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랑하는 만큼 향기롭다
사람은 사랑하는 만큼 향기롭다
  • 승인 2016.05.2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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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대진초등학교장
5월 5,6,7,8일! 푹 쉬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할 수 있는 황금같은 연휴인데 이런 날, 그녀는 아기천사들을 모시고 베나(베풀고 나눔)의 집에 캠프를 오겠단다. 딱하게 되었다. 서울 사는 아들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나란히 있는 이번 주에 손녀를 데리고 오기로 했다. 일 년에 딱 한 번 오는 나들이이다. 하지만 그녀의 천사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그 모든 것을 미루고 장을 보러 갔다. 2013년 7월 이래 453명이 다녀갔지만 이번에는 천사들이 오신다니 예수님을 맞는 기분으로 최고의 음식재료를 준비하였다. ‘봉사활동 하러 멀리 갈 필요 없이 우리 집에서 천사들 맞아 어린이 날 좋은 추억 한 번 만들어 주는 일에 아들과 우리 학교 선생님들도 동참하는 은사가 되지. 뭐!’ 미안한 마음을 합리화시키며 캠프 일정부터 짰다.

‘어린이날 맞이 축하 잔치’라는 현수막과 축하 선물로 줄 동화책에 일일이 천사들 이름을 적어 넣었다. “와아!” 5일 점심 때 도착한 천사들은 왕관을 쓰고 시끌벅적한 축하식을 한 뒤 정원의 잔디들에게 ‘내가 왔노라’를 알리며 뛰어다녔다. 텃밭 유기농 상추, 쑥갓들을 직접 뜯게 하며 “숯불 바베큐 고기, 쌈 사 먹을 거니까 자기 먹을 만큼 뜯으세요.” 하고, 지켜보니 등 뒤를 지나가며 건들렸는데 때리고 밀었다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천사가 눈에 띄었다. 그녀와 자원봉사자 성애리 선생님, 가톨릭대학 학생 봉사자 이지원 선생님도 잠시라도 천사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식사 장소를 정자나 소나무 동산에 마음대로 앉도록 하며 지켜보니 자연스럽게 모여 앉아 고기 접시를 배달 다니는 천사도 나서고 반달 아이스크림 모양밥을 배달하는 천사도 나서서 정겹다. 이지원 선생이 숯불 여열에 고구마랑 소시지를 연신 구워내며 묻는다. “우리 집에서 된장국을 먹고 왔는데 이 맛이 안 났어요. 비법이 뭐에요?” 쇠고기랑 표고버섯 넣은 것? 그냥 실력이라 했다. 천사들도 식사 때마다 물었다. “비법이 뭐예요? 이렇게 맛있는 닭도리탕은 처음이에요.” 배와 양파 갈아 넣은 것? 나만의 비밀을 숨기며 “실력이지요. 실력!” 천사들의 칭찬이 고마워 똥배를 한껏 내밀었다. 천사들을 모시고 온 그녀 또한 천사들이 평소 잘 먹어보지 못한 망고, 멜론, 포도, 귤들을 준비해왔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정성이 천사들의 입맛을 왕성하게 돋워준 것 같다.

식사 뒤, 계획한 프로그램을 펼쳤다. 2인 1조로 협동해야 이길 수 있는 놀이로 작은 운동회를 하였다. 남편은 집안의 유실수 나무와 생태를 해석하는 숲 해설사역과 미술 선생 역할을 맡았다. 다음으로 내가 바톤을 이어 받아 ‘삶을 풀어내는 시 쓰기’ 수업에 들어갔다. 그들과 처지가 비슷한 아이가 쓴 시를 들려주며 “이건 처음부터 시가 아니었어요. 일기로 썼는데 시로 간추려본 거에요. 여러분은 이보다 더 잘 쓸 수 있지요? 엄마가 없어 아빠가 도시락을 싸주며 반찬통을 안 넣는 바람에 이런 글을 썼어요. 이 시에서 여러분 마음에 가장 남는 구절이 뭐예요?” 하면 “친구들 반찬을 집어 먹었다. 오늘 왠지 찜찜하다가 제일 마음에 남아요.” 대답한다. “야, 대단하다. 그걸 어떻게 단번에 찾아내었지? 나랑 마음이 똑같네요. 너희들 혹시 영재 아니야? 선생님이 문예영재반을 지도했는데 너네들 장차 시인되겠다. 야아~!” 손가락을 쳐들고 감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천사들은 지지받는 기쁨에 완전히 수업에 빨려들어 질문하기도 전에 자기 생각을 말하겠다고 다투어 손을 들었다.

저절로 수준별 공부가 되었다. 모든 것을 놀이로 다가가야 한다는 원칙에서 저녁에는 함박스테이크에 곁들여 먹을 과일말이 토스트 실습을 덧붙였다. 스프, 계란, 치즈, 과일... 좀 양이 많다 싶은데도 남김없이 잘들 먹어주었다. 윷놀이 상품도 오늘 밤에 베고 자고 싶은 베개를 고르는 게임으로 이어갔다. 하지만 또 한바탕 천사들의 전쟁을 중재하며 그녀가 준비해온 영사기를 틀었다. ‘나니아 연대기’영화를 보여주려고 큰 방 바닥에 이불부터 깔았다. 2시간 반이나 걸리는 영화라서 보다가 잠들겠다 싶어서였다. 11시 반에 끝났는데 2학년 꼬맹이 천사들까지 끝까지 다보고 잠에 골아 떨어졌다.

다음날, 아침에는 7시에 일어나 “우유에 와송, 마, 바나나, 두부를 넣어 갈아 만든 건강 쥬스에요. 몸 튼튼!” 외치니, 거뜬히 마시고 집 앞 올레길을 걷고 왔다. 아침 먹고 부모님이나 고마운 사람에게 편지 쓰기, 보물찾기를 한 뒤 점심을 챙겨 먹이고 떠나보낼 준비를 서둘렀다. “왜 런닝 맨 놀이는 안해요?” 묻지만 예민한 천사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분노 조절이 안 되어 선생님들을 울리고, 내한테까지 귤을 집어던지며 대들던 예민한 천사가 눈물을 보이며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오고 싶어요.”하며 안아준다. 감성이 정말 예민한 천사다. 아이들과 싸워서 상담하느라 “어느 학교 다니니?” 물었을 때 “개인 정보 묻지 마세요.” 하며 마음을 닫았던 천사도 돌아가서 할머니께 자랑했단다. 시쓰기 영재라며 칭찬 받았다고. 그녀는 감사의 전화를 받아 ‘진심은 통하나 봅니다.’하며 운동회 뒤 선생님들 회식 챙겨주지 못한 교장의 죄를 대신 덮어주기 위해 떡을 해오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나는 그녀가 뿜어내는 천사향기를 감사장에 담아주고파 상장을 만들었다.

<천사표 선생님 상> 굿네이버스 ‘좋은 마음 센터’ 류현희 지부장님.

사람은 사랑하는 만큼 향기롭지요/ 심리 상담 받는 아기 천사들 위해/ 황금연휴에도 캠프로 천사들을 모시고 오신 분/ 집에까지 가서 데려오기/ 숨어서 배변 처리해주기/ 분노조절 감싸 품어주기 등/ 하나같이 천사 날개로 보듬어주셨죠/ 아기 천사들은 몰라요. 천사향기를 / 하지만 오직 한 분 하느님은 아시죠/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2016년 5월. 베나의 집 이재진. 박경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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