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밀고 거실에 나왔다
그곳에도 벽들이 나를 막아섰다
마당으로 도망쳤다
담장이 높이 서서 가로막았다
숨이 갑갑해져 대문 밖으로 탈출했다
가슴이 후련했다
발이 가자는 대로 돌아다니다 보니
사방에 어둠이 덮쳤다
제도의 벽 인습의 벽 관습의 벽
보이지 않는 벽들이 수없이 나를 가로막아
집으로 돌아 왔다
집에서 낯익은 벽들이 나를 반겼다
포근히 감싸주고 쉬게 해주었다
나를 보호하는 방어막임을 깨달았다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박일아 1953년 경북 경산 출생. 2009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하루치의 무게’가 있음.
<해설> ‘벽이 사람을 키우는 것인가, 사람이 벽을 키우는 것인가의 차이점일 것이다. 가는 곳마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 숨쉬기도 힘들지만 그 벽으로 인해 내가 누구에게 간섭받지 않고 편안히 일하고, 쉴 수 있으니 ‘좋다, 나쁘다’를 가름하기는 어렵다. 다만, 자신만을 위한 벽은 너와 나를 격리 시키는 감옥이다. 소통을 가로막는 벽만큼은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광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