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팅 잘해도 떫은 커피 맛 난다면 미분 제거 후 추출”
“로스팅 잘해도 떫은 커피 맛 난다면 미분 제거 후 추출”
  • 황인옥
  • 승인 2017.07.1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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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의 커피이야기
(17)고수(高手)들의 미분제거 기술 ②롤밀(Roll Mill)과 체
日 커피고수들 ‘롤 밀 분쇄기’ 사용
원하는 크기 입자를 균일하게 분쇄
미분 양도 타 분쇄기보다 적게 나와
제빵기구용 체로 미분 분리법 찾아
균일한 입자, 맛 균질하고 잡미 없어
카페엘카미노주인의커피추출장면
일본 여행 중 만난 카페 엘 카미노 주인의 커피추출하는 모습.

안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한줄기의 커피향기는 신기루고 미망(迷妄)이 아닐까? 찾아도 찾은 것이 아니고, 사라져도 사라진 것이 아닌, 두뇌 속 깊숙한 곳에 기억으로 존재하는 커피향기. 그 향기를 쫓아 사는 것이 고수(高手)들의 운명이라면 신(神)이 너무 가혹한 것 아닐까? 그래도, 그래도 나는 미친 고수가 좋아 그 언저리를 맴도는데, 깨진 유리조각에 비친 나의 뒷모습이 조금은 겸연쩍다.

오래전, 도쿄에 저온추출 커피를 만든다는 커피집이 있어서 커피지인들과 일본여행길에 찾아갔다. 커피집의 이름은 ‘카페 엘 카미노(Cafe El Camino)’, 주인은 호시노 히토시(星野 均). 바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고, 호시노씨의 일거일동(一擧一動)을 살피고 있었다. 커피를 만드는 절차는 여느 커피집과 같았으나, 추출에 사용하는 물의 온도가 80도로 많이 낮았다. 우리 일행 중 한사람이 저온추출을 하는 이유를 물으니, 그의 답변이 재미있다. 자신은 쓴 커피를 싫어해서, 쓴맛을 없애거나 줄이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고 최종으로 내린 결론이 저온추출 방법이었다라고 했다. 그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회사생활을 하다가 커피가 좋아서 카페를 차리게 됐다고 했다. 직접 커피를 볶으면서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그의 공학적 지식을 이용해 커피연구를 했다고 했다. 바 뒷면 테이블에 놓인 3대의 커피분쇄기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특히,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들어진 1대의 분쇄기가 눈에 띠었는데, 우리는 저온 추출커피보다 처음 보는 커피분쇄기에 관심이 더 많이 갔다. 그날 대화의 내용은 대략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되는데, 첫째는 3대의 분쇄기를 사용하는 이유를 묻는 것이었고, 둘째는 처음 본 스테인리스스틸 분쇄기에 대한 것이었다. 호시노씨는 우리의 질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숨김없이 이야기해주었다. 카페 엘 카미노에서 판매하는 커피는 강한 볶음커피, 중간 볶음커피 그리고 연한 볶음커피로 구분되는데, 볶음의 정도에 따라 분쇄기를 구분해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매우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날 참석한 우리 모두가 그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호시노씨의 저온 추출커피를 마셔보고 난 다음, 그가 추구하는 커피맛에 대해 상충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분쇄기의 구분사용은 그렇게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두 번째 궁금증인, 제조 메이커가 붙어있지 않은 스테인리스스틸 분쇄기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사용하는 분쇄기와는 분쇄방식이 전혀 다른 ‘롤 밀(Roll Mill)’방식이었고, 시중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아닌 호시노씨 특별주문으로 만들어진 분쇄기였다. 더군다나, 분쇄기의 제작가격이 당시의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해보면 삼천만원이 넘었으니,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면 그 많은 돈을 주고 꼭 사용해야만 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분쇄기일까라는 것이 그날의 우리들의 대화주제였지만, 여행일정상 시간제약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나는 롤 밀을 사용하는 또 다른 커피고수를 알고 있다. 도쿄의 긴자에 있는 ‘카페 드 란브르(Cafe De L‘ambre)’이다. 이곳 주인이자 일본의 대표적인 커피고수 ‘세키구치 이치로’씨는 오래 전부터 롤 밀 분쇄기를 제작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면 왜, 일본의 커피고수들은 롤 밀 분쇄기를 사용할까?

미분제거를위해체에부은커피가루
미분제거를 위해 체에 부은 커피가루.

◇롤 밀(Roll Mill)과 커피입자

전문가용으로 시판하는 분쇄기의 분쇄방식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요즘 전문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분쇄기의 대부분은 커팅(Cutting)방식이었다. 칼날처럼 자르는 부분을 버(Burr)라고 하는데, 버의 형상과 배치방식에 따라 플랫 버(Flat Burr)와 코니컬 버(Conical Burr)로 구분한다. 오늘의 이야기 주제는 롤 밀이기 때문에 다른 분쇄기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지금부터는 롤 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롤 밀은 방앗간에서 사용하는 곡물 분쇄기와 같은 원리로 만들어졌고, 크기는 그 축소판이다. 카페 엘 카미노와 카페 드 란브르에서 사용하는 롤 밀은 모두 3단으로, 커피원두를 매우 균일한 입도로 분쇄하는 것이 가능하다.

