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붓놀림 속 서양 종교·동양 철학의 조우
자유로운 붓놀림 속 서양 종교·동양 철학의 조우
  • 대구신문
  • 승인 2016.06.2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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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가 이승찬 개인展

3일까지 봉산문화회관

10년간 칩거하며 작품활동 매진

가톨릭 입문해 수묵화 틀 탈피

독창적 조형세계 관람객과 소통
화가
이승찬의 개인전이 7월3일까지 봉산문화회관 3전시실에서 열린다.

갈망하던 그림 세계가 요원해지면서 허방 이승찬의 고뇌가 깊어갔다. 당시 그의 화두는 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먹의 현대적 재해석이었다. 절박한 상황에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작정하고 놀아보는 것’.

이승찬은 꽤 오랫동안 예술가들과 모여 삶과 죽음, 그리고 예술을 논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술잔이 서너 순배 돌고 취기가 오르자 올린듯 그가 붓을 들었다. 

이내 붓끝에서 춤사위가 피어오르고, 새하얀 한지 위에 독창적인 검은 형상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무아의 경지에서 그림이 춤자 숨이 멎을 것 같은 아찔한 행복감이 몰려왔다. 허방 이승찬이 자연 속에서 칩거하며 정진한지 10여년 만에 마침내 자유의 경지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놀이속에서 예술적 깨달음을 얻은 것.  

“작정하고 그림을 그리지 않아서인지 그림을 잘 그려야겠다는 욕망이 사라졌어요. 그러면서 내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을 경험했고, 먹의 강점이 드러나는 조형세계를 구축했죠. 그동안 내가 찾아 헤맸던 자유를 맛보는 순간이었습니다.”

허방 이승찬의 개인전이 봉산문화회관에서 시작됐다. 이번 전시에는 ‘최후의 만찬’ 연작, ‘베드로 닭’ 연작, 영웅, 함, 카(숨) 등의 독창적인 조형세계가 걸렸다. 세상과 담을 쌓고 매달린 10여년 정진의 결과물들이다.

이승찬은 고뇌형 예술가다. 일찍부터 수묵화가 가지는 고정된 틀을 깨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대학 졸업 후 가야산에 들어가 그림에 매달렸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실망뿐이었다. 그만의 독창성보다 어디서 본 듯한 느낌들의 그림에 심기가 불편했던 것. 

“나는 오직 수묵화 한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어요. 먹을 제대로 쓰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죠. 늘 같은 수준이 되풀이됐다고 할까요.”

그런 그에게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가톨릭 입문이었다. 지인의 권유로 가톨릭 교리반에 들어가 강의를 들으면서 예술적 영감이 번뜩였다.

그가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예수의 예언에서 연유해 가톨릭에서 닭이 베드로의 상징이 됐다고 들었다”며 “베드로 닭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전 닭 그림에 숫자 3을 모티브로 해 봤다. 전혀 다른 닭 형상이 나왔다”고 회상했다.

“서양의 종교와 조형성, 동양의 철학과 조형성이 먹과 한지 위에서 소통하면서 닭 그림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동·서양의 만남이 새로운 조형성을 선물한 것이죠.”

이후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모티브로 한 ‘최후의 만찬’ 연작을 그렸다.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서양 종교화의 최고봉을 먹과 한지로 그린 것.
“만찬 장면은 과감하게 없애고, 열두제자의 전신 형상을 그렸어요. 먹의 농담과 선의 형상으로 열 두 제자의 특징을 잡았습니다.”

지난해 먹을 통한 독창적인 조형세계로 명동성당에서 세상과 먼저 소통했다. 10여년 만의 전시 나들이였다. 올해의 전시작은 명동성당에 소개한 작품보다 좀 더 심화된 자유의 경지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비례 맞춰서 정확하게 그리는 그림과는 거리가 있어요. 먹을 흩어놓고 던져놓고 휘갈겨 놓고, 먹이 번지고 스며들기를 기다리죠. 한지와 먹의 만남에서 형상이 나오면 그때 슬쩍슬쩍 터치를 하면서 정리해 주죠. 나와 먹이 협력해 형상이 나오는 즐거움은 먹을 가지고 노는 즐거움과 같아요.”

가톨릭 교리에서 모티브를 얻은 전혀 새로운 수묵화. 쉽지 않은 조합이다. 먹이 가지는 무거움에 종교적 개념이 눌려서도 안되고, 종교적 진중함에 먹이 흡수돼서도 곤란하다.

그는 ‘어린애 같은 천진스러움으로 자연 속에서 즐거움과 낙을 얻는다’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구절을 소개하며 “내 그림의 핵심은 ‘어린애 같은 천진함’”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최후의 만찬’이 무겁지 않으면서도 경쾌하고 천진스러운 이유다.

경북대 동양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동양학과를 졸업하고 예술가는 고독해야 한계를 넘을 수 있다며 칩거하며 조형적 혁파에 메달려온 이승찬의 전시는 7월 3일까지 봉산문화회간 1전시실에서. 053-661-35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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