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일어나~” 발길 멈추고 추억속으로
“일어나 일어나~” 발길 멈추고 추억속으로
  • 남승렬
  • 승인 2015.01.2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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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천시장 김광석길 ‘골목방송’ 인기몰이
대구 중구청 아이디어 제안
문화해설사 2인 1조로 진행
매주 토·일 오후 2~3시 방송
관광객들과 실시간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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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김광석길 골목방송스튜디오’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골목문화해설사 배경민(오른쪽)씨와 김남옥씨. 이들은 이날 각각 DJ와 스텝을 맡았다.
그저 ‘가수’라는 단어의 범주 안에 가둬주기엔 그의 가창력과 목소리는 너무나 아까웠다. 처량함과 경쾌함이 공존하는 그의 목소리가 빚어낸 ‘노래’, 그 어떤 ‘새드 무비’(sad movie)보다 슬프고 극적이었던 그 ‘삶’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시대는 짧고 명료한 수식어 하나를 그에게 부여한다. ‘가객’(歌客·시조 따위를 잘 짓거나 창을 잘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가객의 노래 인생 첫 무대는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월항쟁의 뜨거운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그해 10월 13일 기독교 백주년 기념관에는 대학생들이 주를 이룬 인파가 몰려든다.

민중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의 첫 정기공연을 보기 위해 찾은 인파들이다. 공연은 몇달 전 6월항쟁 이전만 해도 차마 부를 수 없었던 노래들로 채워진다. 4·19 혁명 당시 희생된 넋들을 위한 노래 ‘진달래’, 김민기의 ‘친구’, 이상화의 저항시를 노래로 표현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젊은 청춘들은 뜨거운 피를 주체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노찾사의 노래를 ‘떼창’한다. 공연 막바지, 작은 체구의 가객이 등장한다. 이날 가객이 부른 노래는 ‘이 산하에’. 1절은 갑오농민전쟁, 2절은 3·1운동, 3절은 북만주 항일무장투쟁을 형상화한 이 장엄하면서도 격정적인 노래를 이 가객은 매우 유려한 미성으로 소화해 냈다.

가객 김광석. 그는 그렇게 대중의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암울했던 군부독재 시절 지하에서 몰래 몰래 부르던 노래를 지상으로 끌어올린 노찾사의 일원으로 김광석은 노래 인생의 첫 무대를 장식했다. 이후 동물원의 보컬을 거쳐 솔로 활동을 해오면서 그는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바람이 불어오는 곳’, ‘사랑했지만’, ‘이등병의 편지’,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일어나’, ‘부치지 못한 편지’ 등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주옥과도 같은 노래를 부르며 대중과 호흡했다.

◆방천시장, 김광석의 미성이 흐른다

그런 김광석이 떠난 지도 벌써 19년의 시간이 흘렀다. 1996년 1월 6일 새벽, 1천회가 넘는 공연 일정의 하루를 마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는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떠한 변명거리 글 한장도 남기지 않고,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목소리만을 남긴 채…

그는 그렇게 떠났지만 대구시 중구 방천시장 ‘김광석다시그리기길’(김광석길)에서는 매일 그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가 떠난 지 19년, 그러나 그의 노래와 목소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최근엔 김광석이 남긴 노래만을 선곡해 방송하는 ‘김광석길 골목방송스튜디오’가 문을 열어 그의 노래는 새삼 주목 받고 있다.

골목방송스튜디오는 지난 10일 첫 전파를 탔다. 우선 1월 한달 시범방송 기간을 거쳐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된다. 매주 토·일요일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한시간 동안 전파를 타는 이 방송은 대구 중구청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김광석길 활성화와 더 많은 관광객 유입 등을 위해 중구청이 대구지역에서 활동하는 골목문화해설사들에게 방송 진행을 제안하자, 해설사들이 이를 수용하면서 성사된 것.

대구근대골목투어를 진행하는 40여명의 골목문화해설사 중 현재 6명의 해설사들이 2인1조를 구성, 매주 주말 방송 큐시트를 직접 짜고 진행을 하고 있다.

◆골목방송에 김광석 추억 ‘새록새록’

방송을 직접 듣기 위해 김광석길을 찾은 지난 24일 오후. 주말을 맞아 김광석길은 외지에서 온 가족과 연인 단위의 관광객 등으로 넘쳐났다. 주말 김광석길을 찾은 이는 대략 4~5천명에 이른다. 이들은 김광석과 관련된 벽화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등 추억쌓기에 여념이 없었다.

350m에 이르는 벽화거리에 드문 드문 달린 스피커를 통해 김광석의 노래와 진행자의 멘트가 흘러나오자 방문객들은 발길을 멈추고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새로 생긴 스튜디오가 신기한 듯 관광객들은 방송국 창에 시선을 고정한 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안을 들여다 보기도 했다.

스튜디오 안에서 만난 골목문화해설사 김남옥(여·45)씨와 배경민(여·39)씨는 이날 ‘방송 당번’이었다. 이들은 “어제밤부터 너무 설레고 긴장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며 “하지만 김광석의 노래와 함께 우리의 목소리가 방송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전남 순천에서 왔다는 연인 유대원(남·29)씨와 남보다(여·29)씨는 “입소문을 듣고 시간을 내 일부러 김광석길을 찾아왔다”며 “김광석과 관련된 방송까지 나오니 추억여행을 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골목방송스튜디오 방송국장 이은정(여·44)씨는 “지금은 김광석의 노래 이야기를 소재로 방송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SNS와 온라인 카페 등을 통해 관광객들의 실시간 사연도 받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해 김광석길을 찾는 모든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우리 시대의 영원한 가객, 김광석. 하지만 그는 방천시장에서 여전히 살아 예의 그 감미로운 미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듯 했다. 지친 서민의 삶에 희망을 선사하는 듯,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글·사진 남승렬기자 pdnamsy@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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