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눈물
정치인의 눈물
  • 승인 2015.02.2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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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창 명예 주필
여민 컴 대표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TV광고는 오래 기억될 수작이었다. 노 후보는 존 레넌의 ‘이매진’을 배경음악으로 노동자들과 소주잔을 기울였다. 이어 붉은 악마의 월드컵 응원, 고달픈 삶의 현장이 오버랩되고 영상이 흑백으로 바뀐 뒤 클로즈업된 노 후보의 얼굴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어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도 눈물을 흘리는 이미지 광고를 제작했다. 재래시장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의 모습을 담은 화면과 함께 이 후보는 “살려 주이소”를 반복하는 할머니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글썽였다. 노무현, 이명박 두 사람은 ‘눈물 효과’인지 모르나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다. 하지만 정치인의 눈물이 항상 긍정적 효과를 거두는 건 아니다.

1972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에서 선두주자였던 에드먼드 머스키 상원의원은 언론의 공격을 받던 아내를 변호하며 눈물을 떨구다가 경선에서 졌다. 머스키의 눈물이 유권자들에게 무능과 허약함의 상징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눈물은 따뜻한 이미지를 형성해 유권자의 이해와 동조를 얻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칫 더욱 허약한 이미지로 비치거나 냉소를 부를 수도 있다. 따라서 정치인은 눈물도 제대로 적절한 시점에 흘려야 한다.

남성적 이미지를 과시하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2012년 3월 선거에서 승리한 뒤 연설 도중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기대한 효과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눈물은 러시아 내 반대세력에게 조롱거리가 됐다.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러시아 푸시킨 광장에 뿌려진 전단지의 조롱 문구다. 또 영국 가디언 지는 “푸틴이 흘린 눈물의 진위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푸틴의 눈물 연설은 시위대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고 전했다.

푸틴의 눈물이 조롱과 냉소를 부른 것은 ‘국민을 생각하는 눈물’이 아니라 ‘계산된 눈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이완구 국무총리와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지난 24일 ‘눈물 회동’이 ‘웃픈’(웃기면서 슬픈) 상황을 연출하면서 비웃음을 샀다. 두 사람은 여야 원내협상의 파트너로서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그러나 총리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개인적 친분을 잠시 접어야 했다. 우 원내대표는 이 총리 임명에 반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취재진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이에 동석했던 이 총리도 같이 눈물을 보였고 덕담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눈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국민 불인준 무자격 총리에게 이 무슨 짓인가? 역겹다.” “그동안 이완구 비리를 밝히기 위해 밤낮으로 뛰었던 새정치민주연합 청문회 의원들은 뭐가 되나?” “우윤근 원내대표는 공개사과를 하던지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등 ‘눈물 회동’에 날선 비판이 적잖다.

이완구 총리와 우윤근 원내대표의 눈물은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나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지 오래인 우리 정치에서 여야 원내대표가 서로를 위해 눈물을 흘릴 정도면 최고의 협상 파트너였을 것이다. 따라서 사사롭게는 아름다운 광경으로 칭송해도 무방하다. 그렇다 해도 두 사람의 ‘눈물 바람’은 부적절했다. 질타가 쏟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완구 총리와 우윤근 원내대표는 서로를 위해 울어줄 준비가 돼 있었다 해도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보여선 곤란했다. 이 총리에 대한 따가운 눈총이 여전한데다 생때같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들의 눈물도 아직 다 마르지 않았다. 인도 초대수상 네루는 “정치는 국민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렇다. 이 총리와 우 원내대표는 국민들의 애옥살이 삶에 대해 눈물을 흘려야지 그들 스스로 위해 눈물을 흘릴 계제가 아니었다. 적어도 행정부의 2인자쯤 됐으면 애국 애민의 눈물을 보여야지 사사로운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 했다는 얘기다.

고금과 동서를 막론하고 많은 정치인들이 대중들에게 눈물을 내보였다. 그 중에는 연출된 거짓 눈물, ‘악어의 눈물’도 있고, 진정 가슴 아파 흘린 ‘참 눈물’도 있었을 것이다. 거짓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고 하는 이유는 악어가 먹이를 삼킬 때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다. 언뜻 먹잇감 동물이 불쌍해 악어가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보이나 실상은 눈물샘과 입을 움직이는 신경이 같아서 먹이를 삼키기 좋게 수분을 보충해주기 위한 것일 뿐이다.

정치인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흔하지도 아주 드물지도 않다. 그러나 유독 정치인의 눈물에는 ‘악어의 눈물’이란 꼬리표가 붙는다. 그만큼 가식적인 경우가 많다는 뜻일 게다. 따라서 국민적 불신을 받고 있는 정치인은 더욱 더 눈물도 관리해야 한다. 정치공학에서 이미지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18세기 말 프랑스 화학자 라부아지에는 “어머니의 눈물이 뭐 길래, 내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할까?”라며 어머니의 눈물을 시험관에 받아 성분을 분석했다. 그러나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 어머니 눈물의 힘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공감이 아닐까.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악어의 눈물’이 아니라 국민들의 아픔에 한번이라도 남몰래 ‘공감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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