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는 무엇을 움켜잡고 있는가
독수리는 무엇을 움켜잡고 있는가
  • 승인 2016.05.0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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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교육학박사
아동문학가
유럽에 가보면 웬만한 옛 건물의 꼭대기에는 거의 대부분 커다란 독수리 조형물이 우뚝하게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광장이나 성문 앞에도 높은 외기둥 위에 역시 독수리 조형물이 올라가 있습니다. 해질녘에 지붕을 바라보면 이 독수리 형상물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건물을 감싸 안고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유럽 사람들은 왜 건물 위에 그처럼 웅대한 독수리 상을 설치해두었을까 궁금해집니다.

물론 우리의 옛 궁궐 지붕마루에도 손행자를 비롯한 사오정 등 잡상이 올라가있습니다. 이로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붕 위에 무엇인가를 올리는 데에는 그 나름의 바라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럽 독수리의 경우,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나아가 독수리와 같은 기상으로 스스로 무장하자는 의미가 들어있지 않을까 합니다.

유럽의 많은 왕가들은 서로 다투기라도 하듯 독수리를 자신들의 상징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옛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 옛 독일의 합스부르크와 프로이센 왕가 등 많은 왕가가 독수리를 앞세웁니다.

심지어 몸은 하나인데 머리는 둘인 쌍두독수리를 문장(紋章)으로 내걸기도 하였습니다. 옛 오스트리아 왕가에서는 쌍두독수리를 내걸었는데, 이는 1806년 신성로마황제의 자리를 내어놓고 오스트리아 황제 자리를 차지한 프란츠 2세(1792∼1835)가 나폴레옹을 견제할 속셈으로 자신들이 화려했던 15세기 때에 사용하였던 문장을 다시 꺼내어서 내걸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독수리 경외(敬畏) 유전인자는 나치 독일에게까지 이어져 히틀러의 상징으로도 이용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미국으로도 건너가 미국의 국새(國璽) 문양으로 독수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독수리가 머리에 금빛 왕관을 쓰고 있다면 미국 국새의 독수리는 몸에 13개 주(洲)를 상징하는 붉은 줄 국기를 감고 있는데, 왼발에는 승리의 상징인 월계수 줄기를, 오른발에는 나라의 부(富)를 상징하는 밀이삭 다발을 움켜잡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독수리 깃발을 앞세울 때마다 ‘쌍두독수리행진곡’을 연주합니다.

이들 많은 왕조와 정권들이 독수리를 내세우는 것은 전 세계를 지배하였던 로마시대의 재현을 꿈꾸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거침없는 진격을 감행하였던 로마 군단은 군대 행렬 맨 앞에 독수리 형상의 인도봉(引導棒)을 앞세움으로 해서 무적의 용기를 얻으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독수리는 로마의 절대적인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문화사의 관점에서 보면 독수리는 수메르, 인도, 이집트로부터 시작해서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장구한 계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형미술에 등장하는 독수리는 대개 커다란 공이나 꿈틀대는 뱀을 갈퀴 같은 발톱으로 움켜쥔 형상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공은 세상이나 우주를 가리키고 뱀은 대지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세상을 움켜쥔 독수리는 절대 강자의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독수리는 높이 떠서 멀리 보는 습성을 가진 덕분에 앞날을 보는 예언과 예지 능력을 겸비한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먹이를 낚아챌 때에는 과감하고 정확한 공격을 시도하기 때문에 결단력과 용맹함의 표상으로도 인정되었습니다.

또한 독수리는 늙어 죽음이 가까워오면 스스로 털을 뽑아내고 부리마저 깨뜨려 모든 것을 버린 후에 다시 새로운 몸을 얻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의 두 배를 더 산다고 하는 신화에서 엿볼 수 있듯이, 육신의 사슬을 털어낸 영혼의 자유, 정화, 광명의 의미도 얻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시편(詩篇)에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젊게 하시는 도다.’와 같은 구절이 있는 만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수리를 통해 지혜와 용맹함을 배우고 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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