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아버지와 그 집에 관한 단상
키 작은 아버지와 그 집에 관한 단상
  • 승인 2015.04.2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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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찬 시인
수평선 너머 작은 공 같은 해가 통 통 튀어 올랐다 서둘러 달려온 햇살이 바지 흥건히 적시며 끌개로 소금 알갱이들을 밀어냈다 하얀 소금이 농부가 수확한 쌀알 같다 종일 맨발로 염밭 뛰어다니던 해도 지쳤다 소금창고는 해를 구석 한켠에 눕혔다 바다가 저녁 어스름을 불러왔다



언덕 밑 계단에 어둠이 웅크리고 있었다 쌀 한 되 연탄 두 장 가족 생계를 새끼줄에 매달고 키 작은 아버지 오실 언덕 밑으로 자주 눈길이 갔다 그해 봄부터 나는 사춘기병 심하게 앓았다 중장비들이 대오를 갖추고 언덕배기 마을로 진군했다 캐러필트 아래 쓰러진 아카시아는 하이-얀 꽃잎을 수없이 날려 보냈다 종이장처럼 구겨진 판자집 지붕들 덤퍼트럭 밧줄에 포박되어 폐기물 집합소로 실려갔다 개발 분진이 낮게 떠 다녀 낮에도 마을은 어두웠다 다이너마이트 폭발음이 작은 동산을 허물어버렸다 바위틈 산까치 둥지가 후폭풍에 먼 하늘로 날아올랐다 염밭에 일생을 바쳐 마련한 아버지 판자집이 막걸리 사발 안에 떠 있었다 맨몸으로 포크레인을 막아내던 아버지는 공무집행 방해로 끌려갔다 포크레인이 긴 팔을 뻗어 지붕을 타격하자 전기가 끊기고 먹물 같은 어둠이 들어왔다 우리 가족의 꿈은 서둘러 빠져나가고 뻥- 뚫힌 밤하늘 몇 천 년 전의 별밭 올려다보다가 슬픔의 이불을 덮고 잠을 잤다



줄장미 몇 최후로 남아 악쓰며 기어오르던 무너진 담장 넘어 빛바랜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부서진 골목 혼자서 걸어 나왔다 유신독제가 쓰러지던 그해 불도저와 포크레인이 밀어낸 아버지의 언덕배기 그 집과 염밭과 소금창고와 내 사춘기가 아직도 내 마음 한켠에 먼지 한 두름 쌓인 채 보관 되어 있다

▷▶김성찬 1993년 ‘심상’ 등단. 시집 ‘파란 스웨타’. 대구카톨릭 문학회 회원.

<해설> 개발 미명 아래 숱한 슬픔 삶이 다녀갔던 시대가 있었다.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고 초가가 헐어지고 스레트지붕이 각광을 받은 때가 있다. 한데 오늘날 그 눈부신 발전도 따지고 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한숨과 눈물 우에서 가능했었고 그 결과 적폐(積弊)가 드러나기도 한다.

화자의 애절한 사연들이 곳곳에서 번득거리고 있다. 한 개인의 일상사가 아니라 누구나 한번쯤 다녀가셨을 그 시대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제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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