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 닮은 환한 미소로 사찰을 지키다
보살 닮은 환한 미소로 사찰을 지키다
  • 황인옥
  • 승인 2013.11.29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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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산책] 최설아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총무팀장

꽃다운 20살에 사찰 종무일 시작

11년간 은사인 우학 스님 보필

30만 신도 도와 일심으로 살림 총괄

사찰 엄청난 성장에 큰 보람 느껴

우학 스님 빈자리 든든하게 메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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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하는 최설아 수향보살의 모습. 박현수기자 love4evermn@idaegu.co.kr
매월 하루, 겹겹이 봉쇄된 교도소 철장문이 그녀에게 허락된다. 그 육중한 교도소의 철장문이 그날 만큼은 부드럽게 열리는 것은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에서 매달 진행하는 교도소 법회의 자원봉사자로 사찰 스님들과 함께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경험을 통해 사찰에서 일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비로소 깨달았다”고 말하는 그녀는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의 살림을 총괄하고 있는 사찰의 똑순이 최설아(35) 총무팀장 보살이다.

그녀의 속명은 최설아. 법명은 수향이다. 설아는 ‘눈을 닮은 아이’라는 뜻으로 어느 비구니 스님이 지어준 이름이고, 수향은 “어디를 가든 너의 향을 품어라”라는 뜻으로 그녀의 종교적 은사인 우학 스님이 지어준 법명이다.

법명과 속명 모두 스님으로부터 받은 그녀는 사실 불심이 강한 집안의 무남독녀 출신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수향을 낳기 전부터 구미의 작은 사찰에 20여 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부처님께 꽃 공양을 할만큼 정성으로 부처님을 섬겨왔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수향은 자신이 절에서 연꽃처럼 환한 미소로 살고 있는 것을 타고난 운명이라고 했다.

“어머니께서 관세음보살님을 닮았다는 제 환한 얼굴이 당신이 부처님께 정성으로 올린 꽃 공양의 불심이 꽃을 피운 은덕이라고 가끔 말씀하세요. 또 어느 철학관을 친구 따라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제 뒤에 팔만대장경이 지나가는데 왜 법당(출가)으로 들어가지 않았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죠. 그런 것을 겪으면서 절에서 일하는 것을 숙명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수향이 사찰에 첫 발을 들여놓은 것은 15년전, 그녀의 나이 꽃띠였던 20살 시절이었다. 어머니의 권유로 영천 만불사 종무사에서 종무일로 처음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4년 후 우학 스님이 있는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로 몸담을 곳을 옮겨왔다.

수향을 말하면서 우학스님을 빼 놓을 수는 없다. 우학스님의 서너 걸음 뒤에는 언제나 수향이 그림자처럼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녀는 11년이라는 긴 세월, 우학 스님을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 보필해 왔다.

그녀는 “우학스님께 면접 같은 인사를 드리러 왔는데 스님께서 ‘만불사는 왜 그만 두었노?’ 라고 물으셔서, 제가 ‘인연이 다해왔습니다’라고 했더니 ‘내일부터 열심히 하자’라는 단 세 마디로 일사천리로 통과”됐다며 우학스님과의 첫 대면을 회상했다.

그렇게 세 마디로 시작된 수향과 우학스님의 인연은 스승과 제자로 지금까지 11년을 함께 했다. 그녀가 처음 대관음사에 올 시기인 2003년부터 大관음사는 무서운 성장세를 타고 있었고, 부임 3년 후 그녀가 종무팀장이라는 큰 직책을 맡고부터는 그야말로 확장일로를 거듭해 왔다. 그녀는 그 시기 동안 30만 신도들을 도와 사찰 살림을 총괄하면서, 우학스님을 보필하는 비서실장 역할을 자임하며 일심(一心)으로 사찰 일을 도왔다.

“사찰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 힘들다는 생각보다 보람이 훨씬 더 큽니다. 더불어 우학 스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아버지처럼 의지하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제가 스님 덕분에 이만큼 성장하고 보람된 일을 하며 살 수 있으니 제게는 참 고마운 분이지요.”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사찰을 종횡무진 누비며 살인 미소를 날리고 다니는 그녀는 올해 후반부터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회주인 우학스님이 선정과 지혜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한 수행과정인 ‘천일 무문관 청정결사’에 들어간 것이다. 수행을 위한 우학스님의 부재 상황은 우학스님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大관음사에 구심점이 빠진 대 사건을 의미한다.

수향은 “우리는 사찰로는 유례가 없을 만큼 일년 만에 새로운 게 생기며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어요. 다 사찰을 키우고 불법을 널리 전하고 지역사회를 보듬으시며 개인적인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의 소멸을 실천하시는 우학스님의 큰 힘 때문이었지요. 지금은 스님이 안 계셔서 저나 우리 사찰이 시험대에 오른 것 같다”면서도 “3년 뒤 스님께서 회향하셨을 때 스님께서 공백을 느끼시지 못하실 만큼 스님의 빈자리를 든든하게 메우고 싶다”는 야무진 바람을 남겼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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