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위기 순간 시민 생명 구해 줄 ‘안전 지킴이’
생활 속 위기 순간 시민 생명 구해 줄 ‘안전 지킴이’
  • 남승현
  • 승인 2013.11.0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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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 대구보건대 최영상 소방안전관리과 교수

대기업 근무 중 가정형편으로 대구로 직장 옮겨

현장서 안전관리업무 맡으며 무재해 공로 인정

지난 10년간 기업체 등 다니며 370회 이상 특강

대구·경북지역 소방공무원 배출 19년 연속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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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과를 전국 최고 학과로 만든 최영상 교수.
최영상 대구보건대학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지역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이다.

대구보건대학 본관 1층에 자리 잡고 있는 그의 집무실(입학처장실) 책상 좌측 벽에는 화이트보드가 걸려있고 거기에는 월간 스케쥴이 빼곡히 적혀있다.

대학에서 주요 보직인 입학처장과 대학 학보사 주간 교수를 맡고 있기에 수많은 관련 회의를 주제해야 하고 학생 수업과 정기적인 라디오 방송 출연, 기업체 특강 일정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소방안전 지킴이’라는 닉네임

최 교수는 지난 6월 21일부터 매주 금요일 4회에 걸쳐 대구도시철도공사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도시철도시설의 소방안전’이라는 주제로 릴레이 특강을 했다. 6월에서 10월까지 LG전자, 경북대학교병원, 경북소방학교 등 30회 이상 특강을 소화했다. 최 교수가 최근 10년 동안 특강한 회 수는 370회가 넘는다. 최 교수의 특강을 자주 들은 바 있는 구미지역 소방안전관리자들은 그에게 ‘소방안전 지킴이’란 닉네임을 선물했다.

최 교수는 왜 기업체나 관공서를 대상으로 한 특강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최 교수가 특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1993년 3월 대구보건대학교에 부임하면서 부터다. 최 교수는 대기업 현장에서 사고나 화재 원인의 대부분이 시설의 노후나 부주의에 의한 경우라는 사실을 경험했다. 이 때문에 전공분야 전문가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소방과 안전을 주제로 특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 교수가 특강을 하다보면 화재 발생 원리와 소화원리를 처음 듣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심지어 소화기 사용법은 물론이고 어떤 소화기를 어떤 화재에 사용해야하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많아 아주 기본적인 내용부터 차근차근 설명해가야 했다.

그는 “화재발생 원인 중에서 단일원인으로는 전기적 원인이 가장 많지만 그 외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조심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부주의에 의한 화재가 대부분이다”며 “예를 들면 담뱃불에 의한 화재가 부주의 원인 중에서 연간 7천건 정도로 가장 많은데 담뱃불의 온도가 높아서 완전하게 끄고 버리지 않으면 화재로 이어지게 된다”고 했다.

실제 가정의 거실에 담배꽁초를 떨어뜨리고 화재를 발생시켜 실험한 자료를 보면 금방 소파에 불이 붙고 시간이 지나면서 급속도록 빨라져 2분이 걸리지 않아 연기는 바닥까지 내려오게 되어 피난이 불가능해짐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최 교수가 이렇게 실제 화재를 실험한 동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하면 교육 대상자들은 깜짝 놀라곤 한다. 그들에게 질문을 해보면 담뱃불이 소파에 떨어진 경우 30분 또는 한시간정도 걸려야 화재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답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위험성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교육대상자들에게 피부에 와 닫는 내용으로 교안을 만들어 소방안전교육을 하다보니 인기강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이후부터 최 교수에게 특강 의뢰가 증가했다. 소방안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30회 이상 특강을 하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 포스코, LG전자, LG이노텍, 코오롱, 대구텍, 아사이글라스 등 대규모사업장과 한국가스공사, 종합병원, 초중고등학교, 유치원, 대한산업안전협회 관리감독자교육을 비롯한 공공기관 등 특강한 기관만 100곳이 넘는다. 뿐만 아니다. 경북소방학교에서 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연수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유해물질 안전관리를 주제로 대구, 구미, 경주, 포항 지역을 찾아다니며 해당 관리자들에게 사고예방과 인명피해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2007년부터는 매주 지역의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청취자 및 시민들에게 안전사고와 예방대책을 전하면서 안전에 대한 시민의식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250회 이상 방송에 출연했다.

