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열리는 세계서법(書法)대회
경주에서 열리는 세계서법(書法)대회
  • 승인 2013.08.1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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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객원大記者
우리는 어려서 한석봉을 몸으로 가르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아무리 어두운 곳에서라도 한결같이 반듯하게 떡을 썰 수 있는 어머니의 모습에 감격했다. 반면 한석봉의 붓은 삐뚤빼뚤 지렁이 지나간 자리나 다름없다. 그가 남긴 천자문을 보면 얼마나 많은 수련을 쌓았는지 금세 알 수 있을 만큼 감동을 주는 글씨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에는 천하명필의 이름이 숱하게 전해온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는 추사다. 모함을 받아 제주도에서 유배살이를 하면서도 국보 세한도(歲寒圖)를 남겼다. 200여개의 아호는 모두 낙관으로 전해진다.

현대에 들어서도 전주의 강암(剛菴)과 석전(石田), 안동의 일중(一中)과 여초(如初)는 독특한 자기 서체를 뽐내며 후인들의 눈을 시원하게 만든다. 이런 대가들의 작품에 넋을 빼앗긴 많은 이들이 서예에 뛰어들어 취미 생활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스러운 현상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배우고자 하지만 사실 붓글시를 쓰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다.

서예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기초를 잘 익혀야 나중에 무슨 글자를 쓰더라도 막힘이 없다고 하는데 기초 배우기는 인내를 실험한다.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과 김대중은 대도무문(大道無門)과 경천애인(敬天愛人)을 주로 썼지만 기초가 튼실하다는 칭찬은 별로 듣지 못했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상당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밖에 전두환, 노태우, 최규하도 나름대로 작품을 남기고 있는데 나는 이들의 작품을 도자기로 구워 사무실에 전시해 놨다. 방문객들은 신기한 듯 눈여겨본다. 글씨를 쓸 줄은 모르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문화인을 자처하려는 자만이런가. 그러다보니 서예가들과의 교우도 즐긴다. 영덕 출신 초당(艸堂) 이무호(李武鎬)는 이기택의 평가대로라면 당대 최고의 서예가로 꼽힌다.

그는 호탕한 성품으로 한학에 능하다. 옛 시인들의 시구나 어구를 곧이곧대로 서체화(書體化)하는 고지식한 서예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어떤 주제가 주어지면 즉석에서 한시(漢詩)를 지어 붓글씨로 옮긴다. 3·1절이나 4·19혁명 행사장 같은 곳에서는 사전에 준비한 큰 붓으로 10미터나 20미터 쯤 되는 화폭에 초대형 글씨를 일필휘지한다. 퍼포먼스의 일환이지만 키 보다 큰 붓을 먹물로 채워진 양동이에 푹 찍어 흰 화폭에 휘젓는 그의 흰 두루마기 모습은 가히 신들린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감동을 준다.

그가 8월4일부터 31일까지 열일곱 번째 세계서법대회를 신라의 고도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개최한다. 여기에는 한국, 중국, 싱가포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미국,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베트남, 브라질 등 13개국 서예가들이 참여하여 모두 1천점을 전시한다.

서양인들도 붓글씨를 쓰며 영어 등 외국어로도 작품을 쓰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무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 만족하지 않으며 무슨 작품을 쓰더라도 민족적 자긍심을 잃지 않는다. 그가 중국 광동성과 청도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에는 독립운동가를 추모하여 신익희와 안중근의 시구를 썼다. 그 작품은 중국 측의 요청에 따라 전시장 입구에 영구히 간직되고 있다. 특히 회백솔거 분황벽화(繪伯率去 芬皇壁畵) 묵성김생 일품신서(墨聖金生 逸品神書)-솔거는 그림의 으뜸이니 분황사에 벽화를 그렸고, 신라 김생은 글씨의 성인이라 일품 신서로 전한다-라는 호방한 시로 중국인을 놀라게 했다. 이번 경주서법대회가 끝나면 1천점의 작품을 중국 안휘성 람바시 미술관에서 9월 하순에 전시할 예정이다.

이 작품 속에는 20대에 국회에 진출하여 7선을 기록하며 야당총수를 역임한 이기택(李基澤)의 수작(秀作)도 끼어 있다. 그는 해공(海公) 신익희의 시구 ‘민주위도(民主爲道) 동등낙경(同登樂境) 공화치국(共和治國) 병형태평’을 선택하여 선배 정치인의 국민을 위하는 철학의 일단을 전한다.

이무호는 중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왕희지(王羲之)의 글씨와 우리나라 최고의 문장 퇴계(退溪)를 대비하는 시구로 우리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줬다. 대아문장(大雅文章) 이퇴계(李退溪) 만법서성(萬法書聖) 왕우군(王右軍)이 바로 그것이다. 초당의 창조성과 활달한 기개는 오늘도 불철주야 새로운 내일을 기약하고 있다. 올림픽과 월드컵 등 체육에 열광하고 한류 가수와 드라마로 세계를 놀라게 한 한민족은 이제 세계서법대회의 문화적 도약과 발전으로 가슴을 뛰게 하는 만강의 기쁨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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