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행복과 조건
<팔공시론> 행복과 조건
  • 승인 2009.05.1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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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열 (성형외과 원장, 의학박사)

며칠 전 신문에 하버드남학생 268명을 72년간 인생추적을 한 종적연구의 발표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1937년 하버드의대가 당시 2학년학생 가운데 똑똑하고 야심차고 적응력 뛰어난 학생들을 뽑아 잘사는 삶의 인생사례연구를 위해 추적해 왔다.

처음 이 연구를 시작한 동기는 “잘 사는 삶 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을까’하는 의문에서 출발하였다고 한다. 지난 42년간 이 연구를 진행해온 베일런트교수도 이미 75세가 되었다. 연구 대상자 절반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남은이 들도 80,90대에 이르렀다고 한다. 최고 엘리트답게 출발은 좋아 상원의원도 4명이나 되고, 케네디 대통령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10년이 지나 20명이 심각한 정신질환을 나타내고, 50세 무렵에는 약 3분의 1정도가 한때 정신질환을 앓았다.

하버드엘리트라는 껍데기아래에 고통 받는 심장이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연구의 결론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었다고 말했다. 47세까지 형성된 인간관계가 이후의 생애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변수였으며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가장 안정적인 성공을 이루었다고 한다.

행복하게 늙어가는 데 필요한 요소는 7가지로 추려지는데 첫째가 고통에 적응하는 성숙한 자세를 꼽았다. 갈등과 과오를 부정하지 말고 승화와 유머로 방어하라고 했다. 나머지 6가지는 안정적 결혼, 교육, 금연, 금주, 운동, 적당한 체중을 들었다.

50세에 이 행복요소 5-6개를 갖춘 106명 가운데 절반은 80세에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었으며, 불행하고 아픈 이는 7.5%에 그쳤다. 50세에 3개 이하를 가진 사람은 80세에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성공적인 노후로 이끄는 열쇠는 지성이나 사회적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적성 즉 인간관계이며 특히 65세에 잘살고 있는 사람의 93%는 이전에 형제 자매와 원만하게 지낸 사람이라고 하였다. 일본 속담에도 “너무 영리한 사람에게는 친구가 없다’,

또 “영리한 아이 요절 한다”고 뛰어난 수재들에 관해 긍정적인 표현이 적다. 소설가로 유명한 미시마 유키오나, 아꾸다가와 류노우스끼, 그리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다 야스나리 등은 다 동경대학을 나온 수재로써 72세에 자살한 가와바다를 제외하고 앞의 두 사람은 젊은 나이에 모두 자살로써 생을 다했다.

필자의 K고등학교동기생 가운데 40년 전 서울법대에 들어간 수재들 가운데 수명은 재학 중 또는 그 후 크게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우울증이나 심신쇠약에 의해 생을 일찍 마친 예를 보았다.

조선중기의 선조와 광해군 시대에 홍길동 소설을 썼던 허균은 자타가 인정하는 천재였다. 임진왜란 전후 명나라 사신을 영접할 때 뛰어난 명문장 가였으며, 어떤 책이든지 한번 보면 즉시 다 외울 만큼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어, 명나라 사신들을 감탄케 하였다고 한다.

과거에 장원급제 후 황해도 도사로 부임하면서 기생들과 놀아난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파직되기도 했지만 뛰어난 재능과 명문 가문에 의해 형조판서까지 승진했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고 사람들과 융화되는 스타일이 되지 못해 결국 반역죄로 죽음을 당해 시대를 너무 앞서간 진보적 사상가로서 그의 세계관을 펴보지도 못하고 50세에 생을 마쳤다.

그는 당파싸움에 죽음을 당한 사람들 가운데 드물게 조선왕조 끝까지 복권이 되지 못한 인재다. 뛰어난 수재들은 정신적으로 강인하지 못한 것이 약점인 경우가 많다. 치열한 생존경쟁 사회에서 강하게 살수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위에서 인재를 위한 보호와 배려가 필요하다.

그래서 일찍이 인생의 비극은 소년등과, 청년성공, 중년상처, 노년무전이라는 말이 있다. 그 가운데 절반이 젊어서 성공한 것 때문에 자만하여 겸손함을 잃고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할 수 있음을 경계한 말들이다.

베일런트교수는 대상자들의 행적의 파일을 소개하며 기쁨과 비탄은 섬세하게 짜여져 있다고 “윌리암 브레이크”라는 19세기시인의 시구를 인용하였다. 동양의 수신서인 채근담에도 세상 모든 일은 다 희비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흥진비래(興盡悲來)하고 고진감래(苦盡甘來)한다고도 하며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다.

행복하게 늙어 가는데 필요한 7가지 요소란 우리 동양의 지식인들이 가지는 전형적인 처세방법과 별다름이 없다. 명나라 말기 홍자성이 쓴 `채근담”은 험악한 세상에서 온전히 몸을 보전하고 천기를 누리며 안분지족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세상에 살면서 무슨 일에나 만족하지 못하는 것 이상의 불행은 없다. 모든 비극은 바로 이러한 불행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특히 수재는 자기를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을 탓하기가 쉽다. 불교에서는 현상계의 모든 일은 다 인연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주어진 인연에 만족하라고 말하고, 유교에서는 자신의 현재 주어진 위치에 따라 행동하라고 가르친다.

세상살이의 길이란 넓고도 아득하여 오직 한 가지 생각으로 완전함을 구하려고 하면 마음의 실마리가 어지러워진다. 이럴 때 각자의 처지에 맞추어 편안히 살 방도를 취한다면 어디엘 가나 안심입명을 얻을 수 있다고 이 책은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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