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멜랑꼴리 지나 화려한 천진함으로
잿빛 멜랑꼴리 지나 화려한 천진함으로
  • 황인옥
  • 승인 2017.08.0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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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까지 갤러리 해브 ‘김정운展’
과거 ‘관념·흑백’ 위주 활동
모두가 즐거운 작품 하고파
밝은 색 사용 ‘성공적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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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김정운의 초대전이 갤러리 해브에서 20일까지 열리고 있다.

켜켜이 쌓아올린 폼새가 흡사 시루떡 같다는 말에 피식 웃었다. “아크릴로 한 판씩 쌓아올린 모양새가 시루떡 같기도 하네요.(웃음)” 사실주의에서 추상으로 넘어갔느냔 질문에는 얼굴색이 변했다. “정확히 추상이라고 할 수 없어요. 여인의 누드와 정물 그리고 동물 등을 묘사한 사실주의 기법이 접목돼 있으니까요.”

이어지는 작품의 변화가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대목에서는 곧바로 시인했다. “작업하는 나도 즐겁고, 작품을 보는 관람객도 즐거운 작품을 하고 싶어 변화를 주었어요. 복잡하게 사는데 굳이 작품까지 복잡할 필요가 있나 싶었죠.” 더러 보이는 작품 옆 빨간딱지는 변화가 성공적이라는 반증같았다. “색채가 밝아서인지 변화에 대한 반응은 나쁘지 않아요.”

김정운 하면 100여년 전의 서양 구제 가방에 전통 한국 여인을 빛바랜 사진 속 희미한 기억처럼 회색 위주로 그렸던 작품이 먼저 떠오른다. 이질적인 서양과 동양의 과거를 한 화면에 배치하며 두 문화의 융합을 시도했다. 그런 측면에서 김정운은 인류 보편 문화를 축출하는 제련사를 자처하는 듯 했다.

구제 느낌의 이전 작품을 기대하고 그의 전시가 한창인 갤러리 해브(HAVE)를 찾았다. 하지만 전시작들은 반전. 구제 느낌은 오간데 없고 화려한 색채가 전시장을 점령하고 있었다. 경북 청도군 각북면의 호젓한 전원 속에 모던하게 설계된 갤러리 공간에 화려하면서도 모던한 김정운이 작품이 살포시 얹힌 느낌이었다.

평면과 입체 공히 색채가 화려하고, 물감을 올린 아크릴판을 켜켜이 쌓아올려, 마치 물성을 가지고 논 것 같은 입체 작품에서는 자유분방한 소년이 감지됐다. 활기차다는 이야기다.

“작가에게 변화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이번 변화는 보다 획기적인 것이 사실이지요. 색채나 기법이 완연하게 달라졌으니까요.”

구제로 대변되는 이전 작품에는 현실적인 행보가 개입됐다. 2002년에 뉴욕 미술 실기 전문학교(The 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에 수학하며, 뉴욕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작품 활동을 하면서 구제가방에 한국의 전통여인을 그리기 시작한 것. 이후 그는 최근까지 흑백의 과거 어느 시점을 맴돌았다.

반면에 잿빛 과거에서 화려한 현대로의 귀환처럼 느껴지는 이번 전시작들은 추상적인 관념이나 멜랑콜리한 정서와 결별하는 독립선언문 같았다. 삶의 상흔이 견고하게 달라붙기 이전의 천진난만한 한때를 즐기고픈 바람을 담았다. “때로는 단순한 시간, 즐거운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일종의 쉼이죠.”

블링블링함을 추구하는 재료로 선택된 대상은 꽃과 누드. 벛꽃 잎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풍경을 화려한 색채로 추상적으로 표현한 평면 위에 여인의 누드가 ‘어서 찾아 달라’는 듯 수줍게 배치되어 있다. 숨은 그림을 찾듯 찾아야 보일 정도로 보일 듯 말 듯하다.

꽃과 여인은 만국공용, 누드는 그의 주특기라는 복합적인 이유로 선택된 소재들이다.

물감이 뚝뚝 떨어져 내리며 물성에 집중한 입체작품은 보다 내밀한 정서로 이어져 있다. 정글에서 야생의 본성을 만끽하는 동물을 표현했다. 작품 제목도 ‘꿈(DREAM)’. 제약 없는 환경에서 본성대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동물의 이상향을 이야기한다.

“벚꽃 만개한 봄날 여인이 꽃놀이를 하고, 정글의 주인이 동물이 행복하게 정글을 누비는 장면에서 근심걱정이 끼어들 틈은 없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은 힐링적인 요소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흑백의 터널을 지나 화려한 현대로 귀환해 갤러리 해브에서 자유분방한 색채의 향연을 펼쳐내고 있는 김정운의 전시는 20일까지. 054-373-7374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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