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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은커녕 ‘역사왜곡’ 지적…엇나가는 다크투어리즘

기사전송 2017-08-13, 20: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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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순종 어가길’ 조성 논란
청산해야 할 역사를 투어로…
중구, 북성로~수창로 2.1㎞
70억 투입 ‘순종 어가길’ 조성
당시 순종, 남부 도시들 돌며
‘일제 순종·투쟁 자제’ 당부
역사적 사실과 다른 어가길
1909년 순종, 日 군복 입어
달성공원 앞 동상은 ‘대례복’
사학계 “어가길 관광자원화
상징조형물
대구시 중구 달성공원 앞에 만들어진 순종황제 동상. 다크투어리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중구청 제공


대구 중구는 윤순영 청장 취임 이후 김광석길과 근대골목을 되살려 지역관광의 성공사례로 호평을 받았다. 또 2013년 당시 국토해양부의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 공모 사업’에 선정돼 국비와 시비 등 70억원을 투입, 최근 순종황제 어가길을 관광자원화했다. 순종황제 어가길 조성이 역사왜곡이라는 지적이 일자 어두운 역사도 재조명하는 다크투어리즘이라며 포장했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8.15 광복절을 맞아 대구의 다크투어리즘의 문제는 무엇이며 개선방향은 무엇인지 조명해본다. (편집자주)



◇“어울리지 않는 다크투어리즘”

다크투어리즘은 서울시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일제시대 서대문형무소, 남산의 대공분실을 현대사 다크투어에 포함시키고 있다. 어두운(다크 ·dark) 역사를 되돌아보며 오늘의 교훈을 얻기 위해서다. 투어 참가자들은 서대문형무소 건너 좁은 옥바라지 골목을 보며 일제에 저항했던 항일 운동가들의 힘겨웠던 역사를 되돌아본다. 독립문역 3번출구 옥바라지여관골목 보존 대책위원회도 만들어져 역사의 현장을 후손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대구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1909년 전국 순행을 떠나 대구를 처음 방문한 것을 모티브로 해 순종어가길을 투어로 연결시켰다. 대구시 중구 북성로와 수창동 일대 2.1㎞가 ‘순종 어가길’로 조성됐다. 순종 황제는 1909년 1월 7일 대구를 시작으로 마산과 부산 등 남부 도시를 12일까지 방문했다. 당시 임금(황제)이 전쟁이 아닌데도 다른 지방을 찾았다는 것은 상황이 급박한 사정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는 독립을 지키려는 조선 의병들의 투쟁을 억누르고 일제에 순종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구 중구청 의뢰로 다크투어리즘 용역을 했던 경운대 김일수 교수는 “순종어가길은 ‘일제침탈에 대한 반항을 자제하라’는 메세지를 전하는 친일로 가는 길이었다”며 “정당한 주장을 하다 억압받고 저항한 서울의 다크투어리즘 코스와 다르다”고 지적했다.

순종이 어가길 행차를 시작한 1909년은 한일합방을 앞두고 일제의 침탈이 본격화되고 이토 히로부미의 남한 대토벌작전 이후 전국적으로 일본에 대한 저항심이 커지는 시점이었다.

1909년 이또 히로부미는 1월 신년하례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순종에게 전국을 돌며 순무(관리나 임금이 곳곳을 돌아다니며 민심을 달래고 위로하는 일)할 것을 요구했다. 거칠게 타오르는 반일감정을 순종을 내세워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대구의 다크투어리즘을 비판하는 이유는 기념해야할 역사와 청산해야할 역사를 구분하지 않은데 있다. 한일합방을 앞두고 조선침략의 마지막 시기 대구에 와서 순종이 어떤 저항의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어가길 조성으로 달성공원 앞에는 순종의 동상이 서있고 대구역 롯데백화점 앞에는 순종어가길의 미니어처가 만들어져 있다. 당시 순종은 일본이 제공한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현재 달성공원 앞 동상은 궁중 대례복을 입고 있다. 다크투어리즘을 표방하면서도 옷을 바꾼 것은 역사왜곡이 아니냐는 지적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구청 관계자는 “차라리 동상을 안세우고 말지 일본 군복을 어떻게 입을 수 있겠느냐”고 항변했다. 또 “순종이 숨을 거두기 전 일본에 저항해 독립을 쟁취하라고 말한 ‘유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가길 조성을 무조건 비판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최근 ‘대구의 길을 걷다’라는 저서를 발간한 추연창 향토학자는 “달성공원 앞에 만들어진 순종 동상은 작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이상한 동상”이라고 비판한 뒤 “당시 어가길은 이또 히로부미가 조선백성들에게 자신이 황제도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을 보여준 치욕의 역사일 뿐”이라고 힐난했다.

