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 순국 105주년 추도식장에서
안중근의사 순국 105주년 추도식장에서
  • 승인 2015.03.2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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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객원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분들을 추모하는 행사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후손의 입장에서 선열을 생각하고 그 분들이 남긴 유지를 받들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영원무궁할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자라나는 후세학생들은 이러한 행사에 가급적이면 많이 참석하여 나라사랑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애국심을 기를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5천년 역사를 자랑하며 삼천리금수강산을 노래한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피비린내 나는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수많은 외침을 받아 풍전등화의 위기를 겪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만주일대를 무대로 삼았던 광개토대왕의 위대한 승리도 있었고, 세종대왕은 대마도를 정벌하여 왜놈들의 해적질을 소탕하는 전과도 올렸지만 오랑캐의 침입으로 삼전도에서 고두구배(叩頭九拜)를 해야 했던 비참한 경험도 했던 나라다. 임진왜란을 맞아 이순신같은 대장군도 낳았지만 붕당 싸움으로 나라는 혼란과 피폐를 면치 못하였다. 그리고 국제열강의 제국주의적 탐욕에 의해서 조선의 마지막은 일본의 차지가 되었다.

일제강점 36년이라고 하지만 동학혁명을 짓밟은 왜놈들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모두 빼앗으며 사실상 일본 점령군에게 먹혀버린 셈이 되었다. 조선왕조는 빈껍데기만 남은 형국이었다. 이를 분통하게 여긴 애국지사들이 의병으로 궐기한 것은 그나마 남아있는 조선민중의 의기(義氣)였다.

이 때 중국에 건너가 동지를 규합하고 단지(斷指)동맹을 맺어 목숨을 바치겠다고 나섰던 분이 안중근의사다.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졌지만 그 중에서도 이등박문을 처단한 후 ‘동양평화론’을 주장하여 일본과 중국의 당국과 지식인들에게 큰 감명을 줬다. 단순 테러리스트로 선전했던 일본군은 충격을 받았으며 안중근은 옥중에서도 그 의연한 기상으로 일본교도관들에게 ‘신’으로 받들어지기까지 했다.

그의 동양 평화론은 100년이 흘러간 지금도 그대로 유효한 이론이다. 안의사는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유지를 남겼다. ”내가 한국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야 3년 동안 해외에서 풍찬노숙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 곳 감옥에서 죽노니 우리들 2천만 동포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야 학문을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야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遺恨)이 없겠노라“

그리고 면회 왔던 안정근 안공근 두 동생에게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은 후에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워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의사께서는 모든 나라 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독립의 대업을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한 것이다.

후세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의사께서 남긴 애국단심을 기리는 것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유일한 의무다. 따라서 순국 105주년을 맞이하여 추모식을 거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에서는 3월21일 효창원 삼의사 묘역에서 105주년 추도식을 거행했다. 26일이 순국일이지만 평일은 학생들의 참여가 어려워 토요일을 택했다는 안내도 있었다. 모처럼 따스한 날씨에 많은 분들이 참석했다.

매원초교 김민규 김민지학생과 청주대성고교 송채원 송채영학생들의 추모사는 일반 추도식에서는 보기 힘든 백미(白眉)였다.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한 주최 측의 배려는 매우 의미 있었으며 특히 어린이합창단과 청소년평화오케스트라 연주도 더욱 권장할 만한 행사였다고 치하하고 싶다. 안의사를 추도하는 행사는 애국을 배우는 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린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어른들의 추모사에서 터졌다. 단재 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회장 김원웅과 안중근 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은 시종일관 박근혜정부를 근본적으로 불신하며 친일, 유신 등 정치규탄연설로 일관했다. 애국선열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기회가 왔다고 현실정치 비판에 열을 올린 것은 100여명의 초등, 중학 고교생들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새정치연합 문재인은 오히려 점잖게 발언한다고 청중 속에서 “야당답게 해”하는 야유가 나왔다. 어린 학생들에게 참으로 부끄러운 장면이었다.

애국선열을 추모하자고 나왔으면 안의사의 사상과 이념을 알리고 우리의 뜻을 다지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 아니던가. 수많은 선열 추도식에 가봤지만 이런 추태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정경이었다.

나는 외우(畏友) 이준형과 함께 효창원에 모셔진 김구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의사의 묘역에 참배하면서 오늘의 부끄러움을 되새겨봤다.

자칫하면 고귀한 선열의 뜻을 왜곡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나름대로 걱정하면서 왜놈들이 감춰버린 안중근의사의 시신을 반드시 찾아내 높은 뜻을 받들겠다고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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