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귀희 대구 옻골마을 전통체험장 이사장 “고즈넉한 풍광에 절로 힐링…인성 교육의 장 만들 것”
임귀희 대구 옻골마을 전통체험장 이사장 “고즈넉한 풍광에 절로 힐링…인성 교육의 장 만들 것”
  • 곽동훈
  • 승인 2015.06.24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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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조성 경주최씨 집성촌

대구 세계육상대회 이후 주목

14개국 외국인 1천여명 방문

지역 문화사절단 역할 톡톡

국비 지원받아 대대적 보수

마을 떠났던 자손들 돌아와

한옥숙박체험장으로 활용

시민들 인성교육 반응 좋아
임귀희
임귀희 옻골마을 전통체험장 이사장.

옻골마을어귀
마을 어귀에 위치한 전통형식의 옻골마을 안내판.

하루 중 가장 무더운 2시 무렵에 옻골마을을 한 바퀴 돌았던 탓인지 열기가 목까지 차올랐다. 종택고택에서 멀지 않은 일반인에게 열려 있는 전통문화체험관인 동계정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툇마루를 지나 방안으로 들어간 객은 주인장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남북으로 난 문부터 활짝 열어 제쳤다. 무더위가 염치마저 잊게 한 것이다. 순간 유려한 경치가 눈앞에 펼쳐졌고, 아찔한 풍경에 객은 잠시 넋을 잃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객의 호들갑스러움이 주인장에게 전해졌음일까. 모시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입은 임귀희(55) 옻골마을 전통체험장 이사장이 찻잎을 우리면서 넌지시 한마디를 건넸다.

“한옥은 방 하나에도 크고 작은 문이 동서남북으로 나 있어 방안으로 사방의 경치가 다 들어오지요. 옻골은 팔공산 자락에 위치해 방안에서 보는 풍경이 일품이지요.”

대구시 동구 둔산동에 위치한 옻골마을에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의 지형이 남쪽을 제외한 3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 오목하다고 옻골이라고 불려 졌다는 설과 주변 산과 들에 옻나무가 많아서 옻골이라고 불리 웠다는 두 가지 유래가 있다. 1616년(광해 8년) 조선 중기의 학자 대암 최동집이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 경주최씨의 집성촌을 이루게 됐다.

경주최씨 종가인 백불 고택은 마을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입향조인 최동집의 손자 최경향이 1694년에 지은 고택으로 대구지역 가옥 중 가장 오래된 주택 건물이다. 백불 고택은 사랑채와 안채, 사당과 재실인 보본당, 음식을 장만하기 위한 포사 등과 백불암 최흥원의 효심을 기려 1789년에 세워졌진 정려각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 대구시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1
마을에 조성된 옛 돌담길에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기 전까지는 동네 군데군데 허물어진 폐가들이 을씨년스럽게 방치되어 있었고, 고택 몇 채와 마을 입구를 지키는 350년 수령의 거대한 회화나무 두 그루만 이 마을의 예사롭지 않은 역사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었다.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기 몇 달 전이었어요. 옻골마을이 대구에서 열리는 큰 대회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최적지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제가 하고 있는 인성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면 더 없이 좋겠다는 확신도 들었고요. 그래서 종손(최진돈) 어른의 양해를 구하고 동계정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들어와서 마을길 정비도 좀 하고, 체험에 필요한 도구들도 마련하고 손님 맞을 만반의 준비를 했지요.”

옻골마을의 일부 주택들은 현대식으로 개축되었지만, 남아 있는 고택과, 옛길, 전통 양식의 돌담은 옛 양반가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고, 지리적으로도 도심과 가까워 매력적이다. 마을 인근에는 천연기념물 1호인 ‘달성측백수림’이 있고, 불로동 고분군, 팔공산도립공원 등이 있어 대구관광의 랜드마크가 될 여지 또한 충분해 보였다. 임 원장이 옻골마을을 원석으로 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옻골마을을 처음 보시고 어떤 점에 매력은 느꼈습니까?

“옻골은 역사적으로 오래되었으면서도 상업적으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이 가장 큰 매력이었어요. 대구 근교에 이처럼 잘 보존된 한옥마을이 없습니다. 특히 경주최씨 옻골 가문은 높은 벼슬을 한 벼슬아치가 아니라 대군사부(大郡師傅)인 징사(徵士) 세 명을 배출한 학자 가문이라 선비정신이 살아있다는 것도 이 마을의 큰 가치였어요. 학문을 하신 선조들 영향으로 후손들의 직업도 대학교수나 초·중·고 교사들이 많습니다.”

- 선비마을이군요.

“이 마을 고택에는 다른 지역의 종가 고택에서 볼 수 있는 누마루가 없습니다. 누마루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구조인데, 벼슬한 집안에서는 그런 구조입니다. 하지만 선비가문인 이 마을에는 누마루가 없습니다. 마을 전체가 소박하면서도 검소하며 품격이 넘치지요.”

- 이 마을의 대표적인 정신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조선시대 가장 잘 된 향약으로 알려진 향약이 바로 이 옻골마을의 부인동 향약입니다. 옻골마을 인근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돌본 넉넉한 인심이 그 안에 녹아 있지요. 이 정신은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운 현대인들이 본받아야 할 교훈이기도 하지요.”

임 이사장은 옻골마을의 동계정을 체험장으로 꾸미고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기간 중에 외국 손님들을 맞았다. 당시 옻골마을에 14개국 1,000명의 외국인이 다녀가며 옻골마을은 우리 전통문화를 알리는 문화사절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 2011년 대구육상선수권대회를 대비해 전통체험장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제가 예절교육원 원장으로 오랜 기간 인성교육을 해 왔습니다. 처음 옻골마을에 들어온 이유는 인성교육의 장으로 이만한 곳이 없겠다 싶어서였죠. 저는 인성교육의 길을 고전에서 찾았는데, 훌륭한 선조들의 정신이 담겨있는 옻골이야말로 우리 문화와 우리 정신을 찾을 수 있는 인성교육의 최적지로 본 것이지요. 우리고전에 전통문화가 빠질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전통문화체험장을 만들게 된 것이지요.”

