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에게
만일 내가 감자라면
그렇게 꼭 움켜쥔 주먹으로
자기 자신과 타인을 대하진 않으리라
어린 바닷게에게,
만일 내가 바닷게라면
그렇게 매순간 삶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기 몸보다 더 큰 다리를 갖고 있진 않으리라
거미에게,
만일 내가 거미라면
그렇게 줄곧 허공에 매달려
초월을 꿈꾸진 않으리라
벌에게,
만일 내가 벌이라면
그렇게 참을성 없이 순간의 고통을 찌르기 위
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진 않으리라
언덕에게,
만일 내가 언덕이라면
그렇게 보잘 것 없는 희망으로
인간의 다리를 지치게 하진 않으리라
(이하 생략)
▷서울에서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80년『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1991),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1996)등 다수 있음. 이 시는 류시화 특유의 아포리즘의 시도라 하겠다.
화자는 어린 바닷게에게 `그렇게 매순간 삶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 자기 몸보다 더 큰 다리를 갖고 있진 않으리라’고 충고하고 있다. 거미와 벌과 언덕에게도 같은 충고와 나무람으로 이어진다. 잠언 적이면서 풍자적 상징적 시로 독자들에게 쉽게 어필되고 있다.
이일기 (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