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일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 천혜렬
  • 승인 2009.01.1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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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대구지역 어르신 일자리 현장

“내 손으로 번 돈으로 손자손녀들 용돈 줄 때 가장 보람되지요.”

9일 오전 대구시 중구 대봉2동 주택가 한옥집을 개조해 만든 ‘건들바위경로당’. 현관을 들어서자 쓰레기로 가득한 형형색색의 마대가 눈에 띄었다.

마당 안쪽에 어른 키만큼 쌓여있는 폐현수막을 보니 이 마대가 무엇으로 만들어 졌는지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경로당 안에는 폐현수막으로 마대를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대부분 팔순이 넘은 7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폐현수막의 줄과 지지대를 제거하는 작업과 재단, 봉제, 입구잠금용 끈 넣기와 뒷정리까지 각자 정해진 일을 능숙하게 하고 있었다.

한 할머니는 “벌써 4년째 이 일을 하고 있어서 이제는 손에 익었다”며 “처음에는 먼지도 많고 막대기도 빼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마주앉아 일을 하면서도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놓지 않으려고 해 큰일 났다며 사회적 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내고 원하는 것 다 있는 경로당인데 ‘걸으면서 운동되는 기계’(러닝머신)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이들은 대구 중구청의 ‘2009년 동절기 노인일자리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일주일에 두 번, 한번에 3시간씩 마대를 만들고 있다.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던 폐현수막은 건들바위 경로당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마대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마대는 중구지역 13개 동 주민센터에서 쓰레기나 낙엽 수거용으로 사용된다.

박창우(75) 할아버지는 “납기를 보채거나 제작 물량이 많으면 하루 3시간이 아니라 아침부터 오후까지 작업을 할 때도 있다”며 “나이 들어서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중구 동인3가동 골목길. 20여명의 노인들이 폐현수막으로 만들어진 마대와 빗자루, 쓰레받기를 들고 거리를 누비고 있다.

이들은 골목 구석구석까지 살피며 쓰레기를 줍고 벽이나 전봇대에 붙여진 불법 광고물을 제거했다.

구청에서는 노인들의 건강을 위해 겨울철에는 일주일에 이틀만, 오전시간보다는 찬바람이 덜 부는 오후시간에 일하는 것을 권유하고 있지만 이날 어르신들은 “지는 해 보다는 뜨는 해 보는 것이 좋다”며 굳이 오전에 집을 나섰다고 한다.

“운동도 하고 돈도 벌고 얼마나 좋은 일이냐. 나라에서 이런 일을 더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는 권순희(68) 할머니의 말에 다른 할머니들도 “옳거니!”라고 맞장구를 쳤다.

월 8회에 걸쳐 총 24시간 동안 거리환경 정비 및 불법 광고물 제거를 하면서 노인들이 받는 대가는 10만원. 이들에게 10만원은 천금보다 많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존재다.

장수자(66) 할머니는 “손자 손녀들 공부시켜야 하고 각종 세금에 시달리는 자식들에게 염치없이 손을 벌리는 것이 죽는 것 보다 더 싫다”며 “내가 벌어 내 손으로 주는 마음이 편하지 달란 말은 안 나오더라”고 말했다.

지자체의 노인일자리 사업은 지난해 보건복지가족부 지침에 따라 3월부터 9월까지 시행되고 있지만 중구는 자체 예산 6천700만원과 국시비 6천만 원을 추가로 확보, 노인들에게 연중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오는 3월에도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인 360여명의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다른 지역과 달리 우리 구에서는 노인들에게 연중 일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노인들의 관심과 참여도가 상당히 높다”며 “구 차원에서도 노인복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노인일자리 사업 확보에 집중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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