- 왜 인성이었습니까?

“세월호 사건은 물론이고 최근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불거지는 각종 사건사고들은 다 사람이 문제로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모든 문제의 바탕에 인성 문제가 있었지요. 모두가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스펙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스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올바른 인성을 갖추는 것이죠.”

-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기간 중에 문화사절단 역할을 했겠군요.

“예. 당시 대구시로부터 어렵사리 예산을 받아 마을 일부를 정비하고 체험 장비들을 구비했는데, 다행히도 많은 외국인들이 방문해 다양한 우리 문화를 체험하며 한국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갔죠. 당시 옻골마을이 문화사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후 이 마을에 대한 관심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치르면서 옻골마을의 가치가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 대구시와 동구청의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지난해 국비와 지방비를 지원받아 포사를 비롯해 허물어진 고택이 개보수 되어 새로 한옥 몇채가 지어졌어요. 그 한옥에 마을을 떠났던 자손들이 들어오고 한옥숙박체험장으로도 활용하고 있고요. 지난해까지 한옥 5채가 새롭게 단장해 옻골마을은 과거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답니다.”

가옥내부
옻골마을 백불고택.


- 마을 주민들에게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은데요.

“제가 처음 마을에 들어올 때만 해도 주민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치르면서 많은 외국인들이 다녀가고 허물어진 집들이 점차 복원되자 외지로 떠났던 자손들이 마을로 들어왔습니다. 자손들이 옻골마을에서 희망을 본 것이지요. 새로 지은 한옥에 자손들의 입주 경쟁이 높았다는 것이 그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주민들에게도 옻골마을은 이제 자부심을 느낄 만한 마을이 되고 있지요.”

- 새로 지은 한옥이라 고택체험에는 취사나 샤워장 같은 시설들이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아 있는데, 새로 개축한 한옥 숙박은 그런 불편함이 해소되어 만족도가 높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예. 맞습니다. 새로 지은 한옥에는 부엌과 욕식이 구비되어 있어 전통 한옥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불편함은 최소화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뤘다고 할까요. 사용 후기를 올리시는 고객들을 통해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 전통문화체험은 가족 단위나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필수코스인데 어떤 프로그램들로 짜여져 있습니까?

“인성교육, 서당체험, 한복체험 및 인사예절과 떡메치기, 투호, 옻놀이, 널뛰기 , 제기차기, 가마. 사인교타기, 등의 전통놀이 50여 가지가 준비되어 있고 다도체험, 산책로 탐방 등의 생태체험, 백불고택 둘러보기와 종가 내림음식 체험(예약) 등 다양하게 구성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 공간에서 우리전통문화를 한 눈에 보고 체험할 수 있어 알찹니다.”

- 체험자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어린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인성교육을 하고 나면 얼굴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지요. 한복을 입은 아이들은 말씨도 달라집니다. 서로 규수, 도령이라 부르기도 하고 뒷짐을 지고 양반 흉내도 내곤 한답니다. 또 어떤 아이들은 ‘하룻밤 자고 가면 안되냐’고 하고, 또 어떤 학생은 한복을 벗지 않으려 하기도 하죠. 그만큼 한복이 주는 마음가짐, 또 고전에서 얻는 가르침이 크다는 반증이지요.”

화전고택
숙박시설인 화전고택.

- 옻골마을 명소화 5개년 계획이 올해부터 시작된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변화를 예상할 수 있겠는데요.

“올해는 명소화를 위한 계획을 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명소화가 시작됩니다. 전선지중화와 담장, 화단, 마을길을 옛 모습으로 복원하고 개보수·정비·신축을 통해 한옥경관도 정돈하고 쉼터조성, 체험프로그램 강화 등이 추진될 계획입니다.”

- 한옥숙박과 전통체험을 통해 옻골관광은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더한 대구 관광의 랜드마크가 될 가능성을 키워가고 있다고 보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싶으십니까.

“한옥을 이용해 전통혼례장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미 가마와 사인교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향후 품격 있는 혼례복을 마련해 제대로 된 전통혼례를 할 수 있도록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다문화가정은 물론이고 장수 시대를 맞이해 회혼례까지 다양한 행사를 할 예정입니다.”

옻전골마을의 가치를 알아보고 옻골마을에 전통문화체험장을 만들며 변화의 물꼬를 튼 임 이사장은 대구 대봉동 향교 맞은편에서 (사)한국인성예절교육원을 운영하고 있는 인성교육자다. 일년에 두차례 3월과 9월에 개강해 20주 동안 생활예절과 가정의례를 지도하고 있다. 교육원은 수료 후 민간자격인 인성예절지도사 자격을 취득하고 유치원과 초중등학교에 출강 활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원생들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녀가 인성교육에 몸담은 것은 40대 중반이었다. 은퇴 후에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고민하다 ‘좋은 할머니로 살아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성균관대 유학(儒學)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고전에 답이 있다는 생각에 선택한 유학(儒學)이었다.

“나이만 들어 할머니가 되는 것이 아닌 훌륭한 조상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훌륭한 조상이란 자손에게 정신적인 가치를 물려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혼자만 가지고 있기 아까워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예절원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 인성교육이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지점은 어디입니까?

“현대인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런 상태로는 행복할 수 없지요. 그 마음의 허기를 우리의 아름답고 숭고한 정신으로 채워주자는 것이지요. 그것이 결국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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