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시 모전동 311번지의 비밀
문경시 모전동 311번지의 비밀
  • 승인 2013.08.04 15: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시종 시인
필자는 1942년 1월14일 경북 문경군 호서남면 모전리 5번지에서 태어나, 지금은 문경시 모전동 23-2번지에 살고 있다. 태어난지 만 71년이 넘었지만 모전동 5번지에서 나서 23번지에 살고 있으니 번지 차이가 같은 동의 18번지 차이밖에 안 난다. 개미가 쳇바퀴를 계속 돈 것과 다를 게 없다. 필자는 덕분에 도시로 이사를 안 가고도 촌놈인 면민에서 도회지 사람인 시민이 되었으니, 운이 좋다면 좋은 셈이다. 필자가 살던 모전2리(중신기)에서 반쟁이(모전천) 섶다리를 건너면 모전1리(음지마)가 있다. 모전1리에는 초·중·고 동기생인 조영식(趙永植)이 살고 있었다.

조영식은 문경고등학교(현 문경공고)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여 육사20기 졸업생이다. 맹호부대 수색중대 정찰소대장으로 베트남에 상륙하자마자 베트콩이 매설한 지뢰를 밟고 장렬하게 산화하여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미래의 대장감으로 동료들의 기대가 컸는데, 1965년 25세에 요절하여 인생무상을 절감케 해준다.

고등학교시절 조영식 학우의 말이 떠오른다. 음지마(모전1리)에는 박열의사가 태어나 자랐고, 이승만정부 때 치안국 초대 경무과장이던 현규병씨 고향도 음지마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학우 조영식도 걸출한 마을 선배들을 마음에 두고 큰 꿈을 가슴에 품으며 학창시절을 보람 있게 보냈다. 필자가 중등학교 역사교사가 되고나서, 음지마에 살았다는 발열의사(1902-1974)의 생가를 알아내기 위해 20년을 수소문 했지만 허사였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박열의사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박열의사와 연령이 비슷한 남자 노인에게 물어봤지만 딴 동네 살다가 이사를 와서 박열의사를 전혀 몰랐고, 같은 음지마 출신이라 해도 학교를 다니지 않고 전혀 교류가 없어서 먹통이었다.연세가 박열의사와 비슷한 여자노인은 딴 동네에서 음지마로 시집을 왔기 때문에 박열의사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필자는 가슴이 답답했다. 박열의사가 태어난 지 그 당시로는 100년도 못 되었는데, 어찌 행적이 이다지도 묘연한지? 박열의사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 사회주의자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던 시대라, 북한에서 방송으로 친북활동을 하던 박열의사는 당시 정부로 봐선 기피인물이기 때문에 화끈한 행적을 더욱 알 수가 없었다.

그 뒤 박열의사의 미스터리는 의외로 쉽게 풀어졌다. 말단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향토사 연구에 정진하는 필자의 제자이자 무명 사학도 황용건씨가 필자의 해묵은 의문을 말끔히 지워주었다. 박열의사의 호적을 역추적하여, 문경시 모전동 311번지가 그의 출생지임을 한 점 의혹도 없이 확실히 밝혀 주었다.

호적을 추적하는 쉬운 방법을 모르고 우둔한 필자는 20년을 헤맸던 것이다. 박열의사는 모전동 311번지에서 출생하여, 함창 남부보통학교(현 함창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다. 함창에는 박열의사의 고모님이 살았고, 모전동 311번지와 5km 상거한 유곡동에는 박열의사 누님이 출가하여 살고 있었다. 박열의사가 살던 모전1리(음지마)는 박열의사가 다니던 보통학교와는 거리가 3km밖에 되지 않는다.

박열의사가 살던 모전동 311번지에는 나중에 열녀가 된 정달분도 같이 자랐다. 정달분의 아버지 정원영은 서당을 세워 제자들을 가르쳤다. 정원영은 서당훈장일 뿐 아니라 항일 독립운동가였다. 서당훈장이 바로 옆집에 살아 박열의사가 서당 학동이 되었음은 쉽사리 짐작이 간다. 서당훈장이자 독립운동가인 정원영의 영향을 어려서부터 받아, 박열의사는 항일독립운동가가 되었다.

2003년 문경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필자는 획기적으로 박열의사를 연구하여 생가지를 밝혀낸 황용건 행토사학자에게 문경중학교 개교 55년만에 최초로 명예졸업장을 주었다. 황용건씨는 문중 2학년 때 가정사정으로 학교를 자퇴했었다. 그는 뒤에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지금도 향토사의 파수꾼으로 대어(大魚)를 끊임없이 낚고 있다. 박열의사 생가터 표지석은 언제쯤 세워 질 지 자못 기대가 된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