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가랑 가랑잎 모여 사는 두메
치악산 화전火田골에 서 있는 움막
그해 시월 늦가을 글밭 시간에
교사겸 담임겸 글밭 시간에
고사리 손들을 한자리에 모아
무심코 한 말씀 일렀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많이 무서운 것”
흰 종이 가슴 위에 종이 가슴 속에
마음껏 써 보라 일렀습니다
그 중 일곱 살 난 나이어린 소녀
달래라 이름하는 나이어린 소녀
흰 종이 가슴 위에 깨꽃 같은 글로
“새벽 하늘 바라보며 우는 어머니
치마폭에 젖은 눈물 씻어 내리며
쌀독 곁에 서성대는 우리 어머니
굽은 등 등을 접어 쌀독에 묻고
텅빈 쌀독 긁어대는 빈박 그 소리
세상에서 제일 많이 무서운 소리“
(이하 생략)
▷충남 공주 출생. 연세대학교 대학원 졸업. 1973년『현대문학』추천을 통해 등단. 한국시인협회 회원, 대한민국문학상 수상(81) 시집「삼명집」(1976)「무문관」등이 있다.
가난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화자는 일곱 살 난 어린 소녀를 앞세워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집이 가난하면 형제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가난은 빈 부대가 똑바로 서기 어렵듯이 정직한 삶에도 큰 영향을 준다.
8연 40행으로 이어진 `가랑잎 학교’는 원주 치악산 남쪽 화전민 마을의 어린이를 위해 실존했던 학교이기도 하다. `텅빈 쌀독 긁어대는 빈박 그 소리’를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삶과 죽음을 넘나들던 보릿고개와 함께.
이일기 (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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