일본의 두 커피고수가 구태여 비싼 롤 밀을 사용하는 이유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원하는 크기의 입자를 균일한 입도로 분쇄할 수 있고, 원두분쇄 시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미분의 양이 다른 커피분쇄기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적게 나오기 때문이다. 분쇄한다는 것을 공학적으로 말한다면, ‘고체의 표면적을 증대시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용매와의 반응 면적을 증가시켜서 원하는 커피성분추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분쇄된 원두입자가 작아질수록 입자의 개체수는 많아지기 때문에 물과 접촉할 수 있는 표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때문에 0.2㎜ 이하의 미분이 많다는 것은 커피분쇄입자의 표면적이 증가해서, 추출 시 커피 맛에 영향을 주는 3가지 요인 중의 하나인 분쇄입자와 물의 접촉 면적을 비약적으로 넓혀서 의도하지 않은 문제를 야기 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고수들은 미분이 적게 나오는 커피분쇄기를 찾는 것이다. 전문가용으로 시판하는 커피분쇄기도 균일한 분쇄는 가능하지만, 미분이 생각보다 많이 나온다. 롤 밀도 역시 미분은 발생하지만 분쇄과정이 다른 분쇄기와 달라서 그 양이 상대적으로 좀 적을 뿐이다.

체친후분쇄된커피가루
체 친 후 분쇄된 커피가루.

◇미분 제거의 노하우, 체 거름

커피의 고수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미분을 제거할 방법은 없을까하고 물어본다면, 나는 당연히 있다고 말한다. 그것도 너무나 간단한 방법으로 가능하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 나만의 미분 제거 비법을 우리 독자들에게 선물로 공개하려고 한다. 필자는 커피공부를 하면서 커피 맛을 저해하는 미분의 양을 줄이려고 커피분쇄기를 여러 대 사용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비싼 전문가용 분쇄기도 미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매우 저렴하고 간편한 제3의 제거방법을 찾았다. 미분 제거를 고민하던 중, 건축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체’ 실험기구가 생각났다. 젊은 시절, 건축현장에서 체가름 실험으로, 콘크리트의 골재를 구별해 내기도하고 모래입자의 크기를 확인도하는 체 실험기구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나는 당장에 제빵기구점에서 가는 체를 구입했고, 체를 사용해서 분쇄한 커피 속의 미분을 분리해 냈다. 미분이 제거된 커피는 잡미가 거의 없는 정갈한 맛의 커피로 추출됐다.

나는 이 방법을 내 자신의 노하우로 생각하고 오랫동안 나 혼자의 비법으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제거되어야할 미분입자의 크기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분명히 대단한 효과를 보고 있었지만 주변사람들에게 설명할 기술적인 자료가 부족했었다. 그러던 중 일본의 ‘다케다 커피’의 ‘다케다’씨가 쓴 ‘미분을 제거한 마일드 드립 추출법’과 ‘커피의 분쇄입도’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그동안 내가 해온 미분 제거방법과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마, 커피에 미친 쟁이들이 하는 고민은 국가나 지역을 초월하는 것 같았다. 그가 권장하는 체의 크기도 내가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규격의 것이었다. 그것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가정용 체로, 체의 통과 사이즈가 0.84mm인 매쉬(Mash) No.20이었다. 이 체의 사용법은 분쇄기에서 나온 커피가루를 체에 넣고 한두 번 좌우로 흔들어 주면 밑으로 미세미분이 떨어지면서, 체 안에는 미분이 제거된 균일한 분쇄커피만 남는다.

카페엘카미노의저온추출커피
카페 엘카미노의 저온추출 커피.

◇마술 같은 커피 추출

왜? 구태여 미분이 제거된 균질한 분쇄입자를 원할까? 답은 명쾌하다. 분쇄된 커피의 입자 속에 침투되는 뜨거운 물이 커피의 분쇄입자 하나하나에 동일한 조건(접촉시간과 접촉면적)으로 작용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추출된 커피의 맛이 균질하고 잡미가 없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 간혹 로스팅을 잘했는데도 떫은 느낌이나 탁한 느낌의 커피가 추출되었다면 미분을 제거하고 다시 추출해보면 어떨지. 아마 깔끔한 느낌의 부드러운 커피로 변하는 마술 같은 상황을 체험할지도 모른다. 미분은 다른 보통의 분쇄 입자보다 극히 작기 때문에 추출 시 물에 잠겨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져서 커피 세포 속에서 추출되지 않아도 될 성분까지 추출된다. 그렇기 때문에 맛의 편차가 크고 원하지 않은 잡미가 추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제, 멋진 커피추출의 노하우를 알았으니, 독자들도 안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한줄기의 커피향기를 당신의 커피 잔에 담아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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