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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음악.미술

잘게 찢은 한지, 삶의 면면이어라

기사전송 2018-01-11, 21: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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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옥이 만난 작가> 정해경
가까이 서면 공간 보이고
멀리 서면 평면으로 보여
종이와 틈새, 삶이자 자신
정해경작무제220-130cm
정해경 작 무제.


평평한 화면이 콜라주(collage)로 채워졌다. 가장자리 가까운 곳에 반구도 위치시켰다. 곡면은 침소봉낭처럼 평면위에 불쑥 둥글게 솟아올랐다. 곡이 진 화면에서 굴러 나온 것 같은 구(球)는 독립된 영역을 확보했다. 작가는 그것을 에너지라고 답한 바 있다. 2014년 봉산문화회관에서 본 작가 정해경의 작품에 대한 기억이다. 4년 전처럼 전해경의 작업은 지금도 콜라주가 꾸준하다.

62년생인 정해경 작가의 이력은 다양하다. 20대 후반에 중어중문학을 전공하고 곧바로 서예과 학사를 졸업했다. 연이어 석사과정(문인화)을 마친 후 현재까지 작업에 전념한다. 전공과 학위가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관심분야이자 진행 중인 작업의 모태이기에 간과할 수 없다.

며칠 전 작가 정해경을 만나러 간 곳은 그녀의 집이다. 거주하는 아파트의 방 한 칸이 그녀의 작업실이다. 서실에서 집으로 짐을 모두 옮긴지는 두 달 됐다고 한다. 진행 중인 작업이 작업실 벽면에 가득하다. 촘촘한 한지의 층간이 잔잔한 표면을 펼쳐놓는다. 위에서 아래로 차곡차곡 붙인 한지는 시간의 집적이다. 거짓 없는 삶의 순간들이기도 하다. 작품과 거리를 두고 물러나서보면 표면이 평면적이다. 유심히 보면 잘게 쪼개어진 한지가 공간을 부드럽게 가른다. 주목할 것은 불규칙적인 표면이나 한지의 고유한 물성이 아니다. 층층이 형성된 공간의 틈 사이에 집적된 시간에 관심 기울여야 한다. 촘촘한 시간과 공간은 작가의 삶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먼저 밑바탕이 될 한지를 벽면에 부착하고 간간이 글씨도 쓴다. 그 위에 가늘게 찢은 한지를 순차적으로 붙여나가는 것이 정해경의 작업방식이다. 현재의작업방식은 변모된 그간의 작업여정을 비춰주는 단서로 요긴하다. 30년 전 정해경은 문학도였다. 점차 서예에 매료되어 붓을 잡았지만 현재는 자신을 수식하던 타이틀을 모두 내려놓은 상태다. 버려야만 새로운 것이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는 것이 그의 작업 지침이다. 자신의 삶을 오롯이 담아내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작업은 체화된 지난 경험들(독서, 서예, 문인화)이 토대이다.

정해경이 전공한 문인화는 시처럼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서예의 핵심은 기(氣)와 운(韻)이다. 동양미술은 정신을 높게 여긴다. 모든 색을 함유한 수묵(水墨)을 통해 형상 너머의 정신과 뜻을 마음으로 터득하는 것은 서예와 문인화의 공통점이다. 둘 다 기와 운의 조화를 추구하고 정신을 으뜸에 둔다. 정해경의 지난 작업들도 그랬다. 그러나 현재는 전통운필에만 기대지 않는다. 전통문인화나 전통서예에서 한발 비껴난 셈이다. 관성의 법칙처럼 하던 것을 멈추면 익숙함이 발끈한다. 일탈은 신선하나 외로움을 동반한다. 성공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낯설기에 지탄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전통을 벗어난 작품을 전통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질감이 감돌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수용한 정해경의 이러한 창작은 정신적인 분리라기보다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읽혀진다. 열린 시각인 포스트모더니즘을 탐독한 영향이기도 하다. 엄밀히 따지면 방식만 바뀌었을 뿐 뼈대는 그대로다. 저변에서 감지되는 고유한 동양정신과 철학은 평생 작가이기를 희망하는 정해경을 지탱해주는 힘으로 작용한다. 정해경의 콜라주 작업은 전통이란 틀 속에 정신을 옭아매지 않으려는 신념에서 출발했다. 한국적인 정서에 국한시키거나 장르간의 경계에도 구속되기를 거부한다.

정해경이 가치를 두는 것은 인간인 자신의 주체를 매순간 점검하여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다.

“실수를 할까 두려워하는 작업이 아니라 일상의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 너무나 평범하고 오히려 평범에서 부족한 내 모습을 그대로 붙여 버리는 작업이다” (정해경 인터뷰 중).

방만을 금한 주체적인 자아는 혼재된 환경마저 장점으로 승화시킨다. 그것이 완만한 그래프를 남긴다. 이러한 작업을 지속적으로 밀고나가는 힘은 삶에 정면 대응하는 자세 다름 아니다. 작가는 그것을 이치로 설명하려는 듯 마음을 다잡고 차근차근 기(氣)를 쏟아 붓는다.

의미전달 할 만한 기호가 없어도 감동으로 다가오는 음악처럼, 또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처럼, 형상 없는 실체를 형상화하는 것은 조형예술의 난제이자 희열일 것이다. 형상과 개념은 공기처럼 떠도는 주위의 것들일 수 있다. 이웃처럼 친숙한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작가 정해경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삶을 연민한다는 것이다. 보폭을 최대한 작게 하려는 듯 잘게 찢어 붙인 종이는 무너질 줄 알면서도 붙드는 삶의 연민 다름 아니다.

애써 자신을 알아달라고 호소하지 않으며 마음부터 챙기는 그녀의 행위가 현재 진행 중인 콜라주 작업처럼 고요하다. 그것이 완만한 그래프를 그린다. 끝없는 욕망의 종착점을 아직 찾진 못했으나 어느 정도 가까운 거리에 다다른 듯하다. 잡으려고 하면할수록 허망해지는 것이 집착이란 것을 알 만큼의 경륜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정해경은 자신의 이러한 작품이 해석되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보이는 그대로 느끼길 원한다. 아마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진솔하게 기록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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