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커피로 행복한 세상 꿈꾼다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커피로 행복한 세상 꿈꾼다
  • 황인옥
  • 승인 2014.02.0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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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명가 안명규 대표

1990년 ‘경북대 1호점’ 오픈 후 전국 33개 매장 성업

지역 특색에 맞춘 개성있는 곳 엄격히 따져 매장 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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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명가 안명규 대표는 ‘행복한 커피, 행복한 커피 생산 근로자, 행복한 소비자’를 슬로건으로 커피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 오고 있다. 박현수기자 love4evermn@idaegu.co.kr

일찍부터 커피에 눈을 떴다.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도서관에서 커피를 마시며 학업에 대한 중압감을 달래고, 방향성을 잃고 헤매는 청춘의 분노를 붙잡았다. 그에게 커피는 그렇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커피가 주는 정서적 기능에 주목하며, 커피 공부를 시작했다. 자신이 그랬듯, 다른 이들에게도 커피를 통해 힐링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초의 국내 커피업계는 그야말로 황무지. 한 두 개의 업체가 독점하며 다방위주로 공급하던 원두커피와 인스턴트 커피가 전부인 시절이었다. 커피명가 안명규(50) 대표에게 커피가 본격적인 운명이 된 것은 그때부터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고, 상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는 사랑의 속성처럼, 안 대표에게 커피는 행복의 원천이며 샘솟는 탐구의 대상이자 평생을 함께 한 연인이었다.

◇커피 농장 재현한 ‘라 핀카(La Finca)’

안 대표에게 지난 2012년은 새로운 커피 인생을 준비하는 전환기였다.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자신의 커피 인생을 집약하는 커피 전초기지를 세운 것이다. ‘커피농장의 재현’이라는 기본 골격 아래 ‘커피와 커피생산자, 커피소비자 모두가 행복한 공간’을 구현했다.

- ‘라 핀카’의 구성은.

“생두 창고와 로스팅 공간, 커피 교육 및 체험 공간, 바리스타로부터 향기로운 커피를 제공 받을수 있는 1층과 산지에서 직접 가져온 10여 개국의 커피콩과 세계 각지의 커피 농장에서 공수한 물건을 전시하는 커피체험 공간인 2층으로 구성된 카페 ‘라 핀카’ 등이 있다. 그 사이에 정원과 주차 공간이 세 건물을 연결하고 있다.”

‘라 핀카’는 스페인 말이다, ‘농장’을 의미한다. 이 상호 속에는 아열대 지방의 전유물인 커피 농장을 4계절이 뚜렷한 대구에 재현하겠다는 안 대표의 역발상이 녹아있다.

현재 1천650㎡(500평)규모의 경산의 한 농장에서 그의 커피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2~3년 후에는 ‘라 핀카’ 실내와 실외 공간을 뒤 덮을 것이다.

- ‘라 핀카’는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공간이다. 무엇을 담고 싶었나.

“현대인들은 좋아하면 더 깊이 알고 싶어 하고 체험하고 싶어 한다. 커피라고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원산지에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 공간은 그런 현대인들의 욕구를 수용하기 위한 곳이다.”

- 커피 농장이라고 하면 커피나무가 과수원처럼 숲을 이뤄야한다. 가능한가.

“경산의 한 농장에서 커피나무가 커가고 있다. 2~3년 뒤면 그 나무들로 이 공간이 숲을 이룰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곳을 찾는 손님들은 커피나무 사이를 산책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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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문을 연 ‘라 핀카’는 커피 농장을 재현하기 위한 원두와 커피나무 등 다양한 커피 관련 물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원두 커피의 길을 열다

안 대표에게 커피의 맛과 향은 최고의 관심사다. 1991년에 일본 커피투어를 시작으로 SCAA(Speciality Coffee Association of America) 멤버가 되어 미국, 유럽을 돌며 커피 기술을 배우고 세계의 커피명인들과 교류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산지에서 커피 원두를 직접 사오고, 볶는 로스팅 과정에도 관심이 생겼다.