최 교수는 “각 기관의 안전부서장과의 교류를 통해서 우리 학생들이 취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은 특강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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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보건대학 최영상 교수와 소방안전관리과 학생들이 119현장체험학습을 했다.
◇대기업 엔지니어에서 대학 교수로 옮긴 이유

대학 교수이자 특강 강사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최 교수의 첫 직장은 대기업이었다.

1985년에 현대중공업 플랜트 사업부에서 첫 직장을 시작한 그는 해외 프로젝트를 맡아 전공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직장생활은 평범하지 못했다.

대기업 생활 2년 만에 아버지가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치게 되고, 수술 후 오랜 기간 누워 있다가 퇴원은 했지만 건강이 회복되지 않아 누군가 돌봐드려야 했다.

오래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90세가 돼가는 할머니와 어린 동생들만 있었기에 아버지 병수발은 최 교수의 몫이었다. 집안 형편상 가까운 곳으로 이직을 결심했고, 대구로 옮겨와 중소기업에라도 취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의 이직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가져다줬다. 당장 급여가 40%나 줄었고 토요일과 일요일도 현장에서 생산이 이뤄지다보니 공무팀 직원으로서는 계속 출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장치산업의 특성상 사고 위험이 높아 종종 현장에서의 사망사고 등 심각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서 산업안전기사 자격을 갖춘 안전관리자를 선임하도록 노동부의 행정명령이 내려졌고, 회사에서는 최 교수에게 그 일을 겸직해주길 요청했다.

흔쾌히 회사 요청을 수락한 최 교수는 현장에서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안전관리업무를 맡은 최 교수는 제대로 된 교육과 현장의 안전시설들을 정비하기 시작해 2년 만에 무재해 1배 목표를 달성했으며 계속 무재해 행진을 이어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공장장은 산업포장을 받고 다음해에 안전관리자인 최 교수는 국무총리 표창을 받게 됐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던 사업장이 무재해가 되면서 그 비법을 전해달라며 각종 산업체 행사에서 안전사고예방 사례발표를 하게 되면서 안전관리자로서의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이때 대구보건대학의 산업안전과에서 현장실습과 강의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대학과의 첫 인연이었다. 몇 년의 노력을 거치고 대구보건대학에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소방안전관리과가 신설되면서 전임으로 임용되는 기회를 갖게 됐다.

그는 “지금 돌아보면 그 당시 1년에 평균 350일은 근무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나마 젊은 나이였기에 건강이 받쳐줘서 잘 헤쳐 나올 수 있었다”며 “힘들었지만 몸으로 부딪치며 실무를 많이 익혔던 것이 학교로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사실 최 교수의 어릴 때부터의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고향마을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자취를 하시던 선생님들과 저녁시간에 시골길을 걷기도 하고, 모내기나 추수 때는 선생님들을 집으로 모셔다 점심을 대접하기도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선생님에 대한 모습을 닮아가려 했었다. 더 큰 이유는 아버지의 소원이 아들이 선생님이 되는 거였기에 더 힘껏 노력했던 것이 큰 힘이 됐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최 교수는 “돌이켜보면 마음속에 간직했던 교직자로서의 꿈을 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했기에 마침내 그 꿈을 이루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1993년 3월에 대학으로 옮기고 첫 봉급을 받았던 때를 잊지 못한다고 회고했다. 최 교수는 노란봉투에 담긴 월급봉투를 받아서 집으로 갔다. 혼자계신 아버지께 그 기쁨을 들려 드리기위해서 막걸리도 한 병 준비했다. 불편한 몸을 지탱하며 홀아비로 살면서도 자식의 성공만을 바라던 아버지인지라 그 고마움에 감사라도 드리고자 큰 절을 올리고 노란 월급봉투를 드렸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그렇게도 원하시던 대학 교수가 돼 오늘 첫 봉급 받았습니다. 아버지 덕분입니다. 드시고 싶은 것 있으면 사 드시고 필요한데 쓰시지요”

