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정치
넛지정치
  • 승인 2018.05.23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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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지방자치
연구소장
남이 안 볼 때 사람의 행동은 여느 때와 다를 경우가 많다. 자기 제어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남자 화장실 변기 중앙에 파리 그림을 그려 놓았더니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나 줄었다는 말에 국내에서도 그런 소변기를 심심찮게 본다. 또 고층 건물의 엘리베이터 안 벽면에 거울을 달았더니 속도가 느리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훌쩍 줄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소변기에 파리가 붙어 있는 것 같은 착상에 별 생각 없이 파리를 향해 쏘는 것이나 거울을 보고 매무새를 고치다 보면 어느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것에 우리는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자연 행동이 그렇게 익숙해지는 것이다.

영어단어 넛지(nudge)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뜻이다. 강제하지 않고 유연하게 개입함으로써 사람들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이 이른바 넛지효과다. 부드러운 말이나 행동으로 슬며시 터치해서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 가 살피는 것이다. 넛지는 인간사회 어느 분야에서나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을 예삿일로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것이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넛지행동을 하는 존재다.

사람이 움직이는 조직도 마찬가지다. 그 실상을 보면 의도적이든 아니든 모두가 자기 유익을 위해 행동한다. 내 주위에는 뉴스를 아예 보지 않는다는 친구들도 더러 있지만 나는 도리어 즐기는 편이다. 나라 안팎에서 시시각각 다양하고 기묘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는 넛지의 양상이 재미있어서다. 트럼프와 김정은 간의 핵 폐기 여부 회담을 앞두고 벌어지는 서로 찔러보고 맛보는 외교정치도 면밀하게 관찰하면 넛지인 것이다.

미국이 CVID를 말하면서도 자국의 안보를 위해 북과의 핵 회담을 유연하게 끌어갈 것이란 말도 나오고 북의 태도가 시원찮으면 더 강력한 제재를 하겠다거나 무력행동으로 옮길지 모른다는 것 이 모두가 불확실 하지만 넛지요소가 들어 있다. 연기자에 비견될 김정은의 그 간의 외교 재치에서도 많은 넛지가 보인다. 우리는 TV에서만 보던 김정은의 먼 모습을 아주 가깝게 접하면서 그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남북고위회담을 무산시킨 일이나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행사에 한국의 취재기자에게 비자 발급을 안 해 준 것 등을 보면 그 간의 모든 행동들이 의도된 넛지 였음을 알 수 있다. 북에 매달리는 것 같이 보이는 한국에 조급증을 주면서 미북 간의 회담을 유익하게 이끌어 가려는 작전이다. 그리고는 맥스선더 훈련 중단, 태영호 비난, 대북 전단 살포금지, 탈북 여종업원 송북 등 우리에게 아주 힘든 짐을 지운다.

나라 안의 넛지정치를 보자. 문정인 특보가 보이는 정치행태는 오리지널 넛지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하면서 대통령의 언급에 앞서 초를 띄우는 말을 수시로 하고 있다. 대통령의 특보이기 전 전문가의 위치라면서 사견임을 늘 전제한다. 이를테면 “북이 핵 미사일 도발을 중지하면 한미군사훈련과 미군의 전략자산 전개는 축소해야 한다”. “남북대화를 하는데 북미대화의 조건과 맞출 필요가 없다.” “내게 있어 최선의 방책은 실제로 한미동맹을 없애는 것” 등등이다. 대통령이 말 못하는 민감한 말들을 서슴없이 한다. 툭 던져보는 그의 말에 국외자의 반응을 보고 청와대가 짐짓 경고를 한다거나 본인의 유감 표시로 묻혀 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특검으로 가게 된 드루킹 사건은 현 정권의 계륵이다. 이 사건이 정권 실세와 연관되어 있다는 계속되는 언론의 추적과 드루킹이 모 신문사에 보낸 서신으로 문제가 확산되자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자체 조사한 결과라면서 발표를 했다. 기사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드루킹 사건이 불거진 지난 달 중순, 송인배 제1비서관이 드루킹과 김경수 의원을 연결해 주었다고 알려와 조사를 했다”며 “하지만 대가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돼 조사를 종료했다”고 한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청와대 스스로가 자체의 치부를 들어내어 발표한 일은 거의 없었다.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한 넛지행위로 볼 수 있겠다. 사람관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나라와 국민 간에도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의도된 넛지가 자신에게 장점을 줄지 모르나 때로는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우도 범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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