중구청은 현재 작가명이 있다고 알려왔으나 처음 동상이 세워졌을 때는 작가 표시가 없었다고 향토학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순종어가길 관광자원화 사업이 한국 근대사에 대한 몰이해에서 시작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순종은 당시 부산항과 마산항에서 일본 기함에 승선해 메이지 일왕에게 축배를 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역사학자 김일수씨는 “순종이 기차에서 내렸던 대구역 앞 광장은 1946년 10월 항쟁과 1960년 4·19 혁명의 핵심적인 공간으로 성지처럼 다뤄야 할 곳”이라며 “이런 곳을 단순히 일제에 순응한 순종어가길로 기억하는데 그치는 것은 역사적 왜곡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일수씨는 “북성로 길 역시 일제시대 일본인들의 상업지로 5층 백화점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대구에서 유일하게 가로등이 있는 일인들의 거리였다”며 “북성로가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장악한 공간이었음을 분명히 밝혀야 하고, 또 일제의 억압기구였던 대구경찰서, 헌병대, 대구법원, 대구형무소 등의 경로를 걷게될 때 다크투어리즘에 맞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대구지역 한 역사교사는 중구청의 근대역사투어도 방향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근대라는 시기만 빌려왔을 뿐 일제 침탈의 역사에 대한 대구지역 저항의 역사가 조명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송현여고 안병학 교사는 “역사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왜 기억할 것인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가 중요한데 중구의 근대골목투어는 소비하는 역사에 머물고 있다”며 “특정인물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대구 전체를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재구성하고, 발굴된 소재가 현재 우리 삶의 실천에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역사투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의 한 원로 시민운동가는 현재 중구의 골목길이나 순종어가길 조성이 역사의식없이 진행되다보니 (일부 인사를 제외하고) ‘xx파’ 거리 만들기로 전락했다며 격분했다.

3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하면서 3대의 감옥생활을 합치면 27년이 되는 김일식 선생의 집도 대구다. 대구 남산동에서 태어나 생활했고 대구 일대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고 독립운동을 한 김일식 선생을 기념하는 기념사업이나 흉상은 대구에 없다.

왕이나 가진자들, 유명인들만 기억하고 행적을 찾으려 할 뿐 광복회와 학자들에 의해 알려진 독립운동가들이 많은데도 행정기관을 비롯해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대구에는 수운 최제우가 처형당한 관덕정이 있다. 최제우가 갇힌 경상감영의 감옥 부근(종로초등학교)에 수령 400년 넘은 최제우 나무가 있다. 서헌순 감사가 최제우에게 조정의 명령으로 효수형을 내리자 잎사귀에서 수액이 떨어졌다는 사연을 간직한 회화나무에 2012년 대구시가 이름을 붙였다. 향토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서 고향을 사랑할 수 없다. 지방분권을 외치고 있지만 지역의 독립운동가는 친일파들에 의해 밀려나 있지 않은가. 후손들에게 독립운동사를 떳떳하고 확실하게 알려주지 못한다면 다음 침략기에 외세에 저항할 후손은 없을 것이다. 미군정에 항의한 1946년의 10월 항쟁 등 대구는 동학사상이나 독립운동, 민주화의 성지로 얼마든지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을 대구시내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날은 언제 올 것인가.

김종현기자 oplm@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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