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으로 세상 구경하기
느림의 미학으로 세상 구경하기
  • 승인 2015.04.2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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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대
한국폴리텍대학 섬유패션캠퍼스
패션디자인과 교수
한식 일을 즈음하여 고향에 있는 아버지 산소 주변 정리도 하고, 노후에 귀향할 준비를 위한 사전답사를 겸해 모처럼 시간이 되는 두 아들 녀석과 함께 영덕으로 향하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구에서 태어나서 자란 자식들한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고향에 대한 의미를 조금 더 알게 할 목적으로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걸음이었다.

날씨는 청명했으며, 흐드러지게 피어난 연분홍 꽃들로 펼쳐진 아름다운 세상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키듯 나의 시각과 뇌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직접 운전할 때는 도저히 느껴볼 수 없었던 풍경 감상 같은 소소함과 느긋함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참으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런 나의 행복감과는 반대로 두 아들은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입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 이유는 자가용을 이용할 때와는 달리 몇 번을 갈아타야하는 번거로움과 불편한 여러 요소들 때문이리라. 더구나 자신이 원해서가 아닌 아버지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하는 수동적인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모습이라 생각되지만, 그렇다고 멈출 내가 아니다. 우선은 조금 느리고 불편함에 짜증스럽기도 하겠지만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가치 있는 시간으로 기억하고 이해할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거창한 것 같지만 승용차 한 대에서 배출되는 매연가스 량을 생각하면 나 한사람의 대중교통 이용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파괴를 억제하는데 크게 기여한다고 본다. 나만 살면 끝이 아니라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 미칠 행복한 삶 까지도 염려하며 오늘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작은 불편함이 큰일을 도모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뿌듯함을 느낄 수 있으리라.

산소 주변 정리를 마무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하여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열심히 일한 대가와 억지로 참여하다시피한 녀석들의 기분도 풀어줄 겸 고향의 특산물인 대게와 회를 점심으로 먹으며 운전할 염려가 없으므로 모처럼 반주도 같이 즐겼다.

평소에 못 다한 얘기로 시간을 보내고 식사비를 계산 하려고하니 친구의 완강한 거절로 음식 값은 지불하지 못했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과 함께 내심 “봐라 이 녀석들아 친구, 의리 운운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를 만나느라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너희들과, 고작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얼굴 보는 아버지 친구와의 우정을 비교해 보아라! 어떤 것이 진정한 의리고 우정인지를”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한편으론 우쭐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번 일정은 계획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은 것 같아 마음이 몹시도 풍요로워짐을 느낀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과 그 아름다움을 지켜 최대한 긴 세월동안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기를 기도해보며 그러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실천의지를 다진다.

자식과의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어 좋았고, 오랜만에 만난 고향친구와 세상사는 이야기로 나눈 우정은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생활에서 삶의 활력소가 되어 오래 머물러 줄 것 같다. 대구로 향하는 차창 밖에는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듯 가뭄을 해소하는 단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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