당시 전문가들이 추출기술에 한정 짓던 것을 안 대표는 일찍부터 관심을 넓혀 로스팅 탐구와 로스팅 기계인 배전기 제작을 시도했다. 당시는 국내 어디에도 한국산 배전기가 없었다. 쉽지는 않았다. 철저하게 시행착오를 통해 개발하는 시기였고, 이 때문에 완성하는데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 자가 로스팅이 왜 중요한가.

“거기서부터 커피의 맛과 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무에서 200일 동안 익은 열매를 수확하고, 배로 국내까지 들어오는데 한 달이 걸린다. 하지만 생두 자체에는 향과 맛이 없다. 맛과 향은 불을 만나면서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로스팅 하는 15분이 커피의 맛과 향을 좌우한다”

- 커피명가의 로스팅 기간은 얼마인가.

“매일 볶고, 볶은 것은 이틀 안에 출하한다. 출하된 커피는 일주일 안에 소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안 대표는 로스팅 외에도 커피 원두를 원산지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구입해 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2년부터 세계적인 커피 생산지를 찾아 다녔다. 에디오피아부터 시작된 원두 구입은 수확시기 등을 감안해 지금은 과테말라, 엘살바로드, 콜롬비아, 케냐 등 7개국으로 수입지를 다변화했다.

- 원산지에서 원두를 직접 사오게 된 계기는.

“로스팅을 하다 보니 한계가 왔다.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데 로스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원두라는 확신이 생겼다. 커피는 어느 하나가 부족해도 100%의 맛을 낼 수 없다. 결국 전 과정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좋은 원두를 구입하기 위해 일년에 3~4개월 정도는 원산지에서 산다.”

◇공간마다 개성 살린 프랜차이즈

국내 최초로 로스팅 기계를 개발하고 맛에 자신감을 얻은 안 대표는 1990년에 경북대 후문에 ‘커피 명가’ 1호점을 오픈하며 커피 브랜드 시대를 열었다. 스타벅스 커피가 서울 이대점에 국내 1호점으로 진출한 1999년보다 9년이나 앞선 일이었다.

현재 ‘커피 명가’는 대구를 기반으로 경북, 전북, 충남 등지에 총 33개의 매장이 성업 중에 있다. 커피명가가 유명세를 타면서 3천건이 넘는 프랜차이즈 의뢰를 받았지만 대부분 거절하고, 안 대표의 철학과 비슷한 사람들로 엄선한 33개 매장만 오픈하게 된 것이다.

- 프랜차이즈를 하게 된 이유는.

“소가 부위 마다 맛이 다르듯이 커피도 그런 개념 있다. 좋은 맛과 향을 가진 원두는 한정돼 있다.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구입량이 어느 정도의 규모가 돼야 한다. 커피의 맛은 원재료부터 로스팅, 추출, 그리고 공간까지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이 완벽해야 하는데 최고의 원두 또한 놓칠 수 없었다.”

- 커피 역사에 비해 매장 수가 적다. 왜인가?

“커피명가는 커피와 공간을 하나로 본다. 커피를 매개로 사회적 열할을 담당하는 순기능적인 소통 공간을 목표로 한다. 그러다 보니 획일적으로 찍어내는 프랜차이즈 개념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많은 자식을 낳는 다산이 목적이 아니었다. 한 곳 한 곳 정성과 개성을 가진 귀한 품격과 100년이 지나도 그 가치를 여전히 품고 있는 생명성을 보았다. 사업주 개인의 커피 철학은 물론이고, 공간이 위치한 지역적 특색에 맞는 개성 있는 공간을 욕심내다 보니 매장을 늘리는데 엄격해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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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에 한번씩 음악회가 열리는 원두 저장 창고에서 안명규 대표가 음향기기를 손보고 있다. 박현수기자
◇커피로 새로운 세상에 눈뜨다

커피명가를 통해 자신의 커피 철학을 구현한다는 목표가 지금은 안정적인 궤도를 보이고 있지만, 자신의 장기라도 팔고 싶을 만큼 절박했던 시절도 없지 않았다. 30여 년 동안 국내 커피의 선구자로 걸어온 안 대표지만, 직접 만나보니 고생의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동안(童顔)이었다. 이야기를 풀어갈수록 커피 전문가를 넘어 커피에 인문학을 결합하며 커피로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인문학자의 인상마저 풍겼다. 순수한 열정과 인문학적 내면이 그의 동안 비결로 보였다.

