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으로 이상사회 꿈 꾼 선조들의 魂이 ‘고스란히’
학문으로 이상사회 꿈 꾼 선조들의 魂이 ‘고스란히’
  • 김상만
  • 승인 2014.12.07 13: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북 정신의 이정표' 국학진흥원 유교책판
안동 도산면 개소 20여년 재도약 준비
305개 문중 718종 6만4천226장 기탁
퇴계선생문집 등 500년 기록유산 보존
목판상설전시관·홈피서 자료 열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눈앞’
장판각1
장판각 외부 전경.
‘전통문화유산의 조사연구를 통해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정신적 좌표를 확립하기 위해 설립된 국학 전문 연구기관.’

경북도가 지난 1995년 안동시 도산면에 문을 연 한국국학진흥원의 설립 이념이다. 국학진흥원은 이후 20년 동안 국학을 중심으로 한 경북의 혼과 정신을 정립해 왔다.

국학진흥원은 지난 9월 제7대 이용두 원장이 취임하면서 새로운 도약기를 맞고 있다.

국학진흥원의 국학자료 수집·보존, 국학연구, 고전국역, 교육연수 등의 사업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자 한자 선현의 정신을 각인시킨 ‘유교책판(儒敎冊版)’의 보존과 이를 통한 경북정신의 정립이다.

◆한국정신 이끈 유교책판

장판각내부2
장판각 내부 모집.
유교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학문을 통해 유교적 이상 사회를 앞당기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를 구현하는 열망을 품었다.

그리고 그 정신과 가치를 ‘책판’에 깊이 새겼다. 이를 두고 조선 후기 학자 이덕무는 ‘백대만인의 이익이니 천하의 보배’라 칭송했다.

1878년 도산서원을 찾은 면우 곽종석은 퇴계선생문집 책판을 보고 ‘붓 들어 쓰지 않고도 하루에 일천 장을 찍으니, 우리 유학의 무진장한 보배는 바로 이것이다’며 감탄했다.

‘유교책판’은 500여 년 이어온 조선 유학자들의 정수를 담은 불멸의 기록 유산이다.

이에 대한 가치를 따져본다면 ‘해인사에 팔만대장경이 있다면 국학진흥원에 유교책판이 있다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예로부터 ‘문헌의 고장’으로 일컬어져 온 영남 지역. 조선시대 유교 문화가 융성했던 곳으로 지금까지 유교 관련 문화유산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스승에서 제자, 다시 그 제자로 이어지는 관계를 형성하며 그 세계관과 이상을 ‘유교책판’을 통해 실현코자 했다.

퇴계 이황의 자취가 서린 영지산 자락 아래 자리한 한국국학진흥원. 최신 보존 설비를 갖춘 2개 동의 현대식 장판각에는 2014년 12월 현재, 총 305개 문중에서 기탁된 718종 6만4천226장의 ‘유교책판’이 소장돼 있다. 15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시대를 달리해 제작된 ‘유교책판’은 각 문중과 서원 등에서 후손과 후학들이 대대로 보관해 오다 국학진흥원에 기탁했다.

책판들은 지금도 인출이 가능할 정도로 본연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연구자는 물론 일반인의 자유로운 열람을 위해 한국유교문화박물관 4층에 목판상설전시관을 마련하는 한편 장판각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도 ‘유교책판’의 사진과 해제 및 서지 사항 등을 제공하고 있다.

서책(codex)의 유일한 원형이자 원본인 ‘유교책판’은 단순히 인쇄를 위한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1460년 제작된 ‘배자예부운략(排字禮部韻略)’은 간행 연대가 가장 오래된 유교책판이다.

서적을 간행한 후, 책판은 장판각에 모셔두고 영구 보존하며 끝까지 변하지 않는 학문의 상징으로 삼았다.

이처럼 저자의 직계 후손들이 길게는 550년에서 짧게는 100년 이상 보존해 온 기록 유산인 유교책판은 모두 출처가 분명한 ‘진본’이다.

‘유교책판’은 선현의 사후, 후학들에 의해 ‘공론’이라는 엄격한 심의 과정을 거쳐 제작된 것으로 조사됐다.

‘문중-학맥-서원-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여론을 수렴하고 이 과정에서 인정된 정제된 내용만 책판에 수록한 것이다.

조선시대 민간에서 ‘유교책판’을 판각하는 작업은 문중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정성과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대사였다.

이들은 공론을 통해 제작은 물론 출간 경비까지 자체적으로 충당하는 ‘공동체 출판’이라는 독자적이고 선구적인 방식을 선보였다.

20세기 들어 공동체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서구에 비해 조선은 이미 16세기부터 공동체 구현을 위해 노력했고, 그 전통이 ‘유교책판’으로 남게 됐다.

결론적으로 ‘유교책판’은 조선시대가 일궈낸 지식을 집약적으로 담고 있는 창고이자 선조들의 열정을 오롯이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유산이다.

책판에 새겨진 유교 이념은 과거의 유물로 그치지 않고 현대인들의 삶의 이정표인 동시에 미래 세대 희망의 메시지로 평가 받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눈앞’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민동석 사무총장이 지난 7월 16일 한국국학진흥원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한국국학진흥원이 역점 사업으로 추진 중인 ‘유교책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지원·협의하기 위한 것으로 유교책판이 보관된 장판각을 중점적으로 둘러봤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태분과위원회의 김귀배 부회장도 동행했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교책판(718종 6만4천226장)은 문화재청 국내 심사를 거쳐 지난 2월에 등재신청 후보로 확정됐다.

