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위 한떨기 꽃처럼, 생명의 빛처럼
한지 위 한떨기 꽃처럼, 생명의 빛처럼
  • 황인옥
  • 승인 2016.05.1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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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양향옥 개인전

내달 15일까지 두류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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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옥의 개인전이 6월15일까지 웃는얼굴아트센터 두류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행복 바이러스 덩이 같았다. 만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입 속은 감탄사로 넘실댔다. 그녀 앞에서는 시름마저 하찮게 여겨질 만큼, 밝고 또 밝았다. “현실의 감정들을 그림 속에 다 토해내고 나면, 평화만 남는다. 행복할 밖에(웃음)….”

웃는얼굴아트센트에서 전시 중인 화가 양향옥의 작업은 한지와 색, 그리고 탈색과 중첩의 연속이다. 한지를 붙이고 색을 올리고, 애써 올린 색은 이내 물로 씻어내며 탈색한다. 이 과정이 수없이 반복된 뒤라야 작품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색을 올리고, 물로 씻어내는 반복되는 과정들은 수행과도 같다. 나를 비워내고 들어내는 시간들이자, 존재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존재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면 결국 생명의 모태인 여성성과 만난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모성애, 바로 그것이다.”

인위(人爲)와 무위(無爲), 의도성과 비의도성의 조우로 남겨진 색은 오묘함. 부드러운가 하면 따뜻하고, 싱그러운가 하면 고요했다. 그녀는 이 오묘함을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달빛의 색”이라고 표현했고, “존재의 근원, 생명의 모태인 어머니의 색”이라고 지칭했다.

“한지에 색을 올리고 물로 씻어내면 한지의 물성이 겹치면서 자기들끼리 색을 만든다. 내가 의도적으로 올린 색에 비의도성이 더해져 생명의 모태인 어머니의 색인 오묘함이 나온다. 내 그림에서 나 스스로 위안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도치 않은 결과는 오묘한 색 뿐만이 아니다. ‘꽃’을 연상하는 형상들이 그것. 그녀는 ““‘꽃’은 내 염원의 표상이다. 어둠고 아픈 곳에서도 어머니의 모성애, 생명의 에너지가 살아 쉼쉰다. 의도치 않았지만, 모성애가 꽃으로 형상화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여정은 현실에서 출발해 존재의 근원으로 향한다. 먼저 슬프면 슬픈 감정이, 기쁘면 기쁜 현재의 감정 상태가 평면에 오롯이 담긴다. 이후 평면은 철학적 탐구, 지적 유희의 놀이터로 변한다. 현재의 감정 상태를 지루하게 바라보고, 화해를 청하는 것. 여기서부터 그림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현실의 감정을 비워내고 무아의 상태로 몰입하고, 현실에서 이상, 꿈의 세계로 진입한다. 긴 여정의 끝에는 언제나 고요하고 충만한 모성애가 그녀를 기다린다.

“현실의 감정으로부터 시작했지만, 그 감정을 들어내면 깊은 명상의 상태가 된다. 나로부터 시작해 궁극의 진리로 나아가며,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가 된다. 어떤 것도 두렵지 않고, 모든 것을 품어 줄 수 있는 경이로운 상태가 된다.”

화가 양향옥은 어릴 때부터 질문이 많았고, 권태로움을 견디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도 똑 같은 것은 참지 못한다”고 했다. 그림을 시작한 것도 질문이 많아서였고, 삶이 더워서였다.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같은 쏟아지는 빗줄기를 그리고 싶어 화가가 됐다.

질문이 많은 그녀는 스스로를 이야기꾼이라고 했다. 한지를 붙이고 색을 얹고, 씻어내는 과정이 소설가가의 그것과 같다고 했다. 겹쳐지는 중첩들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스며들고 부딪히며 자리를 잡아간다. “작품 하나가 영화 한 편을 만들어도 될 정도다. 작품 하나하나는 이야기들의 집이다.”

작품에는 또 다른 재미요소가 숨어있다. 무한 영속 가능성이다. 전시가 끝난 작품이라도 그녀가 원하면 언제든 다시 한지를 붙이고 색을 올리며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그녀의 꿈이 끝나지 않고, 그녀의 기도가 멈추지 않는 한 이야기는 무궁무진 이어진다.

“작품 속에서는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 질 수 있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데 6~7년이 걸리기도 한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들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시작과 끝이 없는 작업이라니...재미있지 않은가?”

양향옥의 ‘정체성’, ‘독창성’을 한지와 중첩된 이야기 속에 구축해 놓은 40여점의 작품과 양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디자이너 최복호의 패션 작품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달서문화재단 출범 2주년 특별기획으로 (재)달서문화재단 웃는얼굴아트센터 두류갤러리에서 6월 15일까지 열린다. 053-584-872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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