- 원두부터 로스팅, 그리고 추출까지 커피의 처음과 끝 모두를 섭렵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고등학교 때 한 잔의 커피가 주는 힐링 감성에 눈을 뜬 후 커피를 통한 치유와 행복을 생각하게 됐다. 실제로 커피의 뜻은 희랍어로 ‘원기를 준다’이다. 커피를 통해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에너지를 줄 수 있다면 끝까지 해 볼만 한 도전이 아닌가 하는 확신이 생겼다.”

- 당시 국내 커피 문화의 현실은 어땠나.

“당시 커피는 산패된 원두커피와 인스턴트커피가 주류였고, 그 마저 공급하는 업체가 한 두 업체가 95%를 독점하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원두라는 개념도 없었고, 다방에 공급하기 위한 영업의 도구로서의 커피만 있을 뿐이었다.”

- 그쯤이면 포기했을 법 한데.

“커피 점유율이 분명히 있고, 소비자가 커피에 대해 좀 더 알 권리가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환경이 오히려 오기를 자극했다. 커피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명감도 생겼다. 그때가 1987년이다.”

- 자료도 전무한데 어떻게 공부했나.

“커피를 다룬 책자를 찾기 위해 대구는 물론이고 서울 종로서적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없었다. 할 수 없이 전국에서 커피 좀 한다는 사람을 수소문해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들 모두 넣는 첨가물에 조금씩의 차이를 보일 뿐, 커피 자체의 맛에 대한 노하우는 없었다. 그때 마침 일본의 UCC라는 커피회사가 우리나라 진출을 염두에 두고 모델 샵을 열고 연수를 시작했는데 거기서 커피의 신천지를 보았다.”

- 어떻게 달랐나.

“원두를 직접 볶았다. 당시 국내는 인스턴트뿐이었다. 직접 볶는 개념은 아예 없던 시절이다. 그걸 보면서 이거다 싶었고, 우리도 이렇게 하면 커피 문화를 바꿀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 일본이 국내 진출을 모색했다면, 국내 커피 산업에 변화 조짐이 있었다는 얘기인가.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 열리게 되면서 정부에서 외국인이 국내에 왔을 때 가장 시급하게 변화시켜야 할 것을 조사했는데 화장실과 커피 문화가 지목됐다. 정부차원에서 커피의 변화 바람을 인식한 시기였다.”

◇좋은 커피는 땅과 커피 노동자가 행복해야

카페 ‘라 핀카’의 인테리어가 독특했다. 구제(舊製) 느낌이 났다. 이유는 인테리이에 사용된 나무들과 소품들이 모두 버려지는 재활용품으로 직접 제작했기 때문이다. “환경오염으로 땅이 병들면 좋은 커피를 생산할 수 없다”는 철학으로 스스로 환경에 대한 각성을 인테리어에 녹여내기 위해 폐 나무상과 재활용품 판매점을 뒤지며 발품을 팔고 제작한 것이다.

또 하나 그에게 발견되는 독특함은 두 달에 한 번씩 커피 창고에서 커피노동자를 돕기 위한 음악회를 열고, 생산지 커피 노동자 아이들의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등의 커피 노동자 돕기 행사를 꾸준하게 기획해 온 것이다. 지구 저편의 노동자와 또 다른 지구 반대편의 소비자를 하나로 묶어 모두가 행복한 커피를 만들고, 그럼으로써 커피에 품격도 더하는 것이다.

결국 환경에 대한 관심과 정기적인 음악회 등은 “행복한 커피가 생산돼야 커피 노동자와 소비자 모두 행복할 수 있다. 또 생산자와 소비자가 행복할 때 행복한 커피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는 안 대표의 세계관이 만들어내 산물이었다. 안 대표를 커피 분야에 입지전적 인물로 평하는 데는 커피 불모지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커피에 행복이라는 인문학 코드를 접목해 온 일들에 대한 찬사로 보인다.

- 커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안 대표에게 커피는 무엇인가.

“자식보다 더 한 애물단지였다가도, 더 없이 사랑스러운 연인이기도 하다. 때로는 삶의 스승이기도 하다. 커피야말로 내 인생의 전부인 셈이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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