현재 유네스코 본부에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등재신청서가 제출된 상태이며, 내년 6월 열릴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이번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민 사무총장의 방문을 계기로 ‘유교책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유관기관의 실질적인 협력 지원 체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아울러 유교책판의 가치와 의미를 한층 더 구체적으로 홍보해 국민의 관심 속에 당당히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앞선 지난 6월 13일 ‘유교책판의 기록유산적 가치’라는 주제의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학술행사는 유교책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내 심사를 통과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목판(木板), 지식의 숲을 거닐다’라는 주제의 목판특별전을 열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렸다.

지난해 10월에는 전통 인쇄문화의 우수성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유교목판을 일반에 소개하고 제작과정을 시연하는 등 ‘목판 판각 예술의 발전적 계승’을 주제로 한 유교목판축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718종 6만여종의 유교책판

△퇴계선생문집(退溪先生文集)=1600년에 간행된 퇴계집 책판. 퇴계집은 여러 필사본이 있으며 목판본의 경우도 다수의 복간이 이뤄졌다. 이 책판은 개인문집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영남지역 목판의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

△배자예부운략(排字禮部韻略·조선후기)=보물 제917호. 시나 부(賦)를 지을 때 운을 찾기 위해 만든 자전인 배자예부운략을 판각한 책판. 과거 응시생들이 주로 사용했던 까닭에 과거를 관장하는 부서인 ‘예부’의 이름이 붙었다.

△중국고금역대연혁지도(조선후기)=조선후기의 학자 병곡 권구(1672~1749)가 청소년들의 교육을 위해 만든 동아시아 역사 연표. 중국의 삼황오제로부터 시작하는 중국 역사와 단군부터 시작되는 우리역사가 수록돼 있다. 이외에도 북방 유목 민족의 계보와 일본의 연혁 그리고 저자가 살았던 안동의 연혁이 기록돼 있다.

△선조어필(宣祖御筆·조선후기)=선조가 세자의 사부로 있던 송소 권우(1552~1590)에게 써 준 시문을 새긴 시판으로 16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중국 시인들의 시 4수가 새겨져 있다. 왕안석의 ‘매화’와 이백의 추보가 중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 장적의 ‘석화(惜花)’ 그리고 두보의 오언율시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 가운데 후반부 네 구절이다. 첫 번째 판목 시작 부분에 선조의 두인(頭印)이 찍혀 있고, 마지막 판목에 글씨의 내력이 적혀 있다.

△양녕대군 후적벽부(後赤壁賦·조선후기)=조선 태종의 장남인 양녕대군의 글씨를 새긴 병풍용 판목. 양녕대군은 세자에서 폐위된 뒤 전국을 누비며 풍류와 더불어 일생을 마쳤는데 시에 능하고 특히 글씨를 잘 썼다. 활달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초서체의 이 글씨에는 예속에 얽매이지 않은 듯한 양녕대군의 호방한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현재 양녕대군의 글씨로 전하는 것은 이 작품과 숭례문 편액 두 가지뿐이다. 내용은 중국 송대의 시인 동파 소식의 명문 ‘후적벽부’다. 적벽부는 1082년 소식이 호북성의 황주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황주의 성벽인 적벽에 올라 감회를 읊은 작품이다.

사진10성학십도
성학십도
△성학십도(聖學十圖·조선후기)=이황이 지은 ‘성학십도.’ 원래 성학십도는 이황이 1568년(선조 1년) 갓 등극한 선조에게 올릴 목적으로 성군이 되기 위한 학문인 ‘성학’의 개요를 그림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후 이황이 경연에 입시했을 때 선조가 성군이 되기를 바라면서 성학의 대강을 강의하고 심법의 요점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성리학자들의 도설에서 골라 책을 엮고, 각 도식 아래 자신의 의견을 서술해 왕에게 강론했다. 1681년 오도일이 간행했으며, 1741년 중간됐다. 성학이란 제왕학을 이르며, 십도는 태극도·서명도·소학도·대학도·백록동규도·심통성정도·인설도·심학도·경재잠도·숙흥야매잠도의 10가지다.

△학발시(鶴髮詩·조선후기)=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현모양처로 꼽히는 정부인 안동장씨가 초서로 쓴 학발시 시판. 학발시는 ‘머리털이 하얗게 센 할머니의 슬픔을 그린 시’라는 뜻으로 군역에 나간 아들을 기다리다 병든 이웃집의 노파와 그 젊은 아내의 슬픈 사연을 듣고 지은 것이라 전한다.

△퇴계 친필 서판(조선중기)=이 서판들은 퇴계 이황이 평생을 좌우명처럼 항상 마음에 새긴 경구로 그의 친필이며, 사무사(思無邪·삿된 생각을 하지말라), 무자기(毋自欺·자신을 속이지 말라), 신기독(愼其獨·혼자 있을 때 삼가라), 무불경(毋不敬·모든 것을 공경하라)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김상만기자 ksm@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