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아버지와 아들
<팔공시론> 아버지와 아들
  • 승인 2009.06.0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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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열 (성형외과 원장, 의학박사)

요즈음에는 전화의 종류도 다양하고 발달되어 있다. 인터넷 전화를 이용하면 국제전화도 공짜로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나 보다. 얼마 전 잠시 여기로 나와 있는 며느리가 일본에 있는 아들의 전화를 받더니 자기 방으로 가서 오랫동안 얘기를 한 후 거실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넘겨 통화하다가 마지막으로 옆에 있는 필자한테까지 넘어 왔다.

그래서 농담 삼아 의리와 인정이라는 일본식 표현인 `기리닌죠’ 전화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뭐, 그렇지요 뭐.’ 라고 대답을 얼버무려 대충 별 내용 없이 간단히 끝냈다. 무슨 얘기가 그렇게 길었냐는 필자의 싱거운 질문에 며느리는 `그런 게 있어요’ 하고 생긋이 웃으면서 답하였다.

`그래, 이런 벽이 있구나.’ 속으로 느껴졌다. 필자가 젊었을 때 선친과 전화하면 내용이 없는 안부 전화일 경우에는 할 말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통화 끝에 아버지는 항상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고 필자는 왜 그런 말을 하시는지 궁금하였다.

최근에는 이 같은 현상을 일본의 은사님과의 통화에서도 경험하는데 간혹 안부전화를 드리면 꼭 고맙다는 말로 끝을 맺으신다. 아래 사람의 안부전화가 위 사람에게는 고맙게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 필자에게는 고마움보다는 당연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반면 스승의 날에 제자들이 화분이나 꽃바구니를 보내오면 그건 고맙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반드시 전화를 해서 고맙다는 표현을 굳이 하고 있다.

외국에 살면서 안부 전화를 할 때 부모님보다 아내와 먼저 통화하고 싶었고 이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렇지만 세월이 흘러 부모가 된 후 아들이 먼저 며느리와 오래 전화하고 필자는 세 번째로 잠깐 인사나 받는 처지가 된 것을 서운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이것이 현실의 벽이자 세상살이의 흐름의 단계일 것이다.

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며느리와 자동차를 타는데 며느리가 운전하겠다고 하기에 별 생각 없이 옆 좌석에 앉았다. 아내가 운전할 때에는 항상 옆 자리에 앉으니까 말이다. 뜻밖에 며느리가 아버님은 뒤에 타시라고 했을 때 이미 자리에는 앉았고 다시 옮겨 타기도 귀찮아 그 날은 그냥 갔다.

다음 날 또 출근하는 필자를 모셔다 드리겠다는 말에 전철 타는 것이 더 좋다고 했지만 아내는 며느리 성의를 무시하지 말라며 말렸다. 하는 수 없이 지하주차장으로 갔는데 이번에는 타기 전에 미리 며느리가 뒤에 앉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뒷자리에 앉아 가면서 어! 정말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라는 느낌이 실감났다.

왜냐하면 선친은 필자나 아내나 누가 운전을 해도 뒤에 앉으라는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앞이 좋다고 하면서 앞자리에 타시곤 하여 운전하지 않는 두 사람 중 하나가 뒤에 앉았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왜 상석인 뒷자리를 마다하고 항상 앞자리에 앉으려고 했을까가 우리 부부의 의문이었다. 장인이나 다른 웃어른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 날 그 것을 며느리가 느껴지도록 하였다. 나는 아직은 현역인데 아래 사람들이 뒤 방으로 모시려고 한다는 느낌을! 윗사람이 뒤 좌석에 앉으면 운전하는 사람은 우선 편리하다.

자신의 소지품이 든 손가방이나 핸드백 같은 것을 옆 좌석에 놓아 둘 수도 있고 오른 쪽 옆의 백미러를 보기도 쉽고 옆 사람의 익숙하지 않은 숨소리를 듣지 않아도 좋으니 말이다. 또 껌이나 간단히 마실 음료수 등을 어려운 아버지보다는 가까운 부부 사이끼리 먹거나 마시기가 훨씬 더 편하기 때문이다.

일본 속담에 `아들을 갖고 나서 알게 되는 어버이의 은혜’라고 하더니 선친이 가지셨던 느낌을 며느리로 인해 필자도 느끼도록 만든 이 세월의 가르침에 대한 잔잔한 감정의 흔들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난감할 뿐이다.

작고한 장영희씨는 글에서 영국 작가 새뮤엘 버틀러의 글을 인용하여 `잊혀 지지 않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 남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삶과 죽음은 영원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얼마 전 중국의 작가인 주자청이 1925년 10월 북경에서 라고 표시 하며 쓴 `아버지의 뒷모습’이라는 수필을 읽었다.

글속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로 역을 빠져 나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나는 돌아서서 기차에 올랐다. 자리에 돌아와 앉은 나는 절제 되어 있었던 감정이 솟구쳐 올라 눈물을 왈칵 쏟아 냈다.’ 라는 문장이 인상 깊게 남았다.

시대와 관계없이 나이 든 아버지의 처진 뒷모습은 자식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며느리의 “아버님, 뒷자리에 앉으세요.” 라는 몇 마디의 말이 돌아가신 아버지와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아마도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뒷자리에 앉으라고 권한 말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지는 꿈에도 의식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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