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한 분이 또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일본의 공식적 사과와 정부의 보상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41명(국내 39명·국외 2명)으로 줄었으며, 이 가운데 대구·경북 지역 생존자는 4명(대구 3명·경북 1명)으로 줄었다.
(사)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지난 22일 김 모 할머니가 별세했다고 23일 밝혔다.
시민모임에 따르면 경북 안강 출신인 김 할머니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17살 때부터 일본인이 운영하는 정미소에서 일했다. 그러던 중 ‘공장에 가면 경제적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다’는 정미소 주인의 말에 혹해 배에 올랐으나 도착한 곳은 공장이 아닌 위안소였고, 김 할머니는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타이완의 위안소에서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았다.
해방 후 1년 간 타이완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김 할머니는 우여곡절 끝에 귀국해 비단 장사, 식모살이, 식당 일 등을 해 가며 어렵게 생활하다 1999년 대구에 정착했다.
안이정선 시민모임 대표는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며 “하루 빨리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 동참해 주길 당부한다”고 했다.
강나리기자 nnal2@idaegu.co.kr
할머니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일본의 공식적 사과와 정부의 보상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41명(국내 39명·국외 2명)으로 줄었으며, 이 가운데 대구·경북 지역 생존자는 4명(대구 3명·경북 1명)으로 줄었다.
(사)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지난 22일 김 모 할머니가 별세했다고 23일 밝혔다.
시민모임에 따르면 경북 안강 출신인 김 할머니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17살 때부터 일본인이 운영하는 정미소에서 일했다. 그러던 중 ‘공장에 가면 경제적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다’는 정미소 주인의 말에 혹해 배에 올랐으나 도착한 곳은 공장이 아닌 위안소였고, 김 할머니는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타이완의 위안소에서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았다.
해방 후 1년 간 타이완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김 할머니는 우여곡절 끝에 귀국해 비단 장사, 식모살이, 식당 일 등을 해 가며 어렵게 생활하다 1999년 대구에 정착했다.
안이정선 시민모임 대표는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며 “하루 빨리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 동참해 주길 당부한다”고 했다.
강나리기자 nnal2@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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