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산은 산, 물은 물
<대구논단> 산은 산, 물은 물
  • 승인 2009.06.0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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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식 (대구대 사범대학 교수)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그 서슬퍼런 투옥과 고문의 위협에도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더러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분신하는 학생까지 있었다. 결국 일반시민들까지 가세하여 군사독재에 대한 항거는 들불처럼 번져 나갔고, 오랫동안 폭압 통치를 뒷받침한 악명 높은 유신헌법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학생들이 휘발유를 붓고 죽어가는 참담한 시절,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전두환 정권에 대해 시민 학생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할 것을 강도높게 요구했다. 그런데 당시 조계종 종정 성철 스님의 불탄절 법어는 시국에 대한 단 한마디의 언급조차 없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였다.

극히 짧은 이 한마디는 필자를 너무나 실망시키고 슬프게 했다. `이 나라의 어른이라는 사람이 학생들이 죽어가는 이 난리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무슨 얼어 죽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란 말이냐?’

`독재 정권이 겁이 나더냐, 물 좋고 공기 좋은 가야산 높은 곳에 살면서 남이 해 주는 밥 먹으며 살다보니 세상이 보이지 않냐, 세상 사람 죽어 가는데 무슨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냐, 그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 그것도 말이라고 하냐, 미친 늙은이 같으니라구’라고 하면서 마음 속으로 마구 욕을 했던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노자 `도덕경(道德經)’의 첫머리에 나오는 “도(道)를 도(道)라 하면 이미 도(道)가 아니다(道可道 非可常道)’란 말이나 `진정한 법을 얻으려면 조사(스승)를 만나거든 조사를 죽이고 석가를 만나거든 석가를 죽여라’라는 선가의 `살조살불(殺祖殺佛)’, 그리고 `문자에 서지 않는다’는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생각하면서 나의 부질없는 욕에 미안해 했던 것이다.

노자는 직설적으로 도를 규정할 때의 심각한 오류의 피하기 위해 역설의 방법으로 설명하여, `도(道)를 도(道)라 하면 이미 도(道)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도를 규정하였다. 도를 그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이미 도가 아닌, 그런 것이 `도’라는 것, 인간이 그 무엇을 도라고 규정하는 순간 이미 도 자체가 아니라 말하는 자의 도에 불과하게 되는, 그런 것이 도라는 것이다.

`살조살불’이나 `불립문자’도 같은 말이니, 문자로 쓰여진 불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석가나 조사까지도 단지 강을 건너기 위한 배나 똥을 닦기 위한 휴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강을 건너게 해준 배가 고마워 짊어지고 다니거나 똥을 닦게 해 준 휴지가 고마워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는 없는 법, 문자로 기록된 불경이나 조사, 하물며 석가까지도 모두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니 그 방편에 매달려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데 생각이 미치면서 스님에 대한 부질없는 욕에 미안해 했던 것이다. 문자나 언어로 말해지는 그 어떤 것도 산이나 물 자체일 수 없으니, 산은 이러하고 물은 저러하다고 말하고 쓰는 순간 이미 언어나 문자로 말해지고 쓰여진 산이나 물에 불과할 뿐, 산이나 물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최대의 적은 그 무엇을 진리라고 맹신하는데 있음을 말한 것이다. 온 세상이 `내가 맞다, 아니다 내가 맞다’고 주장하면서 서로 싸우고 있지만, 과연 무엇이 맞는가를 바로 보라는 법어였던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조문, 대학 교수들의 줄지은 시국선언을 보면서 문득 성철 스님의 법어가 떠오르는 것은 스님의 법어가 나온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꽤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서로 `내가 맞다, 아니다 내가 맞다’고 주장하는 형국이지만 노자 도덕경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노무현은 좋은 대통령이었다’는 주장은 틀린 말일 수 있지만 `노무현은 산 사람이 아니다’는 주장은 옳은 말이다.

비록 전체는 아니지만 이 나라 지식인들의 시국 선언에 대해 선언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아니라, 서명자의 신원을 문제 삼아 참여정부와의 관련자가 몇 명이며 무슨 직을 맡았는지를 분석한 모 일간지의 태도가 정도가 아니라는 주장은 옳은 말이 다.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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