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두 마리 염소
<팔공시론>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두 마리 염소
  • 승인 2009.01.1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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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배재대학교 연구교수)

지난 연말의 국회 폭력사태와 연초 여야 정당의 입법 대치상태를 보면서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깊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양쪽의 가파른 바위산에 염소가 두 마리 살고 있었다.

둘 다 새끼를 키우고 있었고, 각자 새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매일 매일 고달픈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물론 염소는 어느 정도 자라면 스스로 먹이를 찾아다니며 혼자 힘으로 살아가게 되지만, 그 때까지는 어미가 젖을 먹이며 여러 가지로 돌봐주어야 한다.

당연히 염소만 그런 것이 아니다. 특히 진화의 상층부로 올라가면 갈수록 새끼들의 자립기간이 길어지고 그만큼 어미들의 노력도 많아진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은 그렇게 수만 년 동안 보살핌을 받고 또 보살펴 준 결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틋한 사랑은 모든 생명의 기초가 된다.

그 날도 계곡을 사이에 두고 어미 염소 두 마리가 어린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부지런히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바위산이라 풀도 많지 않았고, 특히 부드러운 풀은 더욱 없었다. 주변의 풀을 다 먹어치운 한 염소가 주변을 살피다가 문득 계곡 건너편을 쳐다보니, 어쩐지 그 쪽에 맛있는 풀이 더 많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풀과 흡족하게 젓을 빨고 있는 자신의 새끼들을 떠올린 염소는 뛸 듯이 기뻐하며 계곡을 가로 지른 외나무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외나무다리를 건너기 시작한 순간 계곡 저쪽에서도 한 마리의 염소가 이쪽으로 건너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건너편 염소도 같은 이유였을 것 같은데, 즉 건너편의 풀도 다 먹어치웠다는 뜻인데, 이 두 염소는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건너편 풀만 떠올린 두 염소는 그대로 외나무다리를 건너기 시작했고, 한복판에서 딱 마주쳤다. 서로 양보할 마음이 없었던 두 마리 염소는 깎아지른 듯한 계곡위에 걸쳐진 나무위에서 서로 뿔을 맞대며 아찔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만약 거기서 떨어지면 자신도 죽고 어린 새끼들도 굶어 죽을 것이라곤 둘 다 아애 생각에 없었다. 어리석은 동물이라 대개 한번 무엇을 시작했다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성향이 있는데, 이 두 염소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은 거나 다름없었던 계곡 건너편 세계가 이제는 죽기를 각오하고서라도 가야만 하는 세계로 변해 있었다.

두 염소는 이제 자신들의 목숨뿐만 아니라 각자의 가족의 목숨을 걸고 대치하고 있었다. 한 걸음도 양보 할 수 없었다. 이제 이 두 염소의 머릿속에는 건너편 염소가 왜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지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각자의 뿔을 맞대고 대치하고 있는 이 상황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조금만 더 생각을 했더라면, 상대편 염소가 계곡을 건너오려는 이유쯤이야 금방 유추해 볼 수 있었을 텐데... 대화만 나누었더라도, 계곡 사이의 외나무다리에서 서로의 목숨을 담보로 이렇게 대치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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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두 염소는 그렇게 서로의 뿔을 맞댄 채 그러고 있었다. 염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물들은 많은 생각을 할 수도 없고 또 할 필요도 없지만, 사물의 이치를 조금만 생각한다면 삶을 한층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 하물며 사고를 삶의 무기로 하는 인간이야 두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가를 떠나 자기가 속한 집단의 편협한 이익만 생각하고 오직 그것만을 위해 자신과 자신을 뽑아준 국민들과 가족들의 삶을 위협하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염소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든다.
좀 더 생각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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