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생활 1년 6개월만에 전직…변호사가 천직
검사생활 1년 6개월만에 전직…변호사가 천직
  • 승인 2013.10.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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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구성원에게 도움 주는게 제 일이죠

<법조인> 김수호 변호사
/news/photo/first/201310/img_112687_1.jpg"/news/photo/first/201310/img_112687_1.jpg"
/news/photo/first/201310/img_112687_1.jpg"가장 처음 변호업무를 맡은 것이 경찰의 음주운전 사건이었죠./news/photo/first/201310/img_112687_1.jpg"라고 말하며 지난 15년 동안 기억나는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김수호변호사.박현수기자 love4evermn@idaegu.co.kr
왠지 낯설지 않다. 변호사라면 딱딱한 검사와 법정을 떠올리게 되는 선입견이 단번에 깨졌다. 대구 수성구 법원 옆 율촌빌딩에 위치한 법무법인 우리하나로 소속인 김수호 변호사(48)는 검찰 출신 변호사로서의 무거움보다는 가까운 이웃 사촌으로서의 친근함이 묻어있다 . 대구의 변호사 계에서 그는 푸근한 첫인상에, 톤높은 명확한 발언으로 상대방의 신뢰를 얻기에 충분한 변호사로 통한다.

소송 당사자나 관계되는 사람의 의뢰 또는 법원의 선임에 의해 피고인이나 원고를 변론하는 변호사 업무가 천직임을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성격도 소탈하다.

대구 토박이로 변호사 직이 좋아 검사 1년 6개월만에 단번에 변호사로 말을 갈아탄 김수호 변호사의 대구사랑과 그의 15년 변호사 업무를 따라가 봤다.

◇검사보다 변호사가 천직= “변호사요? 사법시험 되면 하죠. 사법연수원 수료하면 다 됩니다” 변호사가 왜 됐느냐는 질문에 김수호 변호사는 이같이 재치있는 답변으로 첫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첫 마디부터 그가 상대방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소탈한 성격임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김 변호사는 육군 학사장교 출신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전공과 다르게 군에서 제대 하자마자 몇 년 간 다시 공부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케이스다.

사법연수원 27기생인 그는 검찰 근무 1년 6개월만에 변호사로 말을 갈아탔다. 고시 당시부터 그는 변호사가 좋았고 검찰 생활보다는 변호사 업무가 신바람 나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변호사 업무 초임시절 검사를 왜 일찍 그만뒀냐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단다. 검찰에서 잘못한게 있지 않느냐는 의문의 소리지만 그는 “능력없어 쫓겨났다”고 답변을 하지만 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빨리 택했을 뿐이다.

김 변호사의 동기는 현재 지방법원의 부장검사들이 많다. 현 검찰총장이 14기니까 동기들이 고위직에 가기까지는 아직 첩첩산중이다.

그런 동기들의 목표와 달리 김 변호사는 시민들이 모르는 것을 알게 해주는 변호업무가 좋단다.

“가장 처음 변호업무를 맡은 것이 경찰의 음주운전 사건이었죠. 지금까지 15년 동안 기억나는 사건은 첫 사건 외에도 많지 않지만 기억나는 사건들은 대개 형사사건의 경우 그 사람이 정말 죄를 지었을까 안 지었을까 긴가민가하는 사건, 사기 사건들이죠.”

그 과정 속에 김 변호사는 시민들이 간과하고 넘어가는 것이 많다고 얘기 했다.

“집행유예를 받고 형을 살지 않으면 죄가 아니라는 생각, 무죄 판결을 받으면 무조건 죄가 없다는 생각 , 간통죄에 대한 시민들의 무죄의식 등 등 시민들이 잘 모르는게 많습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요즘 간통죄의 경우 예전에 구속처벌이지만 최근엔 구속되는 일이 없어서 그런지 죄의식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변호사 자유롭지만 책임감 큰 직업= 변호사의 상담료와 높은 수임료에 대해 물어봤다.

김 변호사는 “대구는 대부분 상담료는 무료였죠. 서울의 대형로펌의 경우 시간당 30만원에서 50만원까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상담료는 서울같이는 받지 못해도 받아야 한다는 게 지론입니다”고 확고한 답을 내렸다. 의사한테 진료받지 않고 그냥 묻는 경우와 같다고 보면된다는 것.

상담료가 무료일때는 의뢰인이 이곳저곳 전전하며 법률자문을 구하는 일도 많았고 이들이 대충 묻는 의뢰에 변호사들도 대충 답할 수 밖에 없어 의뢰인이나 변호사나 모두다 손해라는 생각이다. 상담료를 정당하게 주고 받으면 책임이 그만큼 따른다는 얘기다.

“수임료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15년 변호업무를 보내면서 처음보다 수임료가 내렸으면 내렸지 올라가진 않았어요” 서울 대형로펌과 같은 시간당 페이를 받는 시스템이 없어 보통 300만원 안팎이란다.

변호사의 매력과 관련, 그는 자유로운 직업이라는 점을 들었다.

재판 내지 회의 참석 외에는 대부분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업무 순위를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르기 마련이므로 한편으로는 과중한 업무와 책임감에 부담을 느낄 때도 많이 있다고 얘기했다.

성취감과 보람 역시 거침없이 답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이거나 과중한 업무를 짧은 시간 내에 꼼꼼하게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그런 일 일수록 끝마치고 났을 때 성취감 역시 크다. 또한 변호사란 기본적으로 의뢰인을 위해 일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업무수행에 대해 의뢰인들이 만족해 했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전문 분야에 대한 질문에 김 변호사는 아직 대구는 전문분야의 변호사는 드문 실정이라고 말했다.

