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역경을 이겨내게 하는 교육
<대구논단> 역경을 이겨내게 하는 교육
  • 승인 2009.06.0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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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학남초등학교장 · 교육학박사)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옷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데다가 늘 지각을 하여 따돌림을 받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따돌림을 받아도 크게 개의하지 않았다. 늘 웃는 표정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그것이 더욱 못마땅하였다. 따돌림을 받았으면 그에 상응하는 고통이 따라야 흥이 나는데 아무리 따돌려도 늘 허허하였기 때문이었다. 넉살인지 여유인지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반의 한 아이가 당번을 하기 위해 평소보다 훨씬 일찍 집을 나서게 되었다. 마침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오고 있는 환경미화원의 손수레를 만나게 되었다.

앞에서 끄는 사람은 아주머니였고, 뒤에서 미는 아이는 자기 또래였는데 수레를 열심히 미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목소리가 낯이 익었다. “어머니, 힘내세요. 다 와 가요.” “오냐, 너나 빨리 학교에 가야할 텐데…….”

바로 냄새를 많이 풍기는 그 아이였다. 아버지는 환경미화원이었는데 병이 나자 대신 온 식구가 매달려 담당 구역 청소를 아침에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응, 우리 어머니셔. 아버지가 편찮으시는 바람에…….”

그 아이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너 먼저 가. 나는 아직 좀 더 있어야 해. 이 짐을 갖다 버려야 하거든.” 얼마 뒤, 학급에서 이 아이를 따돌림 시키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스스로 자신의 역경을 극복한 것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그 때는 지금과 달리 도시락을 싸올 때였다. 한 아이는 밥을 먹을 때 마다 입을 가리고 무엇인가를 빼어내었다. 그것은 길고 흰 머리카락이었다. 반 아이들이 모두 얼굴을 찡그렸다. 이내 이 아이는 따돌림을 받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아이는 지각을 하였고 교문에서 선도반 어린이들로부터 곤욕을 당했다. 그 아이는 울먹였지만 상급생 선도반 학생은 규정이라며 이름을 적어 담임에게 통보하였다.

그런데 이 아이는 며칠 뒤에 결석을 하였다. 담임교사가 학급 아이들에게 이 학생의 집을 찾아가보게 하였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다 쓰러져가는 움막이었는데 겨우 다리만 뻗을 정도의 집이었다.

그 아이는 집에 없었다. 할머니 한 분만이 누워있었다. “이 녀석이 내 대신 종이 상자 주우러 갔나 봐. 내가 허리를 다쳐 꼼짝 못하고 누워있으니 뭐 먹을 걸구할 수 있어야 말이지. 아침마다 신문 배달을 하고 학교 가느라 몹시 바빴는데 오늘은 기어이 학교를 빼먹었군.”

할머니는 눈이 어두웠다. 큰 물체는 어림짐작할 수 있었지만 작은 것은 자세하게 볼 수 없었다. 이러한 할머니가 밥을 지으니 도시락에서 흰 머리카락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는 개의치 않고 밥을 먹었던 것이다.

사정을 알고 난 학급 아이들은 도리어 그 아이를 경의에 찬 눈으로 대하게 되었다. 이 아이 역시 자신의 역경을 스스로 이겨내었다. 우리 둘레에는 이처럼 우리가 생각지도 못할 불행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웃이 매우 많다. 이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역경을 이겨내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의 존재 이유라고 본다면 인성의 기초가 놓이는 초등 교육에서 특히 이웃 사랑 교육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웃이 고통스러우면 그 고통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돌아오게 된다. 이웃 사랑은 나아가 인류 보편적 가치인 박애 정신(a benevolent spirit)의 기초가 된다.

또한 교육은 조건 없는 허용적 분위기에서 더욱 큰 성과를 거두게 된다. 무슨 걱정이나 털어놓을 수 있는 사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영원히 이어질 수 있는 인간관계 형성이 교육과 더불어 성공적인 삶을 위한 필수적인 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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