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위에 다시 그리는 노년의 행복
백지 위에 다시 그리는 노년의 행복
  • 김정석
  • 승인 2014.10.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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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스케치 대구 대현교육센터 어르신 민화 그리기 수업

심하게 떨리는 손길

온정성 다해 붓질

화사하게 피어난 그림에

작은 성취감 엷은 미소

흥겨움에 “한오백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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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대현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민화 그리기 수업에서 서덕수 할아버지가 부귀를 상징하는 목단을 정성스레 채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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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신외철 할머니가 20일 대현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민화 그리기 수업에서 문자도를 그리고 있다. 김정석기자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한 오백년~ 살자는데~”

20일 오전 대구 북구 대현교육문화센터 3층 교육장에서는 난데없이 ‘한오백년’의 노랫가락이 울려퍼졌다. 분명 이 시각 진행되는 수업은 민화그리기 수업인데, 구성진 가락이 흘러나오는 것은 붓을 쥔 어르신들이 흥에 담뿍 취한 까닭이다.

이날 대현교육문화센터 교육장에는 10여명의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조심스럽게 종이 위에 색색깔의 물감을 칠하고 있었다. 궂은 날씨에도 꿋꿋이 교육장에 출석한 어르신들의 눈빛에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민화 그리기 수업에 벌써 1년 6개월째 참여하고 있다는 신외철(82) 할머니는 붓을 쥔 손에 유독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심하게 흔들리는 손이 종이 위에서 위태롭게 오르내렸다.

“원래 나는 전통자수를 솜씨있게 해내곤 했었어. 열일곱 때부터 동양수를 놨으니까. 그런데 나이가 들다보니 수전증이 심해져서 지금은 밥그릇을 다리 위에 놓고 방짜숟갈로 밥을 먹는 신세가 됐어. 그러다 무슨 바람이 들어선지 민화 그리기 수업에 용기를 내고 도전하게 됐어. 글씨는 삐뚤빼뚤해서 좀 부끄럽지만…. 그래도 이걸 그리고 앉아있으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한획 한획을 정성들여 색칠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붓은 저마다 다른 모습이었다. 한 어르신은 종이 한 가득 화사하게 피어난 목단을 그렸고, 또 다른 어르신은 빼곡히 그려진 글자에 푸른색 붉은색 녹색 물감을 입혔다.

어르신들에게 민화 그리기 수업을 지도하는 정옥희 한국미술협회 불화분과 이사는 “민화 그리기 ‘초보’는 목단 그리기부터 시작해야 하고, 조금 익숙해졌다 싶으면 종이 한 가득 ‘목숨 수(壽)’자와 ‘복 복(福)’자를 새기는 문자도를 그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목단화와 문자도를 모두 뗀 ‘고수’들은 잉어와 죽순, 곳간열쇠 따위의 그림으로 글자를 만드는 고난이도 작품을 그리게 된다.

구석 테이블에 앉아있는 서덕수(74) 할아버지는 목단을 그리고 있는 걸로 보아 ‘초보’인 모양이었다. 기자가 “할아버지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어봐도 묵묵부답. 곧장 수업을 도와주고 있는 교사 한 명이 달려와 “이 분은 귀가 잘 안 들리세요. 글자로 써야 해요”라고 말한다. ‘대구신문에서 취재를 나왔다’라고 적으니 할아버지는 금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가을 학기가 끝나는 12월이 오면, 북구에서 두 번째로 세워지는 구립도서관인 대현도서관 개관에 맞춰 어르신들은 전시회도 가질 계획이다.

정옥희 이사는 “솔직히 처음 수업을 맡게 됐을 때 평생 붓을 잡아본 적이 없는 어르신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지금은 그림을 그리며 매우 행복해하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나 자신도 행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정석기자 kjs@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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