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사랑의 매로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신 선생님
<팔공시론> 사랑의 매로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신 선생님
  • 승인 2009.05.1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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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로 (논설위원)

우리는 학창시절에 많은 선생님들을 만난다. 실력 있고 수업 시간에 잘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 성품이 곱고 자상하시고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은 선생님은 늘 인기였다.

선생님들도 성적 우수한 학생보다는 가르침에 잘 따르는 성실한 학생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배우며 학창시절을 보내는 것은 모든 학생들의 바람일 뿐만 아니라 부모님들의 희망사항일 것이다.

그런 선생님은 졸업 후에도 오래도록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학생들에게 애정을 갖고 교육과 지도에 헌신하는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선생님 중에는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도 많다.

학생을 편애하거나 이유도 없이 괴롭히는 선생님, 재미없는 수업에다가 세상 이야기로 시간을 허비하는 선생님, 학생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시험과 과제를 무지하게 어렵게 내시는 선생님 등. 게다가 성격에 이상이 있는 것 같은 선생님을 만나면 그야말로 그 해는 지옥이다. 그 중에서도 매를 많이 드는 선생님은 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선생님일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에 진학할 무렵이었다. 당시 우리들은 깊은 두려움과 공포에 빠져 있었다. 3학년 선배들로부터 전해들은 무서운 영어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시험치고 나면 무조건 틀린 점수만큼 두들겨 패는 선생님이란다. 그래서 별명이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깨창”이란다.

첫 시간에 만난 선생님은 별명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날렵하고 가름한 외모에다가 고혹적인 눈웃음을 지니신 매력적인 선생님이었고 강의 또한 명쾌했다. 하지만 따뜻하다기보다는 두렵고 차갑게 느껴지는 선생님이었다.

중간고사 이후 첫 시간이 되자 우리가 들은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영어 점수는 채점해 볼 필요도 없이 맞아 보면 알게 되었다. 주관식 문제가 많아 열 문제 정도 틀리면 양호하다던 시절에 60명이 넘는 반 학생들의 매타작에 한 시간은 부족했다. 서둘러 줄서서 맞아야했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가며 한명씩 불러내던 선생님이 빵점 맞은 학생이 나오면 그러셨다. “내 좀 살리도.”

선생님의 매타작은 매학기 두 번씩 어김없었다. 정말 공포의 계절이었다. 전 학년 학생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두들겨 맞아야 했다. 절대로 봐주시는 것도 없었다. 무섭기만 하던 선생님에게도 인간적인 모습이 있었다. 우리 학교에 장학사들이 수업을 참관하러 온다는 날이었다.

그때가 영어 시간이었다. 장학사 일행이 들어오자 갑자기 선생님의 얼굴이 홍당무보다 더 빨갛게 변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대학 은사님이 계셨던 것이다. 우리는 당황하여 얼굴이 붉어지는 선생님을 보면서 그 분도 몸속에는 우리처럼 사람의 붉은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냉혈한으로 소문났던 선생님이 장가를 간다는 소식이 돌았다. 우리는 모여서 대책회의를 했다. 색시 될 분에게 선생님의 참 모습을 알려서 혼인을 막아야 한다는 정의파 학생들 때문이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누구 인생을 망치시려고. 친구들 중에는 사모님 되실 분은 재림한 예수님일 것이라고 했다. 또 미륵불이 하생하셨을 것이라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런 분과 혼인을 하실 수 있는가?

선생님의 결혼식은 무사히 치러졌다. 혼인을 막지 못한 우리는 선생님 신혼집을 불시에 습격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평소에 비교적 매를 덜 맞은 친구들 셋이 반 학생들 대표로 돈을 모아 장미꽃도 사고 처녀 선생님이라면 기절할 선물도 준비해서 댁으로 처 들어갔다. 선생님의 당황하시는 모습에 우리는 통쾌해 했다. 사모님은 제자들이 왔다고 정성껏 음식을 차려주셨다.

우리는 그 맛있는 과일과 과자를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없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그냥 넘어가실 리가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별 말씀이 없이 넘어가 주셨다.

우리는 졸업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선생님의 사랑과 애정이 그 매 속에 담겨있었다는 사실을. 30년이 지나서 만나도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주시던 선생님. 모든 학생들이 선생님의 매를 맞으며 공부했기에 우리 졸업생의 추억 속에 그분이 항상 계신다. 사랑의 매로 우리의 학창 시절에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셨고 우리 졸업생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신 송택균 선생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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