최 교수의 아버지는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키고 나서는 그 봉투를 받아 들고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그는 “이제 나는 아무것도 더 바랄게 없구나. 어렵게 살면서도 꿈을 버리지 않고 오늘 이렇게 좋은 소식을 전해 주니까 정말 기쁘구나” 하시면서 한참을 우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시골 집에서 장례를 치를 때 최 교수의 아버지는 맏이인 그를 불러 단 둘이서 어머니의 시신을 수습했다. 장례를 다 마칠 때까지 눈물 한번 안 보이던 분이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자식이 가져다 준 노란 월급봉투를 보면서 그렇게 우실 때 최 교수는 “아 그래도 내가 참 잘 살아왔고 아버지께 보람을 드렸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가 가장 기뻤다”고 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오래 가지 않아 두 번째 봉투를 드릴 수 없게 됐다. 아버지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어머니 곁으로 가고 말았다. 아버지는 참으로 억척스레 사셨고, 오직 자식들과 가정을 위해 자신을 다 바치셨던 것 같다고 최 교수는 말했다.

◇전국 최고의 소방공무원 배출 산파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예비고사 하루 전날 최 교수의 아버지는 “나락 베러 함께 가자”고 하셨다. 그 당시 통일벼라는 품종이 개발되었는데 그 벼의 특징은 추수기를 넘기면 낱알이 모두 떨어지는 것이었다. 한 해 동안 땀 흘려 지은 농사가 제때 벼를 베지 못해 논바닥에 노랗게 벼 알맹이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어떤 농부가 마음이 편하겠는가. 그러다 보니 예비고사를 치러가는 아들을 보고 벼를 베자고 하신 것이다. 최 교수는 요즘 수능일도 지나고 들녘이 황금물결로 바뀐 추수철이 되면 뙤약볕에 까맣게 그을린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가슴이 찡해진다고 했다.

대학에 부임한 최 교수는 산업체에서 익혔던 실무지식을 소방안전관리과 학생들에게 전달하는데 힘을 쏟았다. 소방안전관리과도 덩달아 인기가 높아지고 있었다. 선진국이 될수록 국민들의 생활안전보장과 화재예방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필요에 따라서다. 1995년부터 소방관련학과 졸업자들만 응시할 수 있는 소방공무원 특채 제도가 생기면서 더욱 인기를 끌게 됐다. 소방공무원들이 화재진압뿐만 아니라 모든 건축물의 화재예방을 위한 소방시설의 점검 업무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관련 전공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특별채용 모집 인원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대구보건대학교는 오히려 더욱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9년 동안 합격자 수에서는 전국 1위 4번, 전국 2위 3번, 전국 3위 2번을 기록했고 소방경 3명, 소방위 8명 등 소방 간부 11명도 배출했다.

최 교수는 학과 교수들과 함께 다양한 학과 발전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1995년부터 소방공무원을 준비하는 학생을 위해서 ‘교수들이 개인지도’를 실시했으며 2001년부터는 ‘동문 소방공무원 초청 특강 및 간담회’를 시작했다. 2005년부터는 모든 재학생들이 일선소방서를 방문해서 소화실습, 소화설비 작동, 농염체험 등 소화훈련과 소방대원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교육을 배우는 ‘119소방 현장체험 학습’을 실시했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는 1995년부터 2013년까지 대구·경북지역에서는 단 한번도 1위 자리를 내 주지 않고 19년 연속 소방공무원 배출 1위라는 진기록으로 돌아왔다. 2013년 소방공무원 특채시험에서도 13명이 최종합격했다. 지방 대학 중에서 최고 성적이었다.

이 학과가 그동안 특채시험을 통해 배출한 소방공무원은 모두 191명. 소방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이 학과에 입학과 졸업을 한 동문과 공채합격자 등 25명을 포함하면 이 학과의 소방공무원 동문은 216명이나 된다. 이 때문에 대구, 경북지역에 위치한 대부분 소방서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소방서에서 이 학과의 동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최 교수는 “소방공무원을 많이 배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학과 실습실과 교수진도 우수하지만 2007년부터 선배 소방공무원이 동문 후배들의 멘토가 돼 수험정보를 제공하고 진로를 도와주는 119드림 프로젝트를 실시한 것이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며 “산업이 발전하고 문화수준이 향상될수록 우리 사회는 소방안전관리과를 졸업한 전문가들을 더욱 많이 필요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승현기자 namsh2c@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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