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개업의와 현미경
<팔공시론> 개업의와 현미경
  • 승인 2009.06.0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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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열 (성형외과 원장, 의학박사)

17세기 들어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망원경과 현미경이라는 발명품을 통해서였다.

망원경은 독일인 안경기술자 `릭펠스 하이”가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조합하여 만들었고 현미경은 1590년경 네덜란드의 유리기술자인 얀센 부자가 볼록 렌즈 2개를 조합하여 발명하였다. 현미경을 과학적 업적으로 처음 연결시킨 사람은 이탈리아의 말피기로 1660년 모세혈관을 발견하여 하베이의 혈액순환 이론을 증명시켜주는 배경이 되었다.

그 후 영국의 로버트 후크와 네덜란드의 안토니 레벤훅이란 두 학자에 의해 현미경은 과학 연구의 도구로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하였다. 후크는 오늘날의 광학현미경 수준의 매우 정교한 현미경을, 레벤훅은 이보다는 훨씬 단순한 현미경을 만들었는데 성능은 훨씬 나아 동시대의 후크 것보다 해상도가 더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로버트 후크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현미경을 이용한 동물, 식물, 광물 등을 관찰하고 스스로 그림까지 그려 정교한 미술도감을 출판한 것이다. 한편 유리구슬을 통해 물체가 크게 보이는 것은 이미 고대 이집트시대에도 알려져 있었으나 이 원리를 현미경으로 진화시킨 것은 레벤훅이었다.

상인이었지만 취미가 현미경 만들기였던 그는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생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사람이었다. 현미경은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미생물학 등 특히 의학의 많은 영역에서 그 발전에 지대한 공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발명품이다.

성형외과 의사들은 수련 과정이나 큰 병원에 근무할 경우 현미경 하에서 미세수술을 많이 하게 된다. 절단된 손가락의 접합 수술이나 피부와 근육같이 두꺼운 조직을 함께 이동시켜 이식하는 피판 수술, 그리고 장기 이식 때의 혈관 연결수술 등이 현미경을 이용한 미세수술의 대표적인 예인데 수술시간도 많이 걸리고 응급상황도 많아 소위 말하는 3D 분야이다.

그러나 개업을 하면 이런 수술보다는 미용수술을 많이 하게 된다. 필자가 개원을 하면서 다시 현미경을 사용하게 된 것은 7,8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언젠가 일본 북해도 삿포로에 있는 신토미 선생의 성형외과 병원을 견학하고 난 후부터이다.

한 학회에서 신토미 선생은 쌍꺼풀 수술도 모두 현미경하에서 한다고 하여 필자는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었고 다른 일본인 의사들도 그 선생이 노안이라 현미경을 이용할 따름이라고 폄하하는 듯한 말들을 하였지만 남다른 경우라서 한번은 보고 싶었다.

평범한 미용수술도 집도하는 의사가 현미경 앞에 앉게 되면 수술하는 마음의 자세나 생각이 그냥 수술하는 것과는 조금 달라지는 법이다. 우선 수술시간이 더 걸리고 또한 매일 보는 조직이지만 그냥 맨 눈으로 볼 때와 현미경으로 볼 때는 그 해부학적 구조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시각적으로 더 선명해지는 것은 물론 미세한 것들이 확대되어 보이므로 보이는 것만큼 안다는 말처럼 수술도 한층 정밀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야가 좁아져 수시로 수술부위를 옮겨 주어야 한다. 숲도 보고 동시에 나무도 봐야 한다고 이 두 가지가 잘 조화를 이루어야한다. 수술은 특히 얼굴에서는 양쪽이 대칭적으로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미경 이외에 확대 기능을 가진 것으로는 `루프(루페)’라는 것이 있다. 대개 2-4배의 확대 배율을 가지며 안경 비슷하게 생겼지만 현미경만큼의 기능은 하지 못한다. 그러나 현미경과는 달리 전체와 부분을 동시에 볼 수 있어 좋다. 단지 4배 이상으로 많이 확대되는 루프는 약간만 초점이 틀려도 물체가 잘 보이지 않는 결점은 있다.

필자는 주로 눈 수술이나 흉터 수술 시 또는 모발 이식수술 시에 현미경을 사용한다. 정상적인 모발의 간격은 보통 1mm 정도이므로 모발 이식 시 먼저 떼어낸 두피조각에서 모발을 1개씩 분리해야 한다. 시행 초반 맨 눈으로는 어려웠던 모발분리가 현미경을 사용하면서 쉽게 해결되었다.

흉터 수술에서는 진피봉합을 할 때 양쪽 피부 두께가 똑같아야 봉합 후 피부가 고르고 매끈하게 된다. 그 뿐 아니라 피부봉합을 하지 않은 단계에서도 이미 진피봉합만으로 양쪽 피부가 완전히 붙어 있는 상태가 되므로 흉터의 봉합 부위가 나중에 벌어지는 일이 발생하여도 최소한이 될 수 있다.

옛날 유명한 서예가였던 한석봉의 어머니가 어두운 곳에서 떡 썰기와 아들의 글쓰기를 비교하였더니 어머니의 떡은 크기가 일정하였으나 아들의 글자는 들쭉날쭉하여 고르지 못함을 꾸중하였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능숙한 기술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떡이든 글씨이든 혹은 수술이든 상관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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