“건축 회생사건 정도는 특별한 분들이 있고 그분들도 일반사건을 같이 하고 있죠. 큰 사건들이 없기 때문이죠. 제일 중요한 거는 변호사라고 해서 전분문야를 다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업무를 하면서 공부를 하고 당사자들 얘기를 잘 들어보고 꼼꼼히 보고 자료를 잘 봐야 하는게 저희들의 큰 일이죠”

◇대구 경제 회생하려면 리더 바뀌어야= 대구 경제와 관련, 법무법인으로서의 기업 법률자문도 사실상 열악한 실정임을 아쉬워했다.

“현재 저희들 하나로 법무법인의 경우 법률자문은 큰 기업체는 없지만 50여개의 대구 성서 구미 등의 중소기업들에 대한 자문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변협이나 지방변협도 1회사 1변호사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분명 법률자문은 기업에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몇십억원 몇백억원 정도 매출이 되고 인원이 100여명 넘어가면 필요합니다“

김 변호사는 안타까운 게 기업들의 경우 사전에 검토하면 충분히 조그만 비용으로 막을 수 있는데도 불구, 터지고서야 고비용을 물고 해결하려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건은 항상 과거 사실을 가지고 잣대를 들이대는 만큼 유비무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대구 토박이로서 김 변호사는 대구 경제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대부분 항구중심, 공항 중심의 경제가 되니까 대구는 내륙의 섬처럼 됐습니다. 대구가 예전만 생각하고 노력을 안했던 겁니다. 타성에 젖어 있었던 거죠.이제는 2∼3% 정도의 경제성장률로 먹고 살아야 되는데 대구가 바뀌지 않는 한 먹고살긴 힘듭니다”

대구가 싫다고 내가 자란 우리집을 버릴 수 없다는 김 변호사는 “다가올 미래는 과거 20년과 30년과 다른 만큼, 대구의 분위기는 리더가 관료냐 정치인이냐 사회운동가냐에 따라 많이 달라질 것”이라며 대구의 리더가 변해야 함을 유독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7월부터 올 7월까지 미국 연수시절을 얘기하며 겪었던 에피소드를 예로 들며 한국의 외국 근로자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미래 꿈도 얘기 했다.

“샌프란시스코 연수 1년은 변호사이기 이전에, 집에 고장난 것 수리 하나도 어려웠고 고장난 차를 고치기도 쉽지 않은 시스템을 겪어 봤습니다. 한국의 외국인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이들의 힘든 일을 찾는 배려도 필요하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죄있는 사람은 처벌받아야 하고 열심히 일한 사람은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김 변호사. 그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규율이 잘 작동될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들에게 도움을 주는게 자신의 일임을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이창재기자 kingcj123@idaegu.co.kr

김수호 변호사가 말하는 법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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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로 활동하는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의 하나가 ‘왜 법은 가진 것 없고 약한 사람을 보호해 주지 않느냐’라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과 같이 정책적으로 만든 일부 법률을 제외하고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위한 법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법은 기존 체제 및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법(法)의 고어는 삼수(水)변에 천거할 천(薦) 자 아래 갈 거(去) 자로 이뤄진 법 법 자인데, 이 글자는 옛날 중국 묘족의 재판 절차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죄를 지었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강가(水)에 세워 놓고 해태(薦)가 가서(去) 뿔로 들이받으면 유죄로 인정하던 재판절차에서 법의 고어가 유래되었다는 것이다(참고로 해태는 선악과 시비를 판단하는 상상의 신성한 동물인데, 이로 인해 동양권에서는 해태가 법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법의 고어에서 알 수 있듯이,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재판은 사람의 뜻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 따른다는 정신이 있었다.

전 세계 모든 문명국에서는 그러하듯이, 우리나라에서도 판사가 재판을 하고 판결을 선고한다. 그런데 판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죄를 지었는지, 민사재판에서 원고와 피고 중 누구 말이 맞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형사재판은 물론 민사재판에서 증거가 필요하다. 특히 민사재판에서는 당사자가 재판을 청구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사실을 주장하고 증거를 제출해야 하며, 이러한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면 자기의 권리를 찾지 못하게 된다(어려운 법률용어로 이야기하면, 이를 변론주의 및 처분권주의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사유재산권을 존중하고, 개인이 자기의 법률관계를 그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여 형성하는 것을 인정하듯이, 민사재판에서도 재판의 시작과 자신의 권리 주장 및 입증 등을 당사자에게 맡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사법와 민사소송의 원칙 때문에, 실제 재판에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차용증이나 계약서 등 문서를 제출하지 못한 채 ‘우리 동네 사람들이 다 안다’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재판 결과를 얻기 어렵다. 임대차 계약을 한 번 잘못하게 되면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보증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중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분쟁에 대비해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아프면 병원이나 의사를 찾고, 당장 질병이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건강에 더 신경 쓰면서 의료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법적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진 것이 적고 힘이 없을수록 자신의 재산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법률전문가의 문턱은 그리 높지 않다. 적은 시간과 비용으로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설사 그 시간과 비용이 부담될 수도 있지만, 나중에 닥칠지도 모르는 법적 분쟁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국가는 정말 경제적 여력이 없거나 부족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더 확충해야 한다.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어야 하듯이, 경제적 여력이 없어서 법적 절차조차 진행해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법은 자신의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다만 법을 잘 알고 대비하는 자만을 보호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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