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할아버지?!
<팔공시론> 할아버지?!
  • 승인 2009.06.1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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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열 (성형외과 원장, 의학박사)

며칠 전 필자의 병원을 찾아온 너 댓 살 된 사내아이가 책상 위의 집기를 이것저것 만져대니 떨어뜨려 깨뜨릴까 염려한 아이 어머니가 하는 말이 “할아버지가 화내신다.” 이었다. 순간, 그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기미와 주근깨가 쫙 깔려있는 얼굴이었다.

`이 기미 아줌마야, 뭐라고 하는 거야!’ 말도 안 되는 호칭이다. 필자 얼굴의 표정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분위기를 눈치 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진찰 대 위의 집기를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느라고 정신이 없는 아이에게 이번에는 아이의 아버지가 “선생님이 화내신다.” 하고 다시 말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듣기에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제자 하나가 딸과 함께 인사 차 방문하여 “할아버지에게 인사 드려야지” 라고 하였는데 이때도 속으로 `아니, 저런 단어밖에 사용할 줄 모르나?’ 하고 불쾌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환갑도 되었으니 이 `할아버지’라는 용어에 익숙해지고 받아 들여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또 올해 말이면 며느리가 출산하게 되어 정말 할아버지가 될 예정이니 말이다. 내심 아직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현실이니 인정할 건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필자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시장을 다녀온 모친이 아주 기분이 나쁜 듯 마루에 걸 터 앉아 호흡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씨근씨근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시장의 어떤 여자가 당신을 할머니라고 불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요? 뭐, 당연한 걸 가지고 그러느냐는 필자의 반응에 당신이 왜 할머니냐고 몹시 불만스러운 눈치였다. 그 당시 모친 역시 지금의 필자와 비슷한 나이였다고 기억한다. 이미 결혼한 형님에게 아이가 있으니 손자를 둔 할머니임에 틀림없었지만 할머니라는 호칭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필자가 장단을 맞추느라 “어떤 여편네가 우리 엄마를 벌써 할머니라고 부르고 야단이야.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라는 말에 슬며시 웃으면서 방안으로 들어가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미 30년이나 지난 오래 전의 일이지만. 며느리가 금방 시어머니 된다는 말이 있듯이 세월은 빨리 지나가고 사람은 늙기 쉽다는 만고의 진리를 깨닫게 한다. 어머니라도 그 때는 나 자신의 일이 아니었으니 미쳐 깊이 공감하지 못했는데 세월이 흘러 막상 나의 일이 되고 보니 이제야 그 심각성(?)이 느껴지게 되는 것 같다.

수필가이며 영문학자인 이양하씨의 실록예찬 수필집에서 `늙어 가는데 관하여’ 라는 글을 읽어보면 `음식점의 아가씨한테서 아저씨도 아니고 할아버지라고 불리 울 때 느끼는 당자의 환멸을 생각하면…’ 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59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작고한 작가도 그 연령에서 이렇게 느꼈을 정도로 중년 좀 늦은 나이의 남자들에게는 이런 느낌이 공통적인 과도기의 한 증상인 듯하다.

처음으로 할아버지라는 말을 듣고 묘한 느낌을 받았다는 인터넷에 실린 어떤 글에서 외손녀가 있어 외할아버지가 되는 데도 할아버지 되기를 부정하고 싶고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듣게 되는 것이 순리인줄 알면서도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글쓴이의 자기 고백을 접한 적이 있다.

`이런 느낌’에 많은 사람들이 당혹스러워 하는데도 불구하고 공통의 관심사로서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왜 그럴까. 정신과적으로 혹은 심리학적으로 이런 느낌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대신 채근담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생은 무상하니 세월을 허송하지 마라. 천지에 비하여 인생은 짧고 세월은 화살같이 빨리 지나간다. 하늘과 땅은 영원히 있지만 이 몸은 두 번 다시 태어날 수 없는 것이고 인생은 다만 백 년에 불과 하지만 오늘 하루가 가장 쉽게 지나가 버린다. 다행히 그 사이에 태어난 사람인 바에야 삶의 즐거움을 찾고 또 헛된 삶에 대한 근심도 풀어야 한다고 하였다.

저녁나절에 노을이 찬란하고 세모에 귤이 익어 향기를 풍기듯이 사람도 말년을 잘 장식하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본위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면이 있다. 속세 일에 악착같은 사람은 자연의 아름다움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욕심이 많아 넓은 땅도 좁게 보이며 긴 세월도 짧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집을 버리고 맑은 심정으로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야 되는가 보다. 일본 속담에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는 말이 있다. 마무리 정리를 잘하면 모든 것이 좋아진다는 뜻이다. 이는 인생에서도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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