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의 재해석…갤러리신라 박창서展
재료의 재해석…갤러리신라 박창서展
  • 대구신문
  • 승인 2017.07.2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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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혹은 의문이 담긴

텍스트·퍼포먼스 차용

시각적 이미지로 구현

현대미술의 영역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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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석과 재생산이라는 과정을 통해 현대미술의 영역을 확장하는 박창서 초대전이 8월 28일까지 갤러리신라에서 열리고 있다. 갤러리신라 제공


무덤 같기도 하고, 침대 같기도 한 구조물이 전시장 바닥에 설치됐다. 그리스(기름)으로 쓰여진 누런색 영문 글귀가 흡사 묘비명 같다. 그러고 보니 또 다른 작품들의 재료도 글귀(텍스트·text)다. 중앙 벽면에 ‘Para-Phrase : Remember me’라는 문구가, 또 다른 벽면에 ‘You are still alive there’와 ‘Here, I am still alive’라는 문구가 쌍을 이루고 걸려 있다. 최근 갤러리신라에 설치된 박창서 작품들이다.

텍스트는 박창서 예술에서 지속적으로 목도되는 재료다. 텍스트가 상징하는 것은 ‘지식’. 다른 말로 ‘개념’이다. 그는 텍스트를 차용해 지적인 담론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이런 측면에서 개념미술의 연장선에 있다. 개념미술을 시작한 때가 15년 전이니 뿌리도 깊다.

“군 제대 후 행정대학에서 미술대학으로 전과를 했다. 지식을 공부하다 시각미술로 넘어오니 혼란스러웠다. 취미로 그리는 그림과 작품으로 그리는 그림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미술을 가능하게 하나?’, ‘작가란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어린시절부터 그림을 곧잘 그렸던 재능하나 믿고 호기롭게 행정학과에서 미술대학으로 전과를 했다. 하지만 태생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순을 제대로 밟아 미술대학에 입학한 친구들과 결부터 달랐다. 일말의 의문 없이 작품에 몰입하는 동기들과 달리 그는 쉬 작업을 시작하지 못했다. 포지션, 즉 위치에 대한 고민이 발목을 잡았다. ‘예술의 출발선을 어디로 정하고, 어느 방향으로 진행시켜 나갈 것인가’가 주된 관심사였다.

당시 그에게는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취미로 그리던 그림과 무엇이 달라야 하는지’, ‘작가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 등의 질문이 꼬리를 물었고, 미술사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개념미술이 본격화됐다.

“미술사는 사조의 변화 과정이 축적된 것이다. 사조가 변한다는 것은 지배적인 사조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는 말과 같다. 그렇게 보면 미술이라는 것이 시각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나오게 된 근원에는 질문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질문이 진짜 미술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내 작품의 출발선이다.”

무엇이든 현대미술이 되는 시대다. 소재나 주제, 분야를 망라한다. 특히나 개념미술은 표현 영역이 더욱 무궁무진할 수 있다. 이런 시대에 개념미술 작가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무엇일까? 그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시선과 담론을 현대미술과 연결 짓는 지점을 포착해 내는 것”이라고 명료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사소하지만 미술과 관계된 것들은 널려있다. 그 중에서 미술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작가는 그런 지점을 발견하는 사람들이다. 그 지점을 발견하는 것은 미술의 영역을 넓히는 것을 의미한다.”

작업 방식은 ‘차용’이다. 과거나 현재에서 만나지는 텍스트나 구조물 또는 사진, 퍼포먼스 등의 재료들을 차용한다. 이때 차용은 하나의 텍스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층적으로 행해진다. 하나의 텍스트나 구조물 등의 재료가 차용되면 연동되는 개념들이 더해지고 더해져 층위를 이룬다. 개념의 층이 쌓여갈수록 개념적 토대는 견고해진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재해석이 가해지고, 새로운 산출물로 재생산된다. 바로 미술 영역의 확장이다.

“과거의 담론이나 현재 상황을 시각적으로 환기한다. 내 이야기를 하지만 보편 이야기로 확장했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적용할 수 있다. 관람객은 그 환기를 통해 과거를 현재로 환원한다.”

이번 전시 또한 환기와 재해석의 연장선이다. 대학 재학 시기 극재 정점식 당시 명예교수의 특강에서 받은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한 작품이 대표적이다. 박창서는 ‘예술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을 담은 극재 선생의 글귀를 15년 동안의 프랑스 유학 시기에도 고이 간직했고, 이번 전시에 모티브로 차용했다.

“교수님은 작가, 교수, 평론가 역할을 동시에 해내셨다. 교수님이 갖추셨던 자질들은 현대의 작가들에게 여전히 요구된다. 이번 전시에 그분이 보여주셨던 작가로서의 롤 모델적 자질을 환기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분의 철학이 우리에게 이어진다고 믿는다.” 전시는 8월28일까지. 053-422-1628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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