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18일 수요일    단기 4350년 음력 8월29일(戊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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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향기 살아있는 커피 만들려는 신념으로”

기사전송 2017-09-28, 21: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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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의 커피이야기 (25)故 모리미투 무네오씨의
카페비미 이야기(2편)
하와이로 이민 갔다 24세 때 귀국
커피전문점 ‘모카’와 운명적 만남
남들보다 많은 노력하며 커피 공부
5년간 수련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개업
손님 없었지만 자신만의 신념 포기 않아
맛이 강한 만큼 강한 향기가 공존해야
고-모리미투무네오씨
故 모리미투 무네오씨,


전(前) 주에 이어, 카페비미의 모리미투 무네오 씨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한다. 필자가 그의 이야기를 다시 하려는 것은 68년이라는 그의 삶이 짧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지 않은가? 그렇기에, 명이 짧아 세상을 조금 빨리 떠나든, 좀 오래 살든 그런 삶의 길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신에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살아왔는가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나는 모리미투 무네오씨의 삶과 그의 궤적이 늘 궁금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수많은 직업의 종류 중에서, 왜 커피를 직업으로 선택했고 그가 커피의 장인으로 평생을 살면서 무얼 했는지, 주변에 남긴 흔적을 찾아 그가 이루어 놓은 커피의 세계에 다가가 보려고 한다.

◇하와이에서 처음만난 진짜 커피

무네오씨는 1947년 후쿠오카현 구루메시 젠도우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구루메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술대학에 응시했으나 실패하고, 쿠와자와디자인연구소의 전문학교과정에 입학했으나, 2년 후 학생운동에 참가하면서 학교를 중퇴하고 말았다. 그때, 어머니의 권유로 하와이 오아후섬에 이민을 간 어머니의 이모 집에서 반년동안 식객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진짜커피를 맛보게 되었다. 다음의 이야기는 그가 어느 언론과 하와이 시절을 회상하면서 인터뷰한 것이다. “그때마신 커피는 내가 마신 진짜 커피였습니다. 커피콩이나, 커피추출이 정통적인 방법이어서 당연히 맛있었는지 모르지만,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 잔의 커피가 일상생활 속에서, 또는 일상의 힘든 노동 속에서 ‘구두점(句讀點)’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때, 커피의 진정한 맛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것 자체의 의미를 엿본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무네오씨는 이렇게 하와이의 생활에서 그의 평생 동반자가 될 커피를 만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힘들게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이민생활을 통해, 일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운명적인 삶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 어떻든, 그가 젊은 나이에 대학진학을 통해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면서 철학적 사유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 잔의 커피가 우리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 의미와 가치를 젊은 시절부터 일찍 깨달았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카페비미에서 그를 만날 때마다 뭔가 모르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것은 무네오씨의 독특한 의상과 실내 인테리어 분위기의 영향만은 아니었다. 그의 의상은 스스로 정한 유니폼 같았는데, 단순한 무명옷에 독특한 스타일의 모자까지, 어쩌면 도의 경지에 이른 선인(仙人)의 복장이 있다면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커피추출
故 모리미투 무네오씨의 커피 추출.


◇운명의 ‘모카’(吉祥寺の ‘もか’)

그는 하와이에서 귀국한 후, 24세가 되는 1972년에 도쿄에 있는 커피전문점 키치죠지(吉祥寺)의 모카에 취직을 했다. 모카의 입사는 무네오씨에게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 곳에서 무네오씨에게 두 가지의 운명적 만남이 있었는데, 그 하나는 그의 스승 ‘시메기 유끼도시(標交紀)’였고, 다른 하나는 그 곳의 고객들이었다. 그가 학생운동에 가담하고 학교를 중간에 그만두면서 패배감에 싸여서, ‘어떻게 죽을까?’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고 있던 시기였는데, 모카에 오는 고객들의 표정이 밝고 눈빛이 모두 생생하게 빛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 본 계기가 되었다.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좌절에 빠진 자신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매일매일 새롭게 활기찬 모습으로 나타나는 고객들과의 만남이 그에게는 한줄기의 빛이었다. 이처럼 모카에서 그의 인생은 새롭게 싹트기 시작했다.



