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지자체들이 앞다퉈 이순신을 관광상품화하는 움직임에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부정을 저지르고 잠시 권력에서 밀려나면 백의종군 하겠다고 떠들어대는 정계 인사들의 행태에도 비판적이다. 이순신이 부정을 저질러 백의종군을 한 것도 아닌데 그들이 너무 쉽게 백의종군을 말한다는 것이다.

“크고 화려한 건물 속에 정작 제대로된 내용이 없다면 문화행정의 실패일 뿐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례들이 이미 많고, 만들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와 이순신에 대해 생각하고 이순신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죠. 이순신의 삶과 정신은 결코 지역의 관광상품이나 지자체장의 업적이 돼선 안 됩니다.”



‘우리 시대 이순신은 어떤 존재인가, 왜 다시 이순신인가, 이런 질문에 거창한 답을 달고 싶지 않다. 사실 그럴 능력도 없다. 다만 지금 당신의 삶이 몹시 힘들다고 생각된다면, 당신의 일상이 너무 퍽퍽해서 뭔가 돌파구를 찾고 싶다면, 나처럼 이순신의 삶을 따라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준비를 많이 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난중일기 한 권과 지도 한 장이면 떠날 수 있다.’(387p)

그녀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썼다. 이 작가의 여정에 도움을 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문장들도 길게 이어졌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에게 감사를 전하는 말로 책을 마무리했다. 삶이 몹시 힘들다고 생각될 때, 일상이 너무 퍽퍽해서 돌파구를 찾을 수 없을 때 이순신을 찾아 여행을 떠난 자기 자신에게 감사를 전하는 말. 그녀의 손에는 아직도 난중일기 한 권이 쥐여 있다.

김정석기자 kjs@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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