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경력 10년…한 순간에 허물어져”
“연기경력 10년…한 순간에 허물어져”
  • 승인 2014.03.0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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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아한 거짓말’ 주연 배우 고아성
22살…뒤늦은 사춘기
연기에 대한 고민 늘어
그동안 자연스런 연기에 익숙
김희애 선배님 충고 통해 정형화된 연기 필요성 깨달아
고아성
아역 출신 배우 고아성(22)은 벌써 데뷔한 지 10년이 된 ‘고참’ 배우다. 영화 출연작만 10편 가까이 된다.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2007)에도 출연했고, 김새론과 호흡을 맞춘 우리 르콩트 감독의 ‘여행자들’(2009)에서도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다채로운 색깔을 선보였지만 그의 연기는 늘 봉준호 감독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해석되곤 했다. ‘괴물’(2006), ‘설국열차’(2013)를 통해 2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았다. 자부심도 느낄법하지만 스스로 이룬 게 아니기에 두려움의 감정이 더 컸다.

봉준호라는 유명 감독, 변희봉·송강호·박해일 등 연기력 출중한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좋은 감독 좋은 배우들과 연기했는데 그만큼 좋은 배우가 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자리 잡아 갔다.

대학교 3학년, 10년차 배우인 그에게 뒤늦은 사춘기가 찾아왔다.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시간이 있어야 사춘기도 끝나고, 잘 머물다가 갈 거로 생각해요. 도움이 되는 시간이겠죠.”

고아성은 이렇게 말하며 미소 지었다. ‘완득이’(2011)의 이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우아한 거짓말’의 개봉을 앞두고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다.

SF 영화 ‘설국열차’를 끝내고 현실에 뿌리박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거짓말처럼 ‘우아한 거짓말’의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시나리오는 처음부터 심장을 때렸다. “이거다!” 여겼다. 그러나 의문부호가 가슴 한쪽에서부터 솟아올랐다.

“제가 기자를 해봤어야 기자 역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어떤 역할을 해보려면 꼭 겪어야 할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아이를 낳는 경험, 진정한 사랑, 그리고 가족을 잃은 슬픔이 그런 거예요. 가족을 잃어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그러나 시나리오의 내용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가족을 잃은 경험이 없는 게 안타까울 정도”였다. 급기야 꿈에서 가족과 지인들이 죽어나갔다. “엄마, 언니, 단짝….”

그렇게 괴로워하던 시기에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읽으며 마음을 다독였다. 바르트가 어머니를 여의고 삶을 되돌아보며 쓴 끌이다. 일 주일가량 바르트의 책을 들고 다니며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쩌면 연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싹텄다. ‘우아한 거짓말’은 평범했던 14살 소녀 천지(김향기)가 갑자기 자살하고 나서 남겨진 엄마(김희애)와 언니 만지(고아성)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만지는 천지의 자살을 추적해가는 핵심 인물이다.

거창한 말 같지만, 영화는 그의 일상을 바꾸었다. 만지라는 ‘쿨’한 캐릭터는 영화 현장을 넘어 그의 일상 속으로까지 침투해 들어갔다.

“예전에는 가족에 관심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가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어요. ‘우아한 거짓말’이 제 개인적인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전 동생이 없는데, 영화를 찍으면서는 진짜 동생이 있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강렬한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영화의 내용뿐 아니라 연기를 하면서도 충격을 받았다. 나름대로 자신의 연기에 자부심을 느꼈던 고아성은 김희애의 충고에 그 같은 자부심이 산산이 무너졌다. 그런 덕분에 연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선배님이 연기하다가 ‘이 장면에선 상대방의 눈을 보고 연기해야지, 이게 다큐멘터리가 아니잖아’라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어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거든요. 충격적인 깨달음이었죠. 덕분에 연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감사할 따름이죠.”

사실 그의 연기는 정형화된 정극 연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영화 촬영 현장을 제외하고 연기를 따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자연스러움을 최고의 덕목으로 쳤지만, 연기를 하다 보면 다소 정형화된 연기가 필요할 때도 있었다. ‘우아한 거짓말’은 그런 장면이 특히 많았다.

“자신감이 없었으면 카메라 앞에 서지 못했겠죠. 제 연기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신감은 있었어요. 그러나 영화를 찍으면서 여태까지 고수해왔던 연기방식과 패턴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듯했습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고민이 너무 많았어요. 연기하면서 사춘기가 찾아온 것 같아요.”

그는 “버리기는 아깝고, 계속하기는 좀 모자란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자신을 평가하면서 “40년 동안 시계 수리한 장인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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