모카에서 반년이 지나자, 가게의 선배가 그에게 커피추출법을 전수해 주었고, 1년이 지나면서 카운터의 일까지 맡게 되었다. 이것은 모카의 기준으로 볼 때, 매우 이례적인 일로 대단히 빠른 승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숨은 노력의 결과였다. 무네오씨는 가게의 책임자인 마스터가 12시간 근무하면, 그는 14시간, 15시간을 일하면서 커피를 배워갔다. 쉬는 날은 헌책방을 돌아다니면서 커피에 관련된 책을 찾아 공부를 했고, 이름난 커피집도 찾아다니며 다양한 커피 맛을 경험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커피라고 판단했고, 그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노력을 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맛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것은 유아시절에 체험했던 ‘가공되지 않은 맛(生の味)’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 기억이 커피공부를 하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전에 어느 잡지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의 경우는 어릴 때, 특별한 간식이 아니라 숲속의 야생 산딸기, 메밀잣밤나무 열매, 밭에 심어있는 당근이나 무, 그런 것들이 간식이었습니다. 자연만이 가질 수 있는 맛의 풍미는 결코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자연의 맛을 기반으로 또 다른 맛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맛을 살리기 위한 것이지, 가공되지 않은 맛을 모르는 사람이 그 맛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가공되지 않은 맛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모카에서의 근무는 그에게 운명적이기도 했지만, 인맥을 넓히는 기회의 시간이었다. 그가 근무할 당시 모카와 키치죠지(吉祥寺)시는 각광을 받던 시기여서, 다양한 분야에서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려고 모카에 모여들었다. 이름난 커피관계자들이 당연히 많이 왔고, 사진작가와 철학자 등 당대 이름을 날리던 유명 인사들의 발길도 잦았다. 이 시절에 이런 사람들을 고객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겐 커다란 행운이었다.

카페비미의바텐과손님들
카페비미의 바텐과 손님들.


◇카페 비미의 개업과 커피철학

그는 모카에서의 5년간의 수련생활을 마감하고, 개업을 하려고 고향 후쿠오카로 돌아왔다. 무네오씨는 처음에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인 쿠루메(久留米)를 생각했지만, 아무 간섭도 없는 신천지에서 해보고 싶어서 1977년 12월 텐진(天神)의 변두리에 카페비미를 시작했다. 지금은 텐진이 화려하고 번화한 거리지만, 당시에는 한적한 장소였다. 그때, 후쿠오카에서는 아메리칸 커피가 유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강한 볶음의 프렌치로스트 커피를 고집했기 때문에 고객들의 입맛에 맞지 않아서 손님이 거의 없었다. 개업을 했지만, 손님을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커피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그럴수록 물을 탄 아메리칸 커피 따위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자신의 커피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커피를 마신 고객이 커피의 맛을 혀로 기억하기를 바랐고, 따라서 감동의 향기가 살아있는 커피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분명히 서 있었다. 그는 결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루에 커피콩알 하나만큼씩만 진전을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정한 커피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그가 생각하는 커피는 맛보다 향기라고 믿었다. 미각이라는 것은 빛과 그림자처럼,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고 상반된 것이지만, 서로 공존을 하면서 동시에 느껴지는 그런 커피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추구하는 커피는 쓴맛은 있는데 쓰지 않고, 신맛이 있어도 시지 않은 커피로, 맛이 강한 것만큼 강한 향기가 공존하는 커피여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는 블랙커피를 마시는 것에 대해 자신의 지론이 분명했는데, 블랙커피는 일본사람들이 처음 마시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중동이나, 유럽 사람들은 커피를 단독으로 마시는 것보다 향신료나 설탕, 우유 등을 첨가해서 마시는 것이 일반적인 습관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커피는 그 나라의 풍토와 습관에 따라 마시는 방법을 달리할 수 있는 자유도가 높은 음료여서, 그 나라만의 고유한 커피음용법이 발달되어간다고 믿었다. 이렇게 커피를 만들고 공부를 하면서 그의 커피관은 점점 확고하게 형성되어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블랙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커피마시는 사람의 수준을 가늠하는 ‘커피 맛을 아는 사람에 대한 평가기준’을 가지고 있었는데, 블랙커피를 마시는 도중에 커피가 식어도, 식어가는 온도의 변화와 함께 변해가는 맛과 향기의 세계를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느낄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커피 맛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고(故), 모리미투 무네오씨의 카페비미 이야기는 다음 편에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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