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한 번 읽으면 주머니와 상자 속에 두는 것과 같이 잊지를 않았다
글을 한 번 읽으면 주머니와 상자 속에 두는 것과 같이 잊지를 않았다
  • 승인 2017.10.1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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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책읽기에 좋은 계절 가을이다. 천자문에 ‘탐독완시(耽讀翫市) 우목낭상(寓目囊箱)’이라는 구절이 있다. ‘책 읽기를 즐겨하여 저자(시장)에 나가서 책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글을 한 번 읽으면 주머니와 상자 속에 두는 것과 같이 잊지를 않았다.’는 뜻이다. 한나라의 왕충은 어린 시절 집이 너무 가난하여 끼니조차 제대로 잇기 어려웠다. 글 읽기를 매우 좋아하였으나 가난 때문에 책을 살 수 없었다. 그래서 한나라의 서울인 낙양에 있는 저자거리에 가서 책을 이리저리 펼치면서 구경을 하면서 글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한 번 책을 펼치면 온 정신을 집중하여 읽었기 때문에 내용을 전부 기억하였다. 물건을 주머니와 상자 속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처럼 책의 내용을 기억하였던듯하다.

어렵게 공부하여 제자백가가 된 왕충은 논설을 좋아하였다. 그는 모든 현상들은 ‘기(氣)’의 작용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하늘과 사람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상관관계를 믿지 않았다. 음양오행설도 부정하였다.

왕충은 유물론적 생각을 가진 학자였다. 그는 ‘거짓’을 미워하였다. 그는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틀린 것은 틀리다고 분별하는 사람만이 훌륭한 지식인이라 하였다. 요즘 정치인들이 본받아야할 준거(norm)이리라.

필자의 어릴 적 서당훈장도 “왕충처럼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고 하였다. 책을 천 번 읽으면 ‘문리(文理)가 터진다.’고 하였다. 문리는 글의 뜻을 깨달아 아는 힘이다. 즉 문리는 ‘깨달아서 아는 힘’이다.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이루어진다.

학동들이 천자문 다음에 배우는 동몽선습에 나오는 ‘글을 천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나타난다.’고 한 ‘독서천편기의자현(讀書千遍其義自見)’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자꾸 읽어서 마음에 젖어들면 설명을 듣지 않고도 그 뜻을 저절로 깨닫게 됨을 말한 것이다.

매월당 김시습도 ‘옛사람 글 읽을 적에는/먼 옛날 일이라 생각지 마라./이치를 따지는 말 내 스승 삼고/세상 보는 법을 옳게 배울 일이지/천년이나 떨어져 있다 하지만/눈앞에 마주 앉아 얼굴 맞댄 듯/캐묻고 따질 일 생각나거든/그때마다 문답 벌여 의심 풀어라/한 구절 반 구절 기억한다면/있는 힘껏 실천하며 길 찾아야지./꼼꼼한 공부가 세상 가장 좋으니까/밝은 길은 그대를 속이지 않노라.’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공부라 하였다. 몇 년 전 어느 수험생은 ‘공부가 가장 재미있다.’고 했다. 공자도 ‘배우고 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하였다. 한 구절 반 구절 기억한다면 있는 힘껏 실천하여 길을 찾는 것이 좋으리라.

명심보감에 순자의 ‘반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리에 이르지 못하고, 작게 흐르는 개울물이 모이지 않으면 강물이 되지 못한다.’는 가르침이 있다.

대구 시내를 흐르는 금호강 푸른 물위에 청둥오리들이 날아왔다. 그 강물 위에 아침저녁으로 노을이 고운 단풍처럼 붉고 붉다. 가을이 깊어간다. 읽은 글을 그냥 읊조려 보고 써라. 각곡유목(刻鵠類鶩)이라 했다. 청둥오리를 다듬다가 안 되면 비슷한 집오리라도 된다. 자칭문인이라도 되리라.백운거사 이규보의 ‘낙동강을 지나며’의 시에 ‘가을 강물은 청둥오리 머리처럼 푸르고. 새벽노을은 성성이 피처럼 붉다. 누가 알리 이 나그네가, 천하의 시인인 줄을.’하였다. 천하의 시인 이규보도 남이 몰라봤다.

천자문의 글씨는 한석봉체이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명나라의 유명한 문인은 ‘동국에 한석봉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글씨는 성난 사자가 돌을 깨뜨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또한 명나라의 유명한 서예가는 ‘한석봉의 글씨는 진나라의 왕희지와 당나라의 안진경과 우열을 다툰다.’고 하였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많은 사람들이 한석봉의 글씨를 구해갈 정도로 외국에서는 명필로 추앙 받았다.

천자문은 ‘천(天)~야(也)’로 끝난다. 글의 뜻은 ‘하늘이라.’이다. 사물의 이치는 ‘하늘의 이치가 땅에서 완성된다.’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글 읽기는 ‘박이정(博而精)’하여야 한다. 많이 읽되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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