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범주와 한계
창작의 범주와 한계
  • 승인 2016.05.23 18: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복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지방자치
연구소장
아내가 활동하는 교회 단체에서 30년사 책을 낼 때 그가 정리한 원고를 정리해 준 적이 있다.

신학대학교 모 교수에게 맡겨 책을 편찬한다고 했다. 책이 출판된 뒤에 놀랐다. 여러 사람들이 낸 원고를 모아 만든 책 표지에 교수 자신이 쓴 것처럼 지은이란 이름이 버젓이 나온 것이다. 내가 손 봐 준 아내의 원고도 가감 없이 그대로 인쇄되어 있었다.

학자의 양심이 이 정돈가 해서 전화를 내려고 하니 아내가 극구 말려 그만 두었다. 적지 않은 용역료 까지 받은 교수가 그 책을 자기가 쓴 것처럼 교수 실적물로 사용했을 것이다.

이름 난 소설가가 몇 줄 남의 글을 옮겼다고 해서 사회적 지탄을 받고 명예에 큰 손실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최근에는 모 대학총장의 논문 표절문제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말썽이 많아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 표절 행위다. 음성적으로 학위 논문을 대필해 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이들도 버젓이 있다.

글은 자기 생각을 문자로 표현하는 수단이므로 본인이 쓰는 것이 당연하다.

가수와 화가를 겸업하는 조영남씨의 그림이 대작이라고 해서 시끄럽다. 장난처럼 화투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로 생각해 왔는데 어느 새 화가로 이름을 올리면서 개인전을 여는 등 화필을 놓지 않고 있다.

조씨는 “처음엔 내가 그렸지만 작업량이 많아지고 나이 들며 체력적으로 힘들어 몇 년 전부터 조수 몇 명을 썼다. 어디까지나 조수는 보조 역할이지 아이디어는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8년 동안 조 씨의 그림을 대작해 왔다는 무명화가는 “내가 90% 그려 그가 덧칠해서 자기가 그린 그림인양 싸인을 해서 발표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조 씨는 터무니없는 수치라고 일축하고 있다. 조수 화가는 대신 그림을 그려주고 1점당 10만∼2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 사건을 보고 필자는 놀랐다. 유명 화가의 그림을 위작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화가가 조수를 두고 그림을 그리는 줄은 미처 몰랐다. 세계적으로 이름이 있는 스타 작가의 작업실에는 수많은 직원들이 있다는 것을 늦게야 알았다.

대학에서 교수의 일을 돕기 위해 조교가 있듯이 연구 분야나 일이 많은 부서에서는 마땅히 일을 도와 줄 조수가 필요하다. 그러나 맡은 일의 범위와 한계는 분명히 있다. 일반적으로 조수는 일을 도우면서 배우는 위치에 있다. 그런데 조 씨는 자기 아이디어라고 강변하면서 조수가 그린 그림에 약간 손을 대어 자기가 그린 것처럼 싸인을 했다. 그러면서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합리화하고 있다.

가수 겸 화가라면서 그는 스스로를 화수라고 지칭하고 있다. 그의 그림의 예술적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지만 화투 시리즈가 20호당 1000∼1500만원까지 호가한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가수, 방송인으로서의 그의 인기가 그림 값에 영향을 미쳤다고 유추할 수 있다.

조 씨의 경우를 보면서 그림에 대한 생각을 해 본다. 우리는 화가의 그림을 감상할 때 화가의 예술적 사상과 더불어 시각적으로 주는 감흥을 느낀다. 화가의 그림에 다른 사람의 손길이 미쳤다는 생각은 꿈에도 안한다. 그런데 화가가 아이디어를 내고 조수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고 그 그림에 덧칠을 한다든지 약간의 손을 대어 자기가 그린 양 행세하는 것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못하다.

조수가 그림을 그릴 때는 조수의 개성과 사고가 들어 갈 수밖에 없고 그림 완성도의 폭이 넓을수록 이 같은 현상은 배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술계에서는 작가의 콘셉트대로 조수가 제작하는 것을 관행으로 보는 측도 있지만 평생 굶고 살아도 자기 작품에 목숨을 거는 다른 예술가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분개하는 측도 있다.

검찰은 “실제로 그림을 그린 작가에게 저작권이 있다고 본다면 조영남씨가 다른 사람이 그린 작품을 자신의 것처럼 판매했을 경우는 사기죄가 성립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조수 화가가 그려줬다는 그림을 확보해 양자가 어느 선까지 그렸는지, 그 작품이 얼마에 팔려나갔는지 등을 조사할 것이라고 한다. 작품 하나의 공임이 너무 짜다면서 갑질이라는 말도 떠돈다.

본업이 가수이면서 부수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조 씨를 화가로서 예술적 반열에 세울 수 있을까. 조 씨 사건은 우리에게 화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