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에 수억 뜯은 ‘현란한 말솜씨’
택시기사에 수억 뜯은 ‘현란한 말솜씨’
  • 정민지
  • 승인 2016.08.2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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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 비싸게 주고 사업가 행세
“높은 이자 주겠다” 급전 구해
전국 돌며 2억5천여만원 챙겨
A(39)씨가 구미에서 B(56)씨의 택시를 잡아 탄 시각은 오전 6시 10분. 목적지는 대구 수성구, 장거리 손님이었다.

A씨는 “칠곡에서 룸싸롱과 노래방을 운영하는데 아가씨 한 명이 5천만원을 들고 튀었다”며 “지금 잡으러 가는데 일당 10만 원, 시간당 만 원 줄테니 운전 부탁한다”고 말했다.

“웬 횡재냐” 싶었던 택시기사 B씨는 기분좋게 대구로 향했다. 사업 이야기를 늘어놓던 A씨의 구형 폴더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나 지금 대구가는 길이야. 내 돈은 가게 앞 BMW에 넣어놨지. 뭐? 5천 필요하다구?”

통화를 끝낸 A씨는 B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지금 친구가 도박을 하는데 급하게 돈이 필요해 4~5천만 원을 빌려달라 한다는 것.

A씨는 갑자기 지갑에서 수십장의 지폐를 꺼내 세기 시작했다. “아…500만 원밖에 안되네.”

어딘가로 급히 전화를 돌린 후 A씨는 B씨에게 제안했다. “다른 친구가 2천500만 원 해주기로 했는데 돈 천만 원이 부족하다. 빌리는 사람이 30% 이자쳐서 돌려준다고 하는데 이자의 반을 줄테니 돈을 빌려달라.”

순간 그 상황에 푹 빠진 B씨는 눈 앞에서 수백만 원 현금을 흔들고 있는 젊은 사업가를 믿게 됐다. B씨는 신용카드사에 전화해 1천만 원을 카드론으로 빌렸다. 카드사에서 돈이 입금될때까지 1시간여 동안 A씨는 누군가와 계속 사업 관련 통화를 하면서 B씨를 안심시켰다. 돈을 받은 A씨는 이름, 연락처 등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자를 붙여 돌려준다는 B씨의 1천만 원과 함께.

29일 대구 중부경찰서는 사업가 행세를 하며 택시기사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 달아난 혐의로 A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2014년 5월부터 최근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택시기사 23명에게서 총 2억5천790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택시기사들은 1인당 200만원에서 최고 2천만원까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조사 결과 10여년 전부터 이 수법으로 사기행각을 벌인 A씨는 무작위로 택시를 타 범행을 시도, 10명 중 2명꼴로 범행에 성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A씨의 전화 통화 연기에 피해자들이 감쪽같이 속았다”며 “A씨는 사기 밑천 500만 원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도박과 유흥비로 탕진했다”고 말했다.

정민지기자 j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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