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욕망…본성 담긴 예술이 곧 인문학”
“권력·욕망…본성 담긴 예술이 곧 인문학”
  • 대구신문
  • 승인 2018.04.2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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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 3세 서경식 교수 ‘나의 이탈리아 인문기행’ 출간

인문학이란 인간 단편성에 저항하는 것

타자 향한 혐오 강화된 시대

차별, 글로벌 문제로 떠올라

2014~17년 밀라노 등 방문

역사 바탕 통합적 시각 접근

예술가와 작품에 대해 기록

“예술 황금기 통해 자아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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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도쿄케이자이대학 교수.
재일조선인 3세로 소수자 인권과 디아스포라 문제에 집중해온 서경식(67) 도쿄케이자이대학(東京經濟大學) 현대법학부 교수가 지난 22일 대구를 찾았다. 지난 1월 출간한 저서 '나의 이탈리아 인문기행'의 북 토크를 위한 방문이었다. 그가 본격적인 토크에 앞서 "나는 대학에서 예술과 인권, 법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고 있다. 장르의 경계를 넘었다"면서 "장르를 나누기 전의 인간의 모습, 고집이 있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인문학"이라고 인문학에 대한 정의부터 내렸다.

책의 근간이 인문인 만큼 그에게 인문학에 대한 개념 정립은 중요해 보였다. 그가 말하는 인문학은 장르를 나누고 세분화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우리나라서 통용되는 인문학 개념과는 결을 달리한다. 그가 "인문학은 인간의 단편성에 저항하기 위한 통합의 학문"이라고 정의 내렸다.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라면 단편적이며 분절적인 접근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 그러한 접근법이야말로 상업주의와 국가주의가 인간을 이용하는 방식에 불과하다고 했다. "좁은 공간과 짧은 시간을 벗어나면 광활한 역사가 있다. 그런 시각으로 세상에 접근해야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있어요. 그 상상이 단편화를 막아내고 상업주의와 국가주의에 이용 당하지 않을 수 있죠."

서경식은 재일조선인 3세다. 1974년 와세다대학 문학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정치와 역사, 시사, 그리고 역사에 대한 글을 쓰고, 도쿄케이자이대학에서 인권도 가르친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디아스포라 기행' '나의 조선미술 순례' 등 유명 미술 에세이집 저자이기도 하다. 

대학교수, 활동가, 에세이 작가를 아우르는 그의 지향점은 인문학이다. 인간으로서 종합적이고 일반적인 지성을 어떻게 지켜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진정한 인문학자로 사는 것이 시대가 그에게 부여한 과제라고 믿는다.  

서 교수의 미술과 인문학에 대해 관심을 거슬러 올라가면 소수자이자 디아스포라 서경식이 있다. 그의 인문학은 재일동포 3세라는 상황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일본에서 '무권리' 상태를 강요받아왔다. 정신적인 폭력이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사회 속에서 소수자로 살면서 인문학이 무엇이며 왜 인문학이어야 하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우리사회에 폭력이 없어질까에 대해 나는 비관적이에요. 왜 살아가는지를 질문하면 답이 없죠. 그렇더라도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봐요."

그는 현 시대를 인문학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상황을 언급했다. 아베 정권 시기를 지나면서 재일조선인과 한국인에 대한 배척과 혐오 분위기가 더욱 심해졌고, 타자에 대한 공격성과 차별화가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작동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20년 남짓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현상이 일본을 넘어 전세계적인 문제로 넘어갔다고 진단했다.

"인간은 애초부터 잔혹하고 어리석은 존재였지만 간혹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어떤 근대적인 시도가, 예술적이고 정치적인 시도가 반짝 하고 빛났던 시기가 있었죠. 그 시기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새로운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해요."

그의 신간 '나의 이탈리아 인문기행'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로마, 페라라, 볼로냐, 밀라노 등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방문해 다양한 예술가들과 예술작품을 만나고 생각한 바를 기록한 여행 에세이다. 책에는 분절화된 시각보다 거시적인 역사의 줄기 속에서 통합적인 다양함으로 예술작품을 바라보며 인문학적인 상상을 펼쳐낸다. 왜 예술이었을까에 대해 그가 "예술 속에 권력, 욕망, 종교, 잔혹함이 다 들어있다. 이것이야말로 인문학의 총합"이라고 답했다. 

강연이 깊어지자 책 후기에 언급된 로렌초 이야기를 꺼냈다. 로렌초 이야기에는 서 교수가 주장하는 통합으로서의 인문학이 담겨있다. 로렌초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폴란드에 세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감금된 이탈리아인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벽돌공으로 일한 그는 매우 괴팍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진가는 아유슈비츠 수용소에서 빛을 발했다. 

"로렌초가 도와줘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이 많았다고 해요. 괴팍했던 노동자와 아우슈비츠에서의 인간적인 로렌초 둘을 생각할 때 무엇이 로렌초의 실체일까요? 둘 모두 로렌초죠. 통합적으로 볼때라야 로렌초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죠. 우리가 인문학적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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