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방의 추억
별다방의 추억
  • 승인 2016.05.2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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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옥 대구미술비평연구회·미술학 박사
시간 속에 켜켜이 쌓인 흔적들은 가끔 이성보다 감성을 앞세운다. 감성은 힘들었던 기억조차 그리움으로 물들이고 때로는 약간 포장이 된 추억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현실은 냉엄하고 반성은 늘 한 박자 늦게 찾아오는 듯하다.

며칠 전 지인들과 추억의 거리를 걸었다. 다시 찾은 그곳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7년 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이다. 한산했던 거리엔 청춘들이 북적였고 주말엔 더 붐빈다고 한다. 낮보다 밤이 더 북새통인 것도 진풍경이다. 2009년엔 예상치 못한 방천시장의 풍광이다. 7년 전까지만 해도 대구시내 한 복판에서 외딴섬처럼 소외되었던 곳이었다. 경계를 허물고 삶과 예술의 접점을 찾고자한 2009년 방천시장 예술프로젝트가 중구청과 대구미술비평연구회의 주관·주최로 진행됐다. 전체기록을 담당한 나는 ‘예술과 시장의 동거 139일’을 기록했고 그 위에 다양한 추억들이 포개어진다.

“ … 객이 없어 조용할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사무실의 낡은 벽 사이로 상인들의 여담이 들려온다. 볼멘소리에 하소연 가득하다. 시장엔 온통 노인들뿐. 띄엄띄엄 문을 연 상점주인의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다. 백주대낮에 술주정소리 요란하고 고성의 언쟁과 어린아이 울음소리에 경운기소리까지, 도심 한 복판에 자리 한 시장이라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침울함에 암울함까지 감도는 시장이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중앙로와는 큰 대조를 이룬다. 이런 시장에 작가들이 예술을 입힐 것이다. …”3월 10일 기록의 일부분이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오롯이 더웠다. 비오면 얼룩지고 습기도 찼다. 비워진 점포 대부분은 수리가 불가피 했다. 대구미술비평연구회는 별의 별 것이 다 있는 별시장 안의 별미용실과 가깝던 낡은 점포 하나를 수리해 사무실로 사용했다. 사무실엔 프로젝트 관계자나 시장을 찾은 행인들이 목을 축이도록 물과 커피를 준비해두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무실은 ‘별다방’이란 별칭을 얻었고 그곳을 지킨 나는 작은 마담이라 불렸다. 그러나 시장의 하루를 기록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는 객일 뿐이었다. 참여 작가들도 주민은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객의 발걸음은 매번 무거웠다. 시장이 생기 있게 부활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가벼울 수 없는 걸음이기도 했다. 예술가들은 예술이 시장을 살리는 기폭제가 되길 바라며 예술로 삶을 해석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공공기관에서도 논의에 동참했다. 상인들은 기대가 컸다. 그사이 서로 간엔 듬뿍 정이 들었다. 함께 음식을 나누며 쌓은 정은 식구 같은 정감을 주고받을 만큼이었다. 그랬던 방천시장이 7년이 지난 지금 몰라보게 달라진 것이다. 종일 생선 한 마리도 못 팔고 남은 몇 마리를 싸주시던 할머니와 인심 후하시던 야채가게 아주머니는 볼 수가 없다. 물론 별 다방도 사라진지 오래다. 주민들의 골 깊은 푸념도 추억이 되었다. 대신 신축건물과 신종 업종에 젊은 주인들이 늘어났다. 꿈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토록 고대하던 꿈길을 걷는 마음 한켠이 헛헛한 것은 민족특유의 온정이나 감성 탓만 일까. 7년 전 폐허 같았던 빈 점포의 자욱한 먼지와 벌레들의 사채를 치우며 시장을 살리려 애쓴 작가들의 139일간의 노고가 시간 속에 묻혀버렸다. 부활을 꿈꾸며 예술가들에게 마술을 기대하던 영세 상인들의 넋두리와 애환도 서서히 잊혀져간다.

영국의 존 윌렛이 1967년 ‘도시 속의 미술 (Art in a City)‘에서 처음 사용한 공공미술이란 개념은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소수 전문가들의 예술적 향유가 일반 대중의 미감을 대변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현재진행형인 참여형 공공미술은 웰빙의 의미를 담는다.

그러나 공공을 위한 담론이 소수에겐 이따금씩 이물질일수도 있다. 故김광석의 노래를 일방적으로 들어야 하는 주민이나 이화벽화마을에 지워진 꽃 계단은 소수의 불편한 삶을 대변한다. 작고 부박하더라도 삶은 모두에게 소중하다. 그 삶의 무늬가 미래로 이어지고 역사를 이룬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변한다. 예측할 수 없는 삶에서 오늘은 훗날에 볼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지. 별 다방추억을 안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여전히 가볍지만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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