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성 짙은 ‘꽃비 내리다’ 시리즈
모든 사람들이 잘 살 수 있기를 염원
100호 대작 ‘책가도’ 동·서양의 공존
다양한 공예 분야를 섭렵하던 중인 1998년에 운명처럼 민화를 만났다. 민화를 하며 평소 소망했던 불화와의 접점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민화 공부에 매진했다. 시간이 쌓이고 실력이 일취월장하면서 문하생이 늘고 가르치게까지 됐다. 그러면서 민화분야 심사위원으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마산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민화작가 손유경의 어언 20여년 세월이다.
“돌고 돌아서 결국은 고3때 가졌던 그림에 대한 꿈을 이루었어요. 다양한 공예분야를 접해봤지만 민화를 만나면서 민화만 그리게 됐죠. 평생 그려도 다 못 그릴 만큼 민화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고 풍요로웠어요.”
민화는 민중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다. 특히 조선 후기에 성행했다. 민초들의 그림인 만큼 피식하고 웃음이 절로 나는 소박함과 편안함이 특징이다. 개인과 가족의 안녕에 대한 기원을 편안하면서도 해학적으로 푼 것. 담뱃대를 물고 있는 호랑이 민화에 품격과 용맹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꽃과 동·식물도 편안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다.
손유경은 전통민화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대표적인 창작민화 작가로 꼽힌다.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는 체본에 무게를 두는 민화에서 보면 파격이다. 이 때문에 그녀는 ‘민화를 바꾸면 그것이 민화이냐, 한국화지’라는 조소어린 이야기도 듣는다. 하지만 손 작가는 개의치 않는다. 창작이야말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 중의 하나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창작이 주는 행복감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더 컸다.
“옛 것을 재현하는 체본민화가 남을 위한 행복이었다면, 제 마음을 오롯이 표현하는 창작민화를 그릴 때는 제 자신이 너무 행복하죠. 그림 속에 담겨진 제 행복이 타인에게도 그래도 전해진다는 믿음도 있었어요.”
창작민화를 그리는 손유경 역시 민화의 기본은 그대로 따른다. 십장생도 화조도 등의 소재와 구복(求福)의 의미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녀만의 현대적인 감각과 감성을 더한다. 손 작가의 대표적인 창작민화는 ‘꽃비 내리다’ 시리즈와 ‘책가도’ 시리즈가 있다.
‘꽃비 내리다’ 시리즈는 모란이 주제다. 모란이 복주머니에서 꽃비처럼 떨어져 내리기도 하고, 복 주머니에서 하늘 저 멀리로 흩어져 오르기도 한다. 인간의 근원적인 행복과 축복을 염원하는 모란을 구름으로 형상화해 자연의 순환적 원리에 적용하며 전통과 현대를 아우른다.
‘책가도’ 시리즈는 100호 이상의 대작이다. 전통 책가도는 책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기원이 담긴 여러가지 사물들과 고동기들을 배열한 그림이다. 청나라 시대 선교사로 들어온 낭세녕에 의해 중국의 ‘다보격경도’라는 그림이 서양의 스튜디올로 기법과 만나 탄생했다.
그녀는 “전통이 탄탄하기 때문에 그것을 기반으로 창작이 나올 수 있고, 그렇게 할 때 세계적인 것이 나온다는 믿음이 있다”며 “내 그림은 전통과 창작의 공존”이라고 표현했다.
“‘꽃비 내리다’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책가도’에는 서양과 동양의 공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존에 대한 가치를 새겼어요.”
“처음에는 가장 민화스러운 복주머리 등의 소재를 보여주며 모란이 갖는 행복의 의미를 담았지만, 이제는 다 비워내고 회화적으로 갔어요. 시간과 공간, 과거와 현재, 서양과 동양의 공존을 넘어 그것을 초월하고 싶었죠. 창작은 그런 것이니까요.” 전시는 대구 북성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박물관이야기에서 23일까지. 010-8784-4587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