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단절과 혈연의 정치
<특별기고> 단절과 혈연의 정치
  • 승인 2009.06.0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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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환 (계명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한국 정치에는 다른 나라에서는 보이지 않는 두 가지의 특질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대통령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정치는 그것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 하나는 전임자와의 단절의 정치이다. 지금까지의 역대 선거에서 같은 정당의 후보자로 자기 전임자의 정책이나 업적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노태우 후보의 경우는 전두환 전임 대통령의 시체를 밟고 지나갔으며, 대통령 당선 후에는 그를 백담사로 유배 보내야 했다. 김영삼 후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노태우 대통령과의 처절한 권력 투쟁을 통해서 후보의 지위를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 당선 후 노태우 전임 대통령을 재판에 회부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대통령을 중심으로 전임 대통령과 정권의 그늘과 흔적을 지워버리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사회에 존경받는 대통령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스갯소리로 한국의 대통령에게는 정책이 필요 없다고 한다. 왜냐면, 전임 대통령의 시체를 밝고 전임대통령이 했던 것과 정 반대의 방향으로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임자와의 단절을 통한 정치는, 전임자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털어 내고 새로운 정치를 하기 위한 것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이 된다. 물론 이를 나무라고 말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정책의 선택이나 계승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전임자의 인격과 정통성마저 부정하고 그 시대자체를 매도하는 단절의 역사를 쌓아 가는 듯 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후임자들은 전임자들의 토양 속에서 성장해온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전임자들의 흔적을 지워야만 정권이 안정된다고 생각하는 점이 안타깝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단절의 역사를 쌓아가야만 하는가.

또 하나 한국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혈연관계이다. 지금까지 많은 대통령이 동생이나 자식들 등 가족문제로 국정의 혼란을 초래했었다.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자유당 시대의 이강석 사건을 떠올릴 필요도 없이, 그들은 자기 아버지가, 때로는 형님이나 남편이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그 자신들도 대통령의 행세를 해온 것이다.

흔한 말로 검사 부인이 교통경찰에 걸렸을 때, “내가 누군지 아느냐” 면서 경찰의 뺨을 때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검사 부인이 검사 행세를 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을 허용하는 사회적 관용이 있는 것 같다. 가족의 일체화현상이라고나 해야 할까. 노건평씨 역시 대통령의 형님이라는 것만으로 다양한 이권에 개입했다. 이상득 의원도 대통령의 형님으로써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의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서도 역시 혈연주의와 단절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지금의 이명박 정권의 최대의 딜레마는 고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정권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로 비쳐지고 있다. 한나라당과 현 정권은 고 노무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노무현 참여정부 배싱(bashing) 현상이다.

옆집개가 똥을 싸도 전 정권 때문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는 것 같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의 참여정부와 가족들에 대한 폄하를 못견뎌하고 자살을 선택했다. 정권을 내놓고 권력적으로 무장해제를 당한 상태에서 현 정부가 참여정부와 가족들을 옥죄는 데 대해서 저항의 수단이 없었다. 마지막 저항이 그에게는 자실이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았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의 이른바 서거 정국은 현 정권과 전 정권, 죽은 권력과 살아 있는 권력이 정권다툼을 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지금은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있는 사마중달을 잡는 현국이 되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으로 상대를 잃어버린 이명박 정권은 지금 말이 없다.

이제 이런 정치 제발 그만 두자. 정치는 감성이 아니라 이성과 이상이 있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은 단절이 없다. 전정권의 국가와 국민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현 정권 시대에 살았던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정권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는 정치가 성립될 수 없다. 과거를 단절하기 보다는 계속성 위에서 정권의 이상과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가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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