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교도소에서 억울하게 숨진 이한선
<대구논단> 교도소에서 억울하게 숨진 이한선
  • 승인 2009.06.1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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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객원 大記者)

노무현 자살사건 이후 89세의 강희남 목사가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일이 생겼다. 자살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하다는 평을 들을 수는 없다. 다만 왜적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 민족에게 주는 처절한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매천 황현선생이나 충정공 민영환 같은 경우에는 그 결연한 의지 때문에 지금까지도 추앙을 받고 있다.

노무현의 자살이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것은 동정심에서다. 이렇게 죽어간 사람과는 달리 이번에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 중 억울하게 숨진 이한선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는 원래 노원구의회 의원으로 4선을 기록한 사람이다.

비록 기초단체의 구의원이라고 하지만 조그마한 동네에서 신망과 덕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국회의원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까다로운 게 구의원 당선이다. 그가 구의회 의장으로 선출된 것은 순전히 동료들이 떠밀어줘서다.

임기를 마치고 마침 새로 설립된 노원구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지역발전에 더욱 매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검찰의 소환장이 날라들었다. 재직 시 청탁을 받고 뇌물을 수수하였다는 혐의였다. 처음에는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조사도중 몇 해 전에 어떤 사람이 돈을 가져온 것을 되돌려준 사실을 기억해냈다. 청탁을 들어줄 수 있는 직책에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한 푼도 쓰지 않고 그대로 돌려준 일이 있다.

전혀 돈 욕심을 낸 일이 없기 때문에 3천만 원을 돌려줬고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돈을 가져왔던 사람이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다가 여죄를 추궁하는 검찰에 그 사실을 말한 것이다. 죄가 성립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털어놓은 일이 이한선에게는 영원한 독화살이 되어 날아왔다. 불구속 기소가 된 것이다.

이한선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속으로 끙끙 앓으며 재판을 받았다. 구의원도 선출직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뇌물수수죄가 적용되었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 사건이고 즉시 돌려준 사항이라 설혹 유죄로 판단되더라도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선고가 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변호사들도 그렇게 시사했다. 구속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한 일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법원판결은 대부분 이러한 경우에 집행유예를 선고해 왔다는 판례도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1심 재판부는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을 단행했다. 크게 당혹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1심에서는 그렇다 치고 항소심에서는 모든 정상을 참작하여 올바른 판단을 해줄 것으로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피의자들은 대개 자신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한선과 가족들도 모두 그랬다. 허황된 기대가 아니고 사실관계가 과거의 판례와 비슷하기 때문에 2심에서는 꼭 석방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교도소 은어로 “들었다 놨다”. 마지막 기대는 대법원 상고심이다. 요새는 상고심에서 원심파기를 하는 수도 많다.

이를 기대했지만 도로(徒勞)에 끝났다. 서울구치소에서 의정부교도소로 이감됐다. 교도소에서는 신입생이 제일 괴롭다. 과거처럼 혹독한 신고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낯선 감방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귀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한선은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게 된 것이 분하고 창피했지만 어떻게든 형을 마치고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안길 날만 고대하며 새로운 감방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쌓인 스트레스에 치통이 발생했다.

풍치가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심하진 않았는데 스트레스성 치통은 견디기 힘들었다. 얼굴이 붓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치통이 왔다. 외부병원에서의 진료를 신청했으나 교도소 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의무실에서 이를 뽑았다. 어떤 치과를 막론하고 통증이 심할 때에는 절대로 발치(拔齒)를 하지 않는 법인데 이곳에서는 그냥 뽑았다. 엄청난 고통이 따랐다. 도저히 볼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의정부 성모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거기에서는 “장기간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료소견을 냈다. 그렇지만 교도소 측은 막무가내로 재소자를 다시 감방으로 입감시켰다. 그날 밤 이한선은 극심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당황한 교도소 측에서 외부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이미 숨진 뒤였다. 교도소 측이 조금만 신경을 써줬더라면 생떼 같은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가진 안했을 것을 억울한 옥살이에 생명까지 잃고 말았다.

KBS에서는 이를 뉴스시간마다 보도했다. 노원구의회는 즉각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김성환)를 구성하고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노원구 출신 국회의원(홍정욱 권영진 현경병) 세 사람도 검찰을 방문하는 등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히라고 요구했다. 검찰도 국과수에서 부검을 실시하여 죽음의 진실규명에 노력하고 있다.

인권사각지대인 교도소에서 일제 강점기에나 있을 법한 옥사사건이 일어난 것을 국민이 지켜보며 분노를 삭이고 있다.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인권유린의 진상이 밝혀져 교도소 측